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9월 25일 종교개혁 500주년 기도회에서 박유미 박사(전 총신대 강사)가 '여성과 신학생'을 주제로 전한 메시지 전문입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전 총신대 강사 박유미입니다. 저는 지난주 수요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전계헌 총회장) 총회를 다녀왔습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신대원)을 졸업한 여동문들과 함께 "총회는 여성 안수 허락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신대원 여동문들은 10년이 넘도록 총회를 향해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달라"고 외치고 있지만, 총회는 1998년 여성 목사 안수를 불허한다는 방침을 세운 후 우리의 요구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 변하는 20년 동안, 예장합동과 신대원은 여성의 평등성과 여성 안수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연구한다거나, 총회 차원에서 논의한다거나, 신대원 교수들이 이 문제를 주제로 논문을 낸다거나 세미나를 연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총신대는 1997년 이후 여성 문제에 완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신학은 많은 발전을 이루어 본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고, 이를 학교와 교회가 활발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신대는 여성 문제만큼은 새로운 해석을 외면하고 20년 전 <신학지남>에 쓴 글을 경전화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박유미 박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 여성 목사 안수를 허락하라고 목소리 내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렇게 총회와 신학교가 여성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는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기 때문입니다. 교단 내 목사와 총신대 교수는 어디를 막론하고 남성들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예장합동과 총신대는 모두 남성입니다. 심지어 총신대는 여성 목사 안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이유로 저를 포함해 몇 명 있지도 않은 여자 강사들을 거의 다 내보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총회와 신학교에 여성들이 없다는 것은, 여성들의 생각과 의견이 총회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교회가 오직 남성 중심적 신학과 해석으로 이뤄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교회는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성의 신학과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남성 중심적 신학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남녀 차별을 만들어 냈는데 첫째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한 것입니다. 남녀는 하나님 형상을 지닌 동등한 존재임에도, 인간·이웃에 대한 예의나 정의와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 대상은 남성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성도 간 사랑이나 공의를 이야기하면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했다면, 결코 여성에게 “잠잠하라”, “일절 순종하라”는 폭력적인 말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떤 남성이 말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입 다물고 순종하라”고 하면, 그 남성은 매우 기분 나쁘고 모욕감을 느끼겠지요. 여성도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고 모욕감을 느낍니다. 여성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내 여성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이런 말을 시시때때로 듣습니다.

이것이 과연 인간에 대한 예의인가요? 또한 여성은 인내와 순종, 희생과 같은 덕목을 강요받습니다. 사실 사랑과 정의, 인내와 순종, 희생 등은 모든 인간에게 베풀어야 하고, 모든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그런데 일정 덕목을 떼어 여성에게만 더 강요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며 여성을 남자 아래 두기 위한 것이고, 여성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폭력입니다.

저는 1년 중 5월이 가장 싫습니다. 교회에서 여성 억압적인 설교가 ‘가정의 달’이라는 명목으로 가장 극심하게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주일에서는 "좋은 어머니가 되라", 어버이주일에서는 "시부모에게 잘하는 며느리가 되라", 부부주일에서는 "순종하는 아내가 되라"고, 매년 주문처럼 설교를 듣습니다. 반면, "좋은 아버지가 되라", "좋은 사위가 되라",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되라"는 내용은 양념처럼 살짝 이야기하고 맙니다. 결국 가정의 달을 빙자해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이며 남성과 가족에게 늘 헌신하고 봉사하는 존재라는 것을 세뇌시키는 것이죠.

둘째는 여성을 '유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작년과 올해, 남성 목사의 성범죄 사건이 교계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여성 피해자는 공통으로 말했습니다. 교회 사람들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며 목사 편을 든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성범죄 피해자인 어린 여성을 오히려 '꽃뱀'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가해자로 만들고 성범죄자를 피해자로 만드는 것은, 목사들이 그동안 여성을 '유혹하는 사람'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당한 것도 디나가 쓸데없이 세겜에 놀러 나갔기 때문이고, 다윗이 간음한 것도 밧세바가 목욕하며 다윗을 유혹했기 때문이고,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하와의 유혹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남성들을 마치 희생자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남성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말이 자신의 죄를 하와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여성들 입장에서 보면 남성들이 유혹자고 위험한 존재며 실제로 교회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남성이 저질렀음에도, 이것을 해석하고 말하는 남성은 철저히 남성 위주 시각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단속하려 합니다.

