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유영 기자] 한국교회 추도 예배는 제사의 우상숭배 문제를 지적하며 발전했다. 조선 후기 선교사들은 제사를 우상숭배로 보았다. 옥성득 교수(UCLA)는 '초기 한국 개신교와 제사 문제'라는 논문에서 "유일신관과 합리주의 노선에 서 있던 19세기 구미 개신교 선교사들의 전도 문서를 보면, 제사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제사는 단순한 우상숭배 논의로 끝나지 않았다. 백낙준 박사는 1927년 출판한 <한국 개신교회사>(연세대출판부, 번역판 1973년 출간)에서 "조상숭배는 중국과 일본 선교회들의 관례에 따라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므로 일관되게 금지했다. 조상숭배의 이론, 성격과 숭배 방식의 문제는 간단히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서술했다.

대표적 개신교 교육자 월남 이상재 선생은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이상재 선생은 1920년 9월 1일 자 <동아일보>에 "조상 신주를 우상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옳다 할 수 없다. 제사는 부모를 그리며 사모하는 효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교와 아무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하나님의 가르침에 크게 적합되는 일일 것이라"고 했다. 제사를 부모 공경의 표현으로 여겨, 기독교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조선 시대 명절을 지내는 양반집 모습을 그린 풍속화.

선교 초기부터 이런 목소리가 소수 있었지만,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주장은 아직 한국교회에서 수용되기 어렵다. 제사를 대신해 추도 예배를 인정하고 토착화했지만, 제사를 지낸다거나 제사상에 절하는 일은 대부분 한국교회가 금하고 있으며 교인들도 거부감을 느낀다.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이 친지의 기일이 되면 비기독교인 가족과 함께 모여 제사 문제로 싸우고 있다. 절을 해야 하는지 문제로 고민하는 기독교인도 많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신앙고백을 하는 기독교인은 '조상귀신'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사와 절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제사에서 절하는 문제와 기독교적 제사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한다.

미신적 요소 제거한 '최소한의 유교 제사'
기독교 예배와 제사가 만날 수 있는 다리

제사와 예배를 통합을 시도하는 신학자의 노력은 간간히 이어지고 있다. 조상 제례를 신학적으로 해석해 기독교인의 제사를 권하기도 한다. 이정배 교수(감신대 은퇴)는 2008년 <문화와신학>에 투고한 논문 '제사와 예배, 조상 제례의 신학적 재구성'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교의 조상 제례만큼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영향을 주는 종교가 없다. 유교 제사의 부정적 모습을 지우고, 긍정적 모습을 활성화하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 제사의 부정적 모습은 무엇일까. 한국교회가 우상숭배로 규정하는 '미신적 요소'를 꼽을 수 있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신주에 모신 부모의 영혼과 교제한다고 여긴다. 이정배 교수는 유교 제사의 미신적 요소를 스스로 제거한 다산 정약용의 예를 든다. 제사와 예배가 일치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한다. 같은 논문에서의 이 교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다산에게 제사란, 생명의 근원을 잊지 않고 살아 있을 때와 같이 부모에게 효성을 극진히 하는 것이다. 천주교의 영향으로 초월적 신이 존재한다고 인정한 다산은, 제사를 지극한 효로 보았다. 살아 있을 때 부모에게 효를 행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효는 사람 간 우애와 사랑을 중심에 두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우애와 사랑이 없으면 제사는 아무런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부모의 혼령과 합일 등을 제거해 조상을 기억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제사의 역할을 찾았다. 이정배 교수는 이를 '최소한의 유교 제사'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와 제사를 이을 토착화의 다리로 봤다.

"조상 제사와 하나님 예배는 둘이 아니다. 제사는 '인간을 근원으로 이끄는 하나의 거룩한 끈'이다. 미신적 요소를 제거한 '최소한의 유교 제사'는 기독교 신앙의 의미와 내용을 풍성하게 한다. 최소한의 유교 제사는 삶의 근원을 확인하고 생명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일치를 일상 속에서 발견하게 하는 종교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이런 뜻을 담지한 유교 제례를 백안시한다면 기독교 신앙 역시 빛을 잃을 수 있다."

"유일신 사상 있다면
제사에서 절해도 괜찮다"

제사가 우상숭배라는 핵심 논리는 '절'하는 행위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절은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인사법이다. 실제 절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누구에게 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이정배 교수의 주장으로는 '미신적 요소를 제거한 최소한의 유교 제사'라면 절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례제를 오랫동안 허용한 경동교회는 절과 우상숭배는 관계가 없다고 규정하기도 했다. 경동교회가 1995년 발행한 <기독교인의 가정의례 지침>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한국과 동아시아 문화 전통에서 산 자나 죽은 자에게 절이라는 형식은, 예 표현의 교유한 양식이다. 절은 동아시아 문화 전통이 함께 공유하고 그 의미를 함께 인지하는 예절문화의 고유한 형태일 뿐, 결코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언급하는 우상숭배 행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제사상에 '절'하는 행동 자체를 우상숭배라고 생각해 왔다. 안동교회 유경재 원로목사는 절과 우상숭배 연관의 기원을 냉철하게 돌아보며, 극복할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목사는 2008년 <문화와신학>에 투고한 '영원한 생명과 죽음의 이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교회가 절과 우상숭배를 연관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한 역사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추도식은 미국과 서구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교회 독특한 예식이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전해 오는 제사 문제를 기독교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절하는 문제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교적 귀신 숭배 사상이 제사 전통에 있지만, 죽은 자를 귀신으로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 처지에서는 문제가 될 소지가 전혀 없다. 죽은 자에게 절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죽은 자를 귀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으로 오해받기 쉽다. 절하는 것을 반대함으로 기독교인이 오히려 귀신 숭배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는 잘못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기독교가 귀신 숭배 사상을 부정하기 때문에 죽은 자를 향해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다."

교회가 제사와 절을 허용해도 괜찮다는 신학적 입장에서는, 기독교화한 제사와 절을 막는 일이 오히려 유일신 논리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한다. 유경재 목사는 한국교회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순히 죽은 자에 대해 예를 표현하는 일을 우상숭배로 몰아가는 일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신앙인들이 자기 신앙을 분명하게 고백하면서 절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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