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수도원' 하면, 세속과의 단절이 떠오른다. 깊은 산속에 들어선 수도원에서 홀로 기도하는 수도승 모습이 그려진다. 과거 유럽에는 두 가지 수도원이 있었다. 외딴곳에 있는 수도원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을 끊고 하나님과 일치를 간구하는 수도승들이 모인 '은수자(hermetic) 수도원'과 여러 사람과 공동 생활하면서 영적 공동체를 이룬 '회(coenobotic) 수도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도원 모습은 은수자 수도원에 가깝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를 보면 유럽 복음화에 회 수도원 수도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6~8세기 영국·아일랜드 지역에는 그룹으로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순례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동 중에 멈춰 복음을 전했고, 기도와 관상을 병행하는 수도 생활을 이어 갔다.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 그것이 수도원으로 발전했다.

영국 옥스포드 메이비(mayBe)공동체의 올해 성금요일 예배 모습. 이들은 야외에서 걷다 한곳을 선택해 성경을 읽고 예수의 죽음을 묵상했다. 꽃잎은 예수를 상징한다. 메이비공동체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은 영국성공회가 생겨날 때 수도원의 맥락이 끊겼다. 1800년대 수도원이 재등장했지만 이는 에큐메니컬 평화운동에 기초한 수도원이었다. 영국성공회에서는 사라진 줄 알았던 수도원들이 최근 '신(新)수도원 운동'이라는 흐름 속에 부활하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 볼 수 있는 신수도 공동체는 다양한 모습을 띤다. 과거 수도사처럼 수도원을 지어 공동으로 생활하지는 않지만 현실에서 영성을 추구하며 평화를 지향한다.

신수도원 운동 이해하는 키워드
전통·공동체·영성·선교

신수도원 운동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 of Church·FxC)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영국성공회는 약 20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모습의 교회에 주목했다. 지역별로 관구를 나누고 경계 내에서만 활동하던 전통 교회 모습에서 벗어난 기독교 공동체가 있는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됐다. 지역과 상관없이 모이는 사람들, 영국성공회는 이런 공동체를 가리켜 FxC라 부른다.

큰 틀에서 보면 신수도원 운동은 FxC에 속한다. 마크 베리(Mark Berry)는 2005년 '세이프스페이스'를 설립해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으며, 평신도가 FxC를 시작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CMS(영국교회선교회) 훈련책임자다. 베리는 10월 30일 Fresh Expressions Korea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신수도원 운동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신수도 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마크 베리(영국교회선교회 훈련책임자)가 한국을 방문해 신수도원 운동을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베리는 신수도원 운동에 크게 네 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전통·공동체·영성·선교는 신수도 공동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지표다. 네 가지 모두 똑같은 비중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자기들만의 독특한 풍미를 지닌다.

신수도 공동체는 '가톨릭'이었기 때문에 거부해 왔던 전통을 현대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1,000년 전 성인의 삶에서도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베리는 2004년 영국 옥스포드에서 시작한 메이비(maybe)공동체가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한다고 했다.

"이오나의 골롬반 성인, 아시시의 프란시스, 캘커타의 테레사 같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았으며, 그 성인들의 삶은 단순함과 기도에 기초하였던 것 같다. 우리 공동체는 기독교 영성의 바닷속 깊은 곳에 들어가 더 균형 잡히고 기도하며 단순한 삶의 방법을 찾으려 한다."

과거 수도원이 공동 생활을 중시한 것에 착안해 신수도원 운동은 어디까지 공동체인지,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의 모습은 무엇인지 고민한다. 이들은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서로 소통하고, 취약한 부분은 증진할 수 있도록 '계약 공동체' 형식을 지향한다.

베리는 "공동체의 틀을 새로 짜는 것은 단순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이신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이프스페이스의 예를 들었다.

세이프스페이스는 같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아니다. 영국성공회에서 평신도로 사역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소명받은 이들의 공동체'다. 세이프스페이스는 단순히 구성원들만의 공동체를 추구하지 않는다. 지역과 소통하는 일에도 앞장선다. 세이프스페이스는 수년 전, 지역 축구팀에 찾아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경기 후 쓰레기 치우기부터 시작한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현재 베리는 축구팀의 '팀 목사'로 활동한다.

신수도원 운동은 영성 생활도 중요시한다. 과거 수도원에서 기도가 일상이었던 것에 착안해 '생활 리듬'을 기도에 맞췄다. 각 공동체마다 고유한 생활 리듬을 만들어 따른다. 런던 한복판에 있는 무트 공동체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 산책할 때 하는 기도, 하루를 여는 기도, 점심에 하는 기도, 저녁에 하는 기도, 잠자리 들기 전에 하는 기도 등을 구성원이 함께 지킨다.

베리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일주일에 하루 교회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으로는 제자의 삶을 지탱하기 충분치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일상에서 기도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한다면 굳건한 기도의 기초 위에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이비공동체는 종종 영국 젊은 크리스천들의 문화 축제 '그린벨트 페스티벌'에 초대받는다. 2014년 그린벨트 페스티벌에서 메이비공동체와 함께하는 아이들. 메이비공동체 홈페이지 갈무리

FxC의 특징 중 하나는 '꼭 우리 교회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FxC가 선교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오해다. FxC와 그 줄기인 신수도원 운동 모두 넓게는 선교를 위한 일이다. 다만 선교를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방법에 대한 생각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신수도원 운동은 선교를 세 가지 새로운 틀 안에서 짠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인 선교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으며, 선교는 화해와 창조의 회복에 관한 것이며, 사랑의 섬김과 환대의 행위라는 점이다. 베리는 "신수도 공동체에서 선교는 공동체와 영성 다음으로 제자도를 실행하기 위한 세 번째 다리"라고 말했다. 과거 수도원이 한자리에 머물면서 기도했다면, 신수도 공동체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세이프스페이스는 주말 야간에 길거리로 나선다. 노숙자와 나이트클럽 단골손님, 학대받고 외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메이비공동체는 영국 젊은 크리스천들의 문화 축제 '그린벨트 페스티벌'에 단골손님으로 초대받는다. 이곳에서 공동체 삶을 증언하며 믿는 혹은 믿지 않는 이들과 교류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영국에서 신수도원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변했다. 전통 교회와 더 자주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현재 신수도원 운동은 영국성공회 지원을 받는다. 베리는 "분명히 교회가 도전을 받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가 어느 때보다 급속히 변하고 있을 때는 수도 생활을 열망하는 새로운 모색이 전 세계 곳곳에서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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