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맞은 사람들이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10월 1일, 차가 김포시 양촌읍 산업 단지에 들어서자, 커다란 네모 상자처럼 생긴 공장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철문은 굳게 닫혔고, 주차장은 텅 비었다. 25톤 대형 트럭들도 긴 연휴를 맞아 입구에서 쉬고 있었다. 편의점 앞, 한 이주 노동자 무리를 마주쳤다. 과자와 음료수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풍경이었다.

10일간의 황금연휴는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네팔 이주 노동자 따렛은 이번 황금연휴가 다른 때보다 유독 특별하다. 사랑하는 아내, 딸과 함께 한국에서 처음 보내는 명절이다. 따렛이 2010년 입국했으니, 8년 만이다.

따렛은 김포에 있는 제조 공장에서 프레스 금형을 다루고 있다. 프레스 금형은, '프레스'라는 기계와 '금형'이라는 특수 장비를 이용해 자동차나 전자 제품 등 금속 부품을 절단 및 성형하는 장비다. 조작 방식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자칫하면 절단·사망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따렛의 체류 자격은 비전문 취업(E-9) 상태였다. 이후 수년 동안 프레스 금형을 다룬 경력을 인정받아, 올해 초 전문 취업(E-7)을 따냈다. E-7은 취득하기 까다로운 비자로, 장점이 많다. 정기적으로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고, 직계 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다. 취득한 지 5년 후부터는 영주권(F-5)을 얻을 수 있다. 따렛은 지난달 네팔에 있는 딸과 아내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공장 기숙사에서 나와 작은 방도 하나 얻었다. 이제 한국에서 제2의 삶을 꿈꾸고 있다.

따렛은 이날 가족들과 함께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최영일 센터장)가 주최한 추석 행사에 참석했다. 이주 노동자를 위한 자리였다. 방글라데시·우즈베키스탄·네팔 등에서 온 노동자 100여 명이 함께 전통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음식은 방글라데시 공동체가 준비했다. 이들은 방글라데시·파키스탄·인도 사람들이 즐기는 비리야니와 짜이를 선보였다. 비리야니는 쌀과 향신료, 고기 등을 넣은 볶음밥이다. 짜이는 우유, 설탕, 향신료를 섞은 홍차다. 방글라데시 공동체는 밥에다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소고기를 넣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힌두인이 대다수인 네팔 공동체를 생각해, 소고기 대신 양고기를 넣었다. 매콤한 비리야니와 따뜻한 짜이가 선사하는 향과 맛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저 멀리 고향과 가족을 그리기에 충분했다.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는 이날 윷놀이·투호 등 한국 전통 놀이도 계획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모두 취소해야 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공원에서 음식을 먹고 간단히 레크리에이션을 즐겼다. 행사가 시작한 지 1시간쯤 지나자, 모두 단체 사진을 찍고는 주민지원센터 안으로 흩어졌다.

따렛은 한국에 온 지 8년 만에 네팔에 사는 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방글라데시 공동체가 준비한 비리야니와 짜이. 맛이 일품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청년이 상대편을 공격하고 있다. 맞고 있는 사람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최영일 목사다. 다들 웃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현재 김포시에 등록된 외국인은 1만 7,000여 명이다. 이 중 1만 3,000여 명이 노동자다. 대다수 E-9 신분으로 공장에서 근무한다. 시에는 자동차와 전자 기기 등의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3·4차 하청 공장이 많다. 시에 등록된 제조업체가 8,000여 개인데, 6,000여 개가 50인 미만 소규모 공장이다. 위험한 일이 많고 시설도 열악하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는 이유는 대부분 취업이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일시적으로 있다가 귀국하는 이도 있지만, 따렛처럼 한국에서 계속 머무는 이도 있다.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최영일 목사는 "고향에 있는 가족을 초청해 한국에 정착하는 노동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E-9으로 시작해 E-7과 거주 비자(F-2)를 거쳐 F-5를 얻는 방식이다.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쏨땀과 소면을 떠 주고 있는 챠챠왈. 매운맛을 조심하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바깥에서 방글라데시·네팔·우즈베키스탄 공동체가 추석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주민지원센터 안에서는 태국·라오스·베트남 공동체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태국 공동체가 요리를 맡았다. '프릭키누'라는 태국 고추와 여러 야채를 무친 태국식 샐러드 '쏨땀'이 주 메뉴였다. 여기에 쌀국수를 비벼서 먹으면 금상첨화지만, 태국 공동체는 한국에서 쌀국수가 비싸다며 밀가루 소면을 준비했다. 그래도 맛은 최고였다.

