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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의 우울, 개신교의 우울

2017년 한국 주요 교단 총회를 돌아보며

주원규   기사승인 2017.09.28  16: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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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최고의 아재 개그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개신교는 하나의 본부를 두고 있는 로마 가톨릭과 다르다는 점이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로도 익숙한 개신교는 '오직 믿음, 은혜, 성서만으로'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태동했다. 이런 개신교에 있어 총회의 역할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해야 한다.

개교회 중심으로 발전한 교회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보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상호 간 긍정적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취지에서라도 총회는 있어야 하고 활성화하는 것을 독려해야 마땅하다. 또한 교회를 대표한다는 목사들의 종교적 신조 강화뿐만 아니라 대사회적 위치에서 개신교가 가질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가정이 성실히 이행된다면 연대와 집중이라는 측면에서도 총회의 존재 의미는 한국 사회에 더한 무게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하지만 2017년 가을, 대한민국의 개신교를 요란스럽게 장식한 주요 교단들의 총회 풍경을 살펴보면 앞에서 밝힌 총회의 긍정적 존재 의미에 대한 최소한의 명분도 찾을 수 없다는 중론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현실이 필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최소한의 명분은 고사하고 그나마 오늘의 교회를 어렵사리 지탱해 온 수많은 교인의 마음에 커다란 실망과 상처만 안겨 준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평화·인권·정의를 외쳐 오던 예언자적 정신을 계승하는 교회들이 힘겹게 이끌어 오던 교회 본연의 가치를 주요 교단 총회가 단숨에 분탕질하고 훼방 놓는 형국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오판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총회 풍경은 우울한 잿빛으로 회칠되어 온 것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이처럼 회칠한 무덤 같은 잿빛 풍경이 2017년 총회에서는 전혀 웃을 수 없는 '아재 개그'로 집약되어 나타난 한 편의 소동극으로 출현한 것이다.

혹자들은 물을 것이다. "무슨 근거로 총회를 아재 개그로 정의하는가. 그래도 좋은 일, 많이 하지 않았는가"라고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예상 질문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번 총회를 아재 개그로 보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은 있는가.

한국 주요 장로교단들의 총회가 지난주에 끝이 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어이없는 주요 결의들

주요 교단 총회에서 결의한 대표 사안들을 보면 극소수의 발전적인 안건을 제외하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떠오른 키워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요가·마술을 금지하고 여성 목사 안수 반대를 재확인하며, 이혼 후 재혼은 간음이라는 황당한 성경 해석과 동성애에 대한 극단적 반대 입장 표명, 종교인 과세 2년 유예 요청 등이 주요 교단 총회의 대표 결의다.

이러한 결의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이러한 입장 발표 자체에 한숨이 나오는 건 필자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한국 기독교인 대부분의 반응일까. 당연히 후자라고 본다.

총회의 존재 목적은 교단이 가진 전체 방향에 대한 천명이며, 그 천명을 대표하는 주체들은 교단에 속한 교회의 자칭 대표임을 자처하는 목사들이다. 그들이 결의하는 선언의 강조점이 처음부터 애매함 속에 파묻힌 한계는 인정한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가 가진 종교 사회적 지분은 서글플 정도로 그 운신의 폭이 좁다. 교리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전면으로 나서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무조건 함구하는 게 상수라는 식의 총회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교단의 총회가 보인 태도를 보면 그 시커먼 속내가 들여다보이는 것만큼은 지적해야 하겠다. 정치·사회·종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에 대한 침묵 지속으로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나타낼 수 없다고 판단한 주요 교단의 유력자들은 총회의 존재 목적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확실한 공격 타깃을 설정하는 데 혈안이 되어 버렸다.

자신들의 존재감을 더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다는 기대에서 이른바 주적(主敵)을 설정한 것인데, 그렇게 설정한 주적이란 게 요가·마술 금지, 이혼 후 재혼은 죄, 동성애자 및 옹호자 퇴출, 여성 목사 안수 금지 등의 결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다. 이게 왜 어처구니가 없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그래도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짚어 볼까 한다.

총회, 유감을 넘어 환멸로

각 주요 교단의 총회에서 결의된 결과라며 발표한 사안은 원하든 원치 않든 목사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는다. 좁게는 교회에 소속한 수많은 교인의 눈과 귀가 이 발표를 접할 것이며, 넓게는 한국 사회를 대표하든 않든 그래도 규모의 경제에 의해 자리매김한 개신교 사회의 현재를 나타낸다. 그런데 결의안 발표의 여파, 후폭풍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총회의 주적 설정이 나타내는 한심함은 그 논의의 과정에서 안팎의 상황 인식이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로 배설한 현상이기에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한 사회나 국가, 더 나아가 세계적 문화의 한 요소로 성행하는 요가와 마술을 금지한다는 게 과연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지금 이 글은 요가와 마술이라는 문화적 수단 자체의 호불호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러한 문화적 수단 자체를 금지한다고 결의하는 게 과연 교회와 세상을 대표한다고 나선 총회가 할 말이냐는 것이다.

