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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7] 사회 변화 맞춰 LGBTQ 받아들인 캐나다연합교회

앨런 홀 목사 "교리와 사회는 동전의 양면"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7.09.22  11: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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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연합교회는 오랜 시간 논의 끝에 LGBTQ(성소수자를 통칭하는 단어)를 온전한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LGBTQ를 품고 환대하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으며,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있어 날마다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윤세관 총회장) 102회 총회를 찾은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 앨런 홀(Alan Hall) 목사가 말했다. 외빈 자격으로 총회를 방문 중인 홀 목사는 9월 21일 오전 '캐나다연합교회가 LGBTQ를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기장은 총회 기간 중 매일 오전 5개 주제로 분과 모임을 열고 있다.

앨런 홀 목사는 캐나다연합교회가 LGBTQ를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홀 목사는 캐나다연합교회 역사를 설명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다수 한국교회에서 LGBTQ 이슈를 획일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LGBTQ 목사 안수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결정"

캐나다연합교회는 정체성이 서로 다른 여러 교단이 모여 새롭게 시작한 곳이다. 장로회·감리회·회중교회가 모여 시작한 캐나다연합교회는 첫 논의부터 교단 설립까지 13년이 걸렸다. 1912년 논의를 시작해 교단 설립 동의에 이른 1925년까지, 캐나다연합교회 선조들은 의견 충돌에도 불구하고 인내 속에 논의를 지속했다.

교단 구성원이 공동으로 고백하는 '신조'(Faith Statements)도 처음 제정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변하고 있다. 홀 목사는 "신조는 1940년, 1968년, 2006년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달리하며 계속 변화했다. 이 과정을 보면 우리 교단이 설립된 1912년부터 21세기까지 시간과 전통을 아우르는 신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조가 변할 때마다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단 설립부터 인내 속에 논의를 계속한 캐나다연합교회의 전통을 따라 신조를 바꿀 때도 긴장이 있었지만 논의를 지속했다.

홀 목사는, 교리 변화는 사회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했다. 그는 "교리와 사회는 따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 가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연합교회는 설립 당시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캐나다 사회 법은 여성에게 '사람'이라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8년 캐나다 의회가 '여성도 사람'이라는 지위를 확인하자 캐나다연합교회는 사회 변화에 발맞춰 여성에게도 안수를 줄 수 있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그 결과 1936년 캐나다연합교회 최초의 여성 목회자가 탄생했다.

여성의 지위가 확인된 뒤에는 이혼과 재혼 문제가 등장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에 현격한 변화가 있었고, 전통적인 '가정'의 이해에도 변화가 있었다. 캐나다연합교회는 긴 논의 끝에 1962년 "이혼한 사람도 재혼할 수 있고, 그런 사람도 교회의 교인이 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1960~197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전통적인 성의 가치가 뒤흔들렸다. 캐나다연합교회는 이 시기 결혼, 성 역할(Gender role), 섹슈얼리티, 안수를 7가지 갈래로 분류해 20년간 연구했다. 그 결과 1988년 총회에서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 결과에 따라 교단 헌법에도 "평등한 모든 사람은 안수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다.

"우리는 'LGBTQ에게 목사 안수를 허락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캐나다연합교회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LGBTQ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한 결정이다."

홀 목사는 이 과정에서 LGBTQ 당사자를 비롯해 모두가 상처받았고 그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그만큼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캐나다연합교회 결정으로 교회를 떠난 사람도 일부 있었다. 교단 차원에서 입장을 분명히 한 캐나다연합교회는 상처를 계속 들추어내 악화하는 것보다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한동안 이 이슈에 침묵했다.

침묵을 깨고 다시 성소수자 이슈가 논의되기 시작한 건 목회 현장이었다. 홀 목사는 당시 시무하던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었다.

토론토 외곽 소도시에 있는 작은 교회, 교인 150여 명이 공동의회로 모였다. 누군가 "LGBTQ 이슈는 우리 문제가 아니다. LGBTQ가 주로 사는 대도시에 있는 교회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자 공개 석상에서 마이크 앞에 서 본 적 없는 한 여인이 침묵을 깨고 "내 아들은 게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 사람들은 가족 중에 LGBTQ가 있다는 사실을 줄줄이 고백했다. 홀 목사는 "그게 우리 교회의 터닝포인트였다. 교인들은 이 문제가 다른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이슈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홀 목사는 "캐나다연합교회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매일 새로운 도전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강의에 참석한 기장 총대 30여 명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를 향한 도전은 서로를 품고 환대하는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총대 30여 명이 참석해 앨런 홀 목사의 강의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동성애 허용하면 수간도 허용?
"두 인격 사이 권력의 균형 맞아야"

약 40분가량 이어진 홀 목사의 강연을 들은 총대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한국교회는 명확하게 "동성애 반대"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총대는 "동성애를 허용하면 소아성애, 수간, 시체와의 섹스 등 성적 지향이라고 주장하는 행위들을 다 받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홀 목사는 (동성애를 인정한다는 것은) 서로 동등한 관계에 있지 않은 성적 관계를 허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람 사이 관계를 이야기할 때는 서로 합의되고 존경하는, 성숙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어른과 아이 혹은 사람과 동물 관계까지 옳다고 하는 건 아니다. 두 인격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맞아야 동등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전체 인구에서 LGBTQ가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묻는 총대도 있었다. "6~10%"라는 답이 돌아오자 그들이 취향에 따라 동성애를 선택했다고 보는지, 선천적이라고 보는지 물었다.

홀 목사는 "지금까지 나온 과학적 연구 결과로 비추어 볼 때, LGBTQ