그래서 교회 여성에게 "옷을 이렇게 입어라", "화장은 이렇게 해라", "행동거지는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야 남성들이 유혹을 안 받는다고 말입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한두 번 안들어 본 여성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 예배하러 왔다가 멀쩡한 여성이 갑자기 유혹하는 사람 취급을 받는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남성들에게 각자의 눈과 손을 조심하라고 했지, 여성들에게 옷차림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이렇게 남성들은 자신의 편의대로 여성을 유혹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남성은 피해자로 규정하며,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성범죄를 비호하고 여성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교회는 여성들 특히, 어리거나 젊은 여성들에게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이렇게 여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며 피해를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도회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박유미 박사. 뉴스앤조이 최유리

셋째, 남녀 차별은 교회 사역에서 눈에 띄게 나타납니다. 먼저, 교회는 여성이 60-70%를 차지하며 대다수 교회 봉사를 여성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사·성가대·식당·봉사·안내·청소 그리고 교회 행사 등 대다수 봉사에 여성들이 참여합니다. 교회는 여성들의 봉사와 참여로 운영되고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서 발언권을 가진 자리는 대부분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역자·장로·안수집사 대다수가 남성입니다. 그래서 교회 일을 결정할 때 실제로 일하는 여성의 의견이 묵살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여성은 자신의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제직회에서 용감하게 발언하거나 아니면 가깝게 아는 장로님이나 목사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설혹 의견을 낸다고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당회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여성들 의견이 충실하게 반영되기 힘듭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남녀 차별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싶은 것이 바로 ‘여성 목사 안수’ 문제입니다. 현재 여성 목사 안수를 시행하는 교단이 그렇지 않은 교단보다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하며 만들어 놓은 남녀 차별 논리는 여성 목사 안수를 시행하는 교단에서도 제거되지 않고 여전히 교회 여성을 차별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성 목사 안수 문제가 여성 차별의 원인이 되는 건,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하기 위해 남녀 동등성보다 남녀 차별성을 강조하고 특별히 여성의 열등성과 종속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하기 위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은 창조 질서라는 등, 드보라는 사사가 아니라는 등, 여성은 생리하기 때문에 부정한 존재라는 등, 여성은 감정적이어서 지도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 여성의 목소리는 설교에 적합하지 않다는 등, 전혀 성경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말을 하며 여성을 차별하고 비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목사 안수를 외치는 것이 단지 여성도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교회에서 여성의 평등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성 안수는 교회 회복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현재 교회는 여성 목회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반면 상담과 양육을 받아야 할 여성 교인은 많습니다. 현재 여성을 상담하고 양육하는 사람은 남성 목회자입니다. 목회는 성경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전인적인 돌봄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여성들 삶을 잘 모르는 남성 목사가 적절한 상담과 도움을 주기 어렵습니다.

특히 남편 또는 시댁 간의 심각한 갈등, 육아와 직장 등 여성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남성 목사들이 상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보통 피상적인 성경 이야기나 원론적인 말 혹은 남성 중심적 관점을 강요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오히려 상처받거나 급하게 문제를 덮으려다 문제를 더 키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 목사에게 가정사나 감정 문제까지 세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일대일로 상담받다 추문에 휩싸이기도 하고 실제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재 교회 여성은 목회자에게 자신의 영적 문제를 제대로 상담하고 도움받기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여성 목사가 많이 세워져야 합니다. 여성 목사가 이들의 필요를 채워 주며 건강한 그리스도인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렇게 여성 교인이 교회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숙해 갈 때, 교회 역시 건강해 질 것입니다.

교회는 남녀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배운 여성 청년에게, 더 이상 사랑과 자유가 넘치는 곳이 아니라 억압과 굴종의 장소가 됐습니다. 이런 부조화 속에서 많은 여성 청년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더 이상 교회에서 잠잠하면 안됩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부당함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 이상 여성을 억압하는 곳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지난 봄 총신대 여학생회에 특강하러 갔을 때, “페미니즘은 인본주의니 공부해서는 안 된다”며 남학생들이 공부을 막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남성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던 것을 여성 관점으로도 보자는 운동이며, 여성도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평등성 회복 운동입니다. 그런 운동을 인본주의라며 반대한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럼 남성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성경적 관점이고, 여성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인본주의입니까? 이것은 여성의 입을 막기 위한 또 다른 궤변일 뿐입니다.

남녀 평등성 회복은 여성이 지닌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며 남자와 여자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교회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운동입니다. 여성도 교회에서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고 존중받고 소명에 따라 봉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교회가 여성 청년에게 이런 곳이 되어야 그들이 교회에 올 수 있습니다. ‘억압받는 구원’은 참된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남성 청년들이 교회에서 평등 교육을 제대로 받을 때, 여성을 복종시키거나 싸울 대상이 아닌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 생각하며 공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에 미래가 생기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저는 교회가 남녀 차별을 극복하고 평등성을 회복하는 게 가장 시급한 개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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