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 주요 장로교단은 올해 9월 열린 총회에서 '퀴어신학'(Queer Theology)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현대신학의 다양한 흐름 중 하나인 퀴어신학은 한국교회에서는 쉽게 언급할 수 없는 범주가 됐다. 도대체 퀴어신학이 뭐기에, 제대로 소개하기도 전에 '이단'으로 낙인찍혔을까.

2018년 출간을 목표로 작업 중인 <퀴어 성서 주석>(Queer Bible Commentary)을 사전에 엿볼 수 있는 강의가 열렸다. 길목협동조합(홍영진 이사장)은 퀴어신학아카데미(준)와 함께 10월 12일부터 8주에 걸쳐 '퀴어스레 신학하기 - <퀴어 성서 주석> 강독' 세미나를 기획했다.

퀴어신학아카데미 1강은 유연희 박사가 '섹시한 성서, 베일을 벗다'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0월 12일 첫 강의에는 유연희 박사가 저서 <이브에서 에스더까지: 성서 속 그녀들>(삼인) 한 부분을 강독했다. 강의 주제는 '섹시한 성서, 베일을 벗다'였다. 유연희 박사는 미국연합감리교회 소속으로, 한국에서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 박사는 "퀴어신학은 신(新)학문 중 하나다. 새로운 학문으로 현재 활발히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지금 이 자리는, 이를 잘 모른다는 걸 전제하고 공부하는 모임"이라고 말했다.

남성 중심 시각으로 쓰인 성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나

유연희 박사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성(性)을 주제로 한 대화를 회피해 왔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교회 현장에서 성 문제를 쉬쉬하는 것에 반해 성서는 성에 대해 의외로 솔직하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뿐 아니라 성적으로 비도덕적인 행위를 놓고도, 때로는 일관되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유 박사는 설명했다.

성서는 어떤 기준으로 '좋은 섹스'와 '나쁜 섹스'를 나눌까. 유연희 박사는 "성서에서 말하는 좋은 섹스는 출산을 전제로 한 관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대사회에서 말하는 '결혼' 개념은 현대사회 결혼 제도와 큰 차이가 있다. 성서가 쓰인 당시 사회는 막강한 가부장제가 작동하고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사회였다. 따라서 남성은 아내 외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해도, 출산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좋은 섹스'가 된다.

'아가서'는 특별한 경우다. 유연희 박사는 아가서가 성을 있는 그대로 향유하는 것을 '좋은 섹스'로 표현한다고 했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아가서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표현한 알레고리라고 읽는 학자가 없다. 다들 아가가 출산이나 결혼과 무관하게 몸의 아름다움과 성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책이라 여긴다"고 했다. 유 박사는 아가서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여성을 볼 수 있다며 21세기 정서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봤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Gustav Moreau)가 그린 '아가서(le Cantique des Cantiques)'. 1853년作.

성서에서 말하는 '나쁜 섹스'는, 남성 중심적인 당시 사회 풍습으로 볼 때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섹스를 말한다. "출산이 없는 섹스",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섹스"다. 유연희 박사는 "신명기와 레위기를 보면 '나쁜 섹스'를 판별하는 법이 나와 있는 듯하지만, 성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지도자나 주요 등장인물이 이 법을 어겼을 경우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이방 민족과 결혼하는 '통혼'은 주로 '나쁜 섹스'였다. 민족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순혈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유연희 박사는 외부인과 결혼하면 재산 이동이 생기는 것과 종교가 바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여인과 결혼한 모세, 외교력의 일부로 외국 공주와 결혼한 다윗과 솔로몬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누가 하느냐에 따라 때로 '좋은 섹스'로 합리화되기도 한다.

현대 개신교에서도 자주 언급하는 순결, 혼전 성관계와 관련해 성서는 가부장 사회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신명기에는 결혼한 후 아내의 처녀성을 의심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이때 처녀성을 증명해야 하는 대상은 여자뿐이다.

약혼하지 않은 남녀가 결혼 전 성관계를 하다 들키면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그 여자와 결혼하면 된다. 유 박사는 이 구절 문맥상 남성은 기혼자이고 여성은 미혼자이기 때문에 이는 '강간'에 해당한다고 봤다. 당시 사회는 강간이 일어나도 '돈을 지불하고 여자를 사면' 끝나는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였다고 설명했다.

유연희 박사는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동성 간 성관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동성 간 성행위를 언급하는 본문은 성서 전체에서 네 곳이다. 레위기만 봐도, 월경 중인 여자와 섹스를 하지 말라는 규정이 10번, 곡식 예물을 드리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17번 나온다. 이에 비하면 동성 간 성관계는 중요하지 않은 주제였다"고 설명했다.

남성들이 동성을 집단으로 성폭행하려고한 이야기를 언급한 창세기 19장과 사사기 19장도 '동성 간 성행위' 보다는 '폭력'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당시 사회 풍습상 강제 성행위는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폭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유 박사는 "성서에는 오늘날처럼 성적 지향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고찰한 흔적이 없다. 성서 시대에는 성적 지향,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다른 두 시대를 건너뛰어서 말한다. 성경에서 관련 구절을 취사선택한 뒤,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아닌 남을 판단하는 잣대로 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자체가 너무 황당하다"고 말했다.

유연희 박사는 현대사회는 구약시대와 다른 성문화 개념을 말하고 있는데, 성서 구절을 지금도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성서는 성을 감추지 않고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성서가 쓰인 시대 기준으로만 현재를 재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교회는 어떻게 하면 성에 대해 솔직하고 건강한 대화를 더 많이 할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할 것"이라며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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