태국에서 온 챠챠왈은 오랜만에 먹은 쏨땀이 매운지 콜라를 연거푸 마셔 댔다. 챠챠왈은 내년에 비자가 만료된다. 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공장을 차릴 계획이다. 챠챠왈은 일을 많이 한다.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근무하고,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여가 시간에 특별히 할 게 없으니 돈이라도 벌려고 일을 많이 한다고 챠챠왈은 말했다.

최영일 목사는 "대다수 이주 노동자에게는 여가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들 일하기 바빠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도, 기회도 없다. 센터나 인근 교회가 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행사를 기획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벤쟈펀(사진 왼쪽)과 아리. 아리는 몹시 밝고 활기찼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음식을 만들고 있는 태국 공동체 여성들. 요리하는 모습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는데 잘못 들었는지 밝은 미소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앞치마를 두른 벤쟈펀은 음식을 만들랴 손님을 맞이하랴 분주해 보였다. 그는 이날 9살짜리 딸 아리를 데리고 주민지원센터를 찾았다. 벤쟈펀은 태국에서 온 결혼 이민자다. 9년 전 한국에 오자마자 아리를 낳았다. 아리는 점심을 먹고 나서는 또래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센터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구김살 없이 밝고 활기찼다.

벤쟈펀은 현재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통역과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태국에서 온 이민자에게 한국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소개해 주고, 은행이나 구청에서 일을 보거나 공장에서 면접을 볼 때 통역을 해 주고 있다.

그는 "결혼 이후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외롭고 힘들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면서 고향 사람을 많이 알게 됐다. 이렇게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마치 고향에 있는 큰언니·큰누나처럼, 이들을 잘 챙겨 주고 싶다"고 했다.

태국은 불교 문화권 국가지만, 벤쟈펀은 어릴 때 선교사에게 교육을 받아 현재 교회에 다닌다. 남편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벤쟈펀은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학대하지도 않으며,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벤쟈펀은 말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결혼 이민자 중에는 남편의 술주정·욕설·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최영일 목사는 "결혼 이민자 중에는 알코올중독자인 남편에게 수시로 폭력을 받고 위협을 당하는 이들이 있다. 이혼을 준비하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는 이주 노동자에게 한글 교육, 노동교육, 안전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최영일 목사는 현지인에게 효과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 현지인 출신 강사를 육성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주 노동자는 매주 일요일 센터에서 간단한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말구유나눔회라는 의료봉사 단체가 매주 이곳을 찾는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는 매주 300~400명의 이주 노동자가 찾아온다. 한글 교육, 법률 상담, 노동교육, 진료 등 다양한 서비스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안산·김포에서 이주 노동자 인권을 위해 활동해 온 최영일 목사는 2012년부터 주민지원센터에서 센터장을 맡고 있다.

최영일 목사는 현재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가 재정이나 인적 자원을 지원한 덕에 이주민 사역을 지금까지 이어 갈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더 많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 목사는 "이주 노동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재정이 필요하다. 지역에 있는 큰 교회들이 실제 사역을 펼치고 있는 사역자나 센터를 도우면 좋겠지만, 대다수 교회는 이주 노동자를 교회 안으로 데리고 와 예배나 행사에 참여시키려고만 한다"고 했다.

그는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게 타 문화권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이들이다. 반면, 한국은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 한국교회 역시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 노동자는 우리 삶에 깊숙이 찾아왔다. 이들이 다른 종교, 다른 문화라고 해서 적대시하거나 개종 대상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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