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위안부' 합의 이대로는 안 된다> / 김창록 외 지음 / 경인문화사 펴냄 / 182쪽 / 1만 2,000원

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8월 30일 <연합뉴스>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일본군성노예제('위안부') 피해자 이모 할머니가 94세를 일기로 운명하셨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마을 빨래터에 있다가 일본군에 끌려가 대만 위안소에서 고초를 겪으신 분이라고 합니다. 근본적인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자꾸 세상을 떠나십니다. 이제 등록된 분 가운데 35분밖에 생존해 계시지 않습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정신대 문제의 종식을 선언하듯,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이미 1993년 '고노 담화'나 1995년 '국민기금'보다도 후퇴한 것이라고 <2015 '위안부' 합의 이대로는 안 된다>(경인문화사)는 말합니다. 이 책은 2015년의 '위안부' 합의가 왜 잘못됐는지 조목조목 짚어 줍니다.

이 글을 쓰며 책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알리기 위해 가급적 제 말은 많이 삼갔습니다. 대신 어쩔 수 없이 인용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은 미리 일러두겠습니다.

하나, 법적 책임이 사라졌다

책에 따르면, 유엔 인권위원회의 1994년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특별 보고' 등 일련의 보고서나 2001년 최종 판결문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인도에 대한 범죄, 노예제 금지 등의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2005년 8월 20일 '한일회담 문서 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음." (52쪽)

일본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게 공식적 입장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그런 법적 책임을 10억 엔의 특별 기금으로 얼버무리고 만 것입니다.

책에서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공동 저자 김창록 일본군위안부연구회장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015년 합의가 발표되는 순간 (중략) 무대 위에서 책임을 추궁당하던 일본 정부는 슬그머니 객석으로 내려와 '다 끝났다'며 팔짱을 낀 채 '10억 엔을 받으려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중략)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일본의 범죄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죄에 대한 책임이니 법적 책임이며, 일본의 책임이니 국가의 책임입니다." (7쪽)

책은 2015년 합의가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분명히 부정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인도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추상적이고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 주체의 품위를 유지하려는 문장"으로 짜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이나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일본의 '법적 책임'입니다.

둘, 집합적·역사적 문제를 개인화했다

이 합의에 앞서 박근혜 정부 관계자는 일일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가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합니다. 살아 계신 할머니들 모두가 동의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위안부 문제의 집합적 대표자인가는 의문이라는 게 책의 주장입니다.

동의가 사실이라면 위안부 할머니들 중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반대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더 나아가 생존 할머니 모두가 이의가 없다고 해도 생존자들만의 의견으로 일본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결론이 가능한가 물어야 합니다.

"이번 합의는 집합적, 역사적 차원의 피해 회복의 방법에 대한 고민도 없고 이에 관한 공론의 장도 마련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20만을 헤아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기다림을 외교부 담당자가 만났다는 20여 명의 생존자 및 보호자의 대리 동의로 봉합하려 한다면, 그것은 반역사적 행위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40쪽)

"현재 생존 피해자 40여 명의 의견과 존재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배상 문제가 이 개인들에 대한 배상으로 그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략) 이들의 피해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합적이고 역사적인 사안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38쪽)

셋, 주체가 빠진 객체들의 합의에 불과하다

일본이 국가권력으로 피해를 준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들 당사자들입니다. 그러나 한일의 2015년 합의에서 당사자들은 객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책임 있어야 할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가 만드는 재단에 기금을 출연할 뿐입니다. 그것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말입니다.

"2015년 합의는 그 내용과 절차에서 피해자와 함께하지 않았다. 문제의 제기에서부터 해결까지 함께해야 할 피해자는 주체가 아니라 기껏해야 객체로 위치 지워졌다. 아니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객체도 되지 못했다." (40쪽)

"박근혜 정부는 그 동안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일본측에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를 패러디하여 말해 보면 협상의 결과는 '일본이 수용할 수 있고 일본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이 아니었나 싶다." (105쪽)

책은 적어도 △피해자들에 대한 기억 사업 △유골 송환 사업 △명확하고 수용할 만한 진실 규명 △피해 회복을 위한 국가 간 피해자 간 신뢰 프로세스 확립 △우리나라가 외국 정부와 맺은 조약 환기 △피해 당사자와 더불어 시민적 합의(광의의 피해자 포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결국 알맹이 없는 합의를 함으로 우리 내부의 갈등만 부추기고 말았습니다. 이를 책은 "피해자들에 대한 오만한 폭력"이라고 말합니다. 가해 국가의 책임을 제쳐 두고 피해국 내부의 갈등만 조장한 이 합의를 "불가역적", "최종적"이라는 문장을 써 고집하면 할수록 더욱 우리 사회가 파국으로 갈 게 뻔합니다.

지금까지 살피며 밑줄 그은 세 가지 면에서만 봐도 2015년 합의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대로 안 된다'는 문재인 정부의 문제의식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주목해야 합니다. 2015년 한일 합의를 함축적으로 말한 내용을 밑줄 그으며 이 글을 마칩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당사자들의 초창기부터 꾸준히 제기한 요구 사항 중 어떤 것도 분명하게 담보되지 않은 수사적 차원의 책임, 사죄, 보상에 불과하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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