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자유연구소가 '희년과 특권, 그리고 대안 경제'라는 제목으로 격주 간격으로 5차례 칼럼을 연재합니다. 연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종교개혁,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16세기 종교개혁 모토는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이었다. 거칠게 정리하면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그것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황(교회)보다 '성경'의 권위가 더 높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던 올 한 해에 한국교회 주류는 이 세 가지 구호만 반복해서 외쳤을 뿐 어떤 의미 있는 주장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 모토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진지하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대안 경제를 논하면서 종교개혁 이야기를 왜 꺼낼까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보편적' 통찰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아니 종교개혁은 이 두 가지에 대한 어떤 통찰과 비전을 제공하고 있을까. 필자는, 16세기 종교개혁은 '새로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반면,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은 매우 희미하고 약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런 학문적·신앙적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회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사람의 출현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 아래서만 가능하다. 사람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삶의 방식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뜻하는데, 삶이라는 것은 결국 관계와 사회에서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가 일반적인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은혜와 믿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해 보자. 거듭남은 회개를 수반한다. 회개는 세상의 질서와 관행을 극복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회개 혹은 거듭남은 당대의 지배 질서인 노예제, 즉 '인간 사유제'에 대한 태도 변화로 나타나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사람'의 새로운 삶이다.

이런 까닭에 필자는 현재 종교개혁을 둘러싼 난맥상의 원인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 획득 실패에서 찾는다. 이것이 신앙의 사사화(私事化) 현상의 근인(根因)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회는 단지 현실에 대한 비판의 준거와 개혁의 방향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회개의 기준, 삶의 방향도 제공한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획득했을 때 이 세상 나라의 질서가 한눈에 파악될 수 있고, 그 질서 속에 편승하고 그 질서 안에서 탁월함을 추구했던 자신의 죄를 회개할 수 있으며(그 질서 속에 편승하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이기에), 세상 나라 질서를 정당화하는 정신에 맞서고 마침내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희년, 대안 경제의 근거

필자는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희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희년을 깊게 묵상하면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실상이 한눈에 파악된다. 그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문제의 뿌리와 대안도 도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불평등한 한국 사회를 정당화하고 있는, 즉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이념의 허구성 역시 간파하게 된다.

희년이 말하는 '새로운 사회'를 다루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희년을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용어인 '특권 없는 사회'로 정의하고 이 특권이 불평등의 원인이며 특권을 제거하는 것이 대안 경제의 핵심임을 설명해 보려 한다. 특별히 여기에서는 특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토지 특권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뤄 보려고 한다.

특권의 어머니 토지 특권과 불로소득

희년은 토지에 대한 권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원칙을 내장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토지제도는 소수가 땅을 독차지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독식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의 토지제도는 토지 특권을 합리화하는 반(反)성경적 제도라는 것이다.

특권이 노리는 것은 불로소득이고, 사회과학은 이것을 '지대'(rent)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대 추구, 즉 특권 추구 자체가 비생산적 경제활동의 전형임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지대가 사회 전체로 보면 새로운 가치 창출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생산한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 이전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지대 추구를 가리켜 "부의 합법적 이전을 꾀하는 사회적 낭비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권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파악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불로소득을 '불로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불로소득인 토지 불로소득을 노리는 토지 투기도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노력'이다. 정보를 알아내고 현장 답사를 하고 리스크를 떠안는 행위 그 자체가 노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이것은 부를 생산하는 노력이 아니다. 토지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토지 투기는 다른 사람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 행위다.

그렇다면 토지 특권이 낳은 불로소득은 얼마나 될까.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 동안 발생한 토지 불로소득은 GDP의 21.7~26.8%나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매년 최소 300조 원 이상 되는 토지 불로소득은 누구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것일까. 각종 토지 소유 통계는 토지를 과다하게 소유한 소수의 개인이나 법인이 차지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 준다.

먼저 개인의 토지 소유 불평등을 살펴보자. 대한민국에는 무주택 가구가 44%(2015년)에 이르고 인구의 1%가 개인 토지의 55.2%를 인구의 10%가 97.6%를 소유하고 있으며, 토지를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한 세대가 40.1%(2012년 현재)나 된다. 그리고 2014년 현재 부동산소유자 상위 10%는 하위 10%에 비해 가액 기준으로 127.36배나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불평등이 극심하다. 이렇게 되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주택에서만 발생한 연평균 189.3조 원의 토지 불로소득은 인구 절반에 가까운 44%의 무주택 세대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무(無)토지 소유자들은 토지 불로소득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 토지 소유 통계로만 보면 상위 1% 혹은 10%가 토지 불로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법인의 토지 소유 편중은 개인보다 더 심하다. 2014년 현재 상위 1%의 법인이 전체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의 76.2%(가액 기준)를, 상위 10대 기업이 무려 35.3%를 소유하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소유의 편중도가 계속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2014년 6년 사이에 상위 1%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은 546조 원에서 966조 원으로 77% 증가했고, 상위 10개 기업의 보유 부동산 가격은 180조 원에서 448조 원으로 무려 147%나 폭증했다. 그런데 법인 소유 부동산에서 발생한 토지 불로소득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117.8조 원이나 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매년 100조 원 이상의 토지 불로소득은 상위 1% 기업이 차지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희년과 새로운 사회

특권을 해체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은 특권이 노리는 불로소득을 환수 내지 차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위 계층이 노력한 산물의 상당 부분이 상위 계층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즉, 하위 계층과 상위 계층의 격차인 불평등을 축소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새로운 사람의 출현은 불가능하고, 종교개혁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희년이 말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 그것을 일반적 용어로 설명하면 특권 없는 사회다. 특권의 어머니인 토지 특권은 어마어마한 불로소득을 만들어 내는데, 이 불로소득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보아야 파악이 가능하다. 그리고 불로소득은 하위 계층의 소득을 상위 계층으로 이전하는 소득이다. 합법적 도둑질인 것이다. 이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대안 경제의 핵심이다!

남기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희년함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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