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면서 등장했던 여러 구호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Be the Reds', '꿈★은 이루어진다!' 등이 그것이다. 그중 '꿈★은 이루어진다!'는 이후 치뤄진 대통령 선거전에서도 그대로 사용됐다. '꿈★은 이루어진다!',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표현인가. 우리는 늘 꿈을 꿨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기독교가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끌었던 것도 기독교를 통하여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통하여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열심 있는 믿음이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서점에서도 가장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이 성공과 꿈을 이룰 수 있는 신앙적인 법칙을 설명해 주는 것들이다. 그런데 과연 기독교는 우리들의 꿈을 이루어 주는 종교일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무슨 꿈을 이루어 주게 할까. 오늘 우리는 모두 꿈을 이루기를 원한다. 무슨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꿈꾸는 사람, 요셉

꿈을 이룬다는 관점에서 꿈꾸는 사람의 대명사, 꿈의 실현자 요셉은 우리에게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요셉이 이룬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 왔던 그 꿈은 이루어진 것일까. 우리들도 꿈을 꾼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인생의 승리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일까.

자신의 욕망을 향하는 꿈, 야망

요셉의 첫 꿈은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두 번째 꿈도 비슷했다.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이 꿈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요셉 자신의 영달을 의미한다. 그가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마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야망이 있었던 사람 같다. 그가 처음부터(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 야곱의 특별난 대접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그런 욕망이 생겼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야망의 사람임이 틀림없다. 자신의 야망이 그런 꿈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도 많은 꿈을 꾼다. 그런데 많은 꿈 중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을 대변하는 꿈이 아니었던가. 자신의 영달을 위한 꿈, 야망은 결국 우리를 고립되게 만든다. 요셉도 마찬가지로 그런 고립을 경험했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왕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아름답고 귀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야망은 우리들로 하여금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생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야망으로 가득 찬 우리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향하는 야망을 갖도록 충동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 사회뿐 아니라 교회와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모두 야망을 갖도록 유도되고 있지 않는가. 오늘 교회에서도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나 교인들도 대형 교회라든지 유명해지는 것이라든지 하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탄 사람들이 아닌가.

한국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목회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국교회가 얼마나 야망에 가득 차 있는가를 볼 수 있으며, 또 야망에 찬 젊은이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젊은이들이 한창 몰리는 교회나 인기를 끄는 설교자 중에서 한 사회나 한 역사의 한 부분에서 나름대로 정의를 외치거나 혹은 불의를 향하여 항거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는가. 인기 설교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초라했던 위치를 벗어나 지금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서 있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나름대로 야망을 성취한 사람들이 아닌가.

바로 여기에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가 있다. 교회가 사람들로 하여금 온통 야망이라는 꿈을 꾸게끔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설교를 통하여, 성경 공부를 통하여, 그리고 각종 신앙 강좌라는 미명 아래 열리고 있는 성공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구호에 매료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성공이라는 야망과 그리고 그 '야망은 이루어진다!'에 몰두하고 있다.

누가 진정한 지도자인가

오늘 한국 사회의 경제·정치·문화·체육 등 거의 전 분야에서 기독교인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한국이 이제 불교 국가가 아니라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종교 인구통계면에서 이미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앞지르고 있고 경제·정치·사회적 활동면에서 다른 종교들은 기독교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한국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영적 스승을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영적 스승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오늘 한국 사회에서 유명하다는 목사들이 과연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는가. 소위 한국 교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개신교 목사들 대부분이 영적 스승보다는 큰 사역을 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진정한 영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왜 그런가.

사실 종교인들은 자신이 이룩한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온 삶과 정신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기독교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한결같이 어떤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야망의 꿈을 꾸지 않았다. 오히려 야망의 꿈을 줄이면서 다른 꿈을 꿔 왔던 사람들이다.

오늘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이 야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과 진정한 꿈을 구별할 수 있도록 신앙의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욕망과 야망은 이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산다.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서 진정으로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는 분이 없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된 꿈을 이루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꿈을 이룬 요셉?

수 주 전에 한 교회에서 어떤 전도사의 간증 집회가 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는 한국의 요셉과 같은 사람이라고 추앙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화제의 인물은 보수 기독교인에게 '믿음의 총리'로 불리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다. 기사에 의하면, 그 교회 담임목사는 어느 날 "믿음 좋은 요셉 같은 총리를 모시고, 간증 집회를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를 초청하여 집회를 열게 되었다.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그의 간증 요약을 보면 그는 분명 창세기의 요셉과 같은 인물로 간주되어도 좋을 듯하다. "무명의 소년은 예수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했다. 이후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됐다. 신학교도 졸업했다. 28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잠깐의 변호사 생활을 거쳐, 법무장관과 국무총리가 됐다.(박수) 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거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 믿고 나서 '무명한 자'가 '유명한 자'가 된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간증했다고 한다. "693일(2015.6~2017.5) 동안 국무총리를 지냈다. 매일매일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정쟁이 될 수 있기에 지금 자세히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 당시에는 고난 같았는데,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런 은혜를 계속 받으려면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궁하지 않아도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는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룬 꿈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국무총리 재임 기간 중 발생한 국정 농단 사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행한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과연 그가 과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나라의 꿈을 이룬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야망을 이룬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꿈의 내용이 교정되어야
우리가 꿈꿔야 할 하나님나라

우리 모두는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의 내용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꿈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요셉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꿈의 변화를 경험했다. 그는 야망에 가득 차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생을 통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그의 꿈은 점차 변화되어 갔다.

야망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좋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고 진정한 꿈, 참된 꿈,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의 꿈이 교정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는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들과 다시 만나게 되고 화해하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 아래의 성경 기록은 바로 이러한 요셉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가치관이 변화된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주시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창 45:7-8)

야망이 사라지고 하나님나라를 향한 꿈을 갖게 되자, 그는 이러한 놀라운 신앙의 고백을 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꿈이 있는가. 우리의 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야망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행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꿈,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우리 신앙 공동체는 어떤 꿈을 심어 주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존 레논은 'imagine'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하늘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당신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이에요. 발 아래는 지옥이 없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이 있겠죠. 모든 사람들이 이날을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이념을 위해서) 살인이나 죽음도 없고 종교도 없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당신이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탐욕과 굶주림에 대한 필요도 없고 인류애로 뭉치는 온 세상을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눈다고 상상해보세요. 내가 공상가라고 당신은 말할지 모르지만 나만이 그런 건 아니에요. 언젠가는 당신도 우리와 함께해서 세상이 하나 되어 살기를 바라요."

존 레논도 이런 꿈을 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우리가 야망에 불타 있어서야 되겠는가. 신앙을 자기 야망의 실현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야 되겠는가.

"지금 예수를 믿은 지 50년이 됐다. 주일예배에 한 번도 빠진 적 없다. 행여 내가 잘못하면 교회를 공격할까 봐 처신에 신중을 기해 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그의 간증이 오늘 이 아침에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가 이룬 꿈의 정체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신학대학교(ISEDET)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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