여기에 거드는 '이혼 후 재혼은 죄'라는 황당한 논리와 '여성 목사 안수 금지에 대한 재확인'은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창조질서라는 절대명령에 대한 확인이라는 식의 태도로 무장되어 있다. 총회가 보인 이런 태도는 예전부터 줄곧 써 오던 악습 중 하나다. 총회 결의가 마치 우리들이 섬기는 신이 흡족히 받으실 만한 전리품인 것처럼 여기는 오만함이 그것이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듯 총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며, 동시에 교회 구성원인 교인들의 입장과 연대를 지지받는 자리다. 그런 중대성을 빌미 삼아 은근슬쩍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자신들의 이권에 부합하는 주장이 마치 하나님 뜻인 것처럼 윤색·포장하는 대담함을 보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과연 이에 대해 각 주요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이러한 개신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답할 것인가.

혹자들은 다음처럼 방어할지도 모른다. 정교분리 원칙도 모르냐고.

모르지 않는다.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종교인 과세 2년 유예를 국회에 건의해 보겠다고 나서는 예장합동 총회의 발언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정교분리 원칙, 신성에 대한 존엄함 강조, 교회가 갖는 구원의 권위를 스스로 얼마나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지에 대해서는 뭐라 변명할지 심히 의문스럽다.

백번 양보해 종교인 과세 유예에 대한 입장을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거듭 질문이 맴돈다. 과연 그런 안건이 총회에서 결의해 공식 석상에서 발표할 만한 '깜'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 안건을 내세운 총회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있지 않다고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다른 총회도 물론 마찬가지다.

이렇듯 총회가 그 존재 이유를 자기들 밥그릇 보존하는 데 쓰는 거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도 아니라면 교회나 사회를 향해 제법 세련된 수사나 그럭저럭 있어 보이는 포장이라도 해야 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회 법을 향해 구걸하는 정치적으로 가장 저급한 수사를 소위 개신교를 대표한다는 총회에서 배설해 버리는 작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대체 이게 무슨 자폭 행위인지 해석이 불가한 건 필자만의 오해는 아닐 것이다.

끝으로 커다란 패착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2017년 총회 결의가 남아 있다. '동성애'란 키워드를 주적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한 행위가 그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가치, 이에 대한 성경적 해석은 각자의 신학 맥락이 있기에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여기에 덧붙여 개인의 신앙 양심, 그 신조 아래 모인 총회가 나타낸 표현 역시 그 단체의 입장이 그렇다면 충분히 존중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적어도 한 해를 결산하고 다음 한 해의 전체 방향을 제시하는 총회라면 자신들의 신앙 입장이 '동성애 반대'에 있다 하더라도 개신교 전체를 포괄하는 주제의 선명성을 상위 층위로 놓고 접근했어야 한다. 그 주제의 선명성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인 그리스도인과 잠재적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는 비그리스도인 사이의 공통분모인 사랑, 보편적 진리, 그리고 인권이다.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이슈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는 총론의 다층 속에서 나온 각론으로서의 입장이다. 그런데 동성애를 반대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는 목회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결의를 쏟아 내는 총회의 속내가 정말 성경 정신을 실천하고 싶은 건지, '동성애'라는 화제를 인질 삼아 교인들을 겁박하고 목회자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려는 권력 도구로 삼고 싶은 건지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의심의 베일을 벗으려면 '동성애 반대'라는 입장을 논의의 장에 올려놓을 수 있는 바탕 가치인 사랑, 보편적 진리, 인권에 대한 강조가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2017년, 개신교 주요 교단의 총회 결과를 살펴보면, 과연 총회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총회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로 낯부끄러운 모습으로 도색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자위하며 잔치를 벌이는 듯하다. 내부 결속을 다지고 개신교의 선명성을 재확인했다며 자축하는 모습도 보인다. 과연 이 허탈한 풍경 앞에서 개신교 전체의 우울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장통합 102회 총회에서는 동성애자 및 동성애 지지자 임직을 금지하는 안건 등이 통과됐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총회의 우울, 개신교의 우울

이처럼 우울한 2017년 총회 풍경이 오늘 우리 개신교의 맨얼굴이다. 이토록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맨얼굴이 드러난 사태 앞에서 우리는 차마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만다. 전도는 고사하고 교회 다닌다고 자랑스럽게 밝히는 일은 옛 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교회 이야기 자체가 부끄러워진 게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이며, 이를 심리학적 언어에 기대어 다르게 말하면 중증 우울증에 빠진 상태와 비교할 수 있으리라.

사태가 이런데도 아직 정신 못 차리는 교계 지도자와 목사들이 넘쳐 난다. 규모와 기복주의, 샤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이 무단으로 점거한 교회와 그들만의 리그인 총회는 빠른 속도로 침몰하는 개신교의 현실을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그 서글픈 현실도피가 괴기한 조울증의 형태로 교단과 총회를 포박하고서 촌극에 가까운 소동극을 발작적으로 출몰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2017년 주요 교단의 총회 풍경임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린 총회의 우울이 곧 개신교 전체의 우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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