한기총이 주최한 구국 기도회가 정치 집회 사전 행사로 전락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엄기호 대표회장)가 주장한 '순수 기도회'는,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정치 집회'를 위한 사전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11월 7일 서울 광화문사거리 일대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규탄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기총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고, 국가 안보를 위한다며 '회개와 구국 기도회'를 개최했다. 기도회에는 엄기호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청교도영성훈련원),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등 보수 개신교인 2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5,00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기도회 전부터 찬양을 부르며,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번 행사는 한기총이 주최했는데, 참여 단체 중에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을 띠는 곳도 있었다. 국민행동본부, 대학연합구국동지회, 국본, 전군구국동지연합회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단체들은 탄핵 정국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에 앞장섰다.

행사는 1부 찬양, 2부 기도회, 3부 국민대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2부까지는 평범한 기도회에 지나지 않았다. 전광훈 목사가 설교자로 단상에 섰을 때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전 목사는 대한민국은 한국교회 때문에 발전했고, 그 발전의 배경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다고 말했다.

설교자로 나선 전광훈 목사는 "한국교회 때문에 대한민국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대한민국이 오늘에 오르기까지 그 중심에는 한국교회가 서 있었다. 말아먹은 나라를 한국교회가 살려 놓으니, 좌파 종북 빨갱이가 세웠다고?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세웠다. 그런데 엉뚱한 사람이 주인 행세하려 한다. 교회는 참고 기도만 했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됐다. 청와대 앞에서 하는 트럼프 반대 집회는 허가해 주고, 왜 우리는 안 해 주는가. 언제부터 이 나라가 종북화됐는가.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세운 나라임을 동의하면 아멘 하라.(아멘)

한국교회가 실수했다.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개인과 가정만 잘되면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주신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대한민국을 지키자. 지키지 못하면 누릴 수가 없다.(아멘)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설계도 위에 만들어졌다. 이승만 대통령 때문에 밥 먹고 사는 줄 알아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면 수령님을 모시고, 오순도순 살았어야 했다."

설교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대한민국과 위정자들을 위해 △굳건한 한미 동맹 유지를 위해 △북한의 핵실험과 국가 안보를 위해 △한국교회 하나 됨을 위해 통성 기도했다.

기도회가 '정치 집회'로 변하는 데에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엄기호 대표회장이 3부 국민대회 개회를 선언한 뒤 군가 '멸공의 횃불'이 흘러나왔다. 참석자들은 찬양 대신 군가를 따라 부르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무대 위는 국민대회 관계자들이 메웠다. 이들의 발언은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미국이다."
"대한민국 절대 다수 애국 국민과 1,200만 성도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베풀어 준 도움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문재인과 촛불 세력을 타도하자. 이들은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없다. 물러나게 하는 게 아니라 타도해야 한다."
"문재인 촛불 세력이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정치 보복에 몰두하고 있다. 촛불 세력과 청와대 주사파 세력은 이승만 대통령이 일으켜 세우고, 박정희 대통령이 번영하게 만든 대한민국에서 즉각 퇴장하라."

박근혜 정부 당시 성추행 논란으로 물러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무대에 섰다. 윤 전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북한에 상납하려 하는데, 애국 시민 때문에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윤 씨의 발언에 참석자들은 환호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대한민국을 상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여러분은 진정한 대한민국 국가 중심 세력이다. 여러분은 보수 중의 보수요, 진정한 애국 시민이다. 여러분 때문에 문재인이 북한에 대한민국을 상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수 우파 100만 시민이 오늘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고, 대한민국 안보가 파탄 나는 걸 막기 위해 모였다. 문재인 정권은 반미 골수 정권이다. 반미는 종북이다. 반미 친북 종북 좌파를 척결해야 한다.

우리 국가 중심 세력은 이 시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해답은 이미 나왔다. 우리는 트럼프를 지지하고 성원해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대한민국 안보를 지켜 내야 한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 드려야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우리 보수 우파 세력은 다시 결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중국에 예속될 수 없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반미 친중 사대주의 정권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절대 전시 작전권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안녕을 위해서 당장 핵무장해야 한다."

한기총은 이번 구국 기도회를 홍보할 때 나라를 위한 '순수 기도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도회는 극우 진영의 정치 집회를 위한 사전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한기총은 올해 3월 1일에도 구국 기도회를 개최했다. 당시 기도회는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위한 사전 행사로 전락했다.

엄기호 대표회장이 일어선 채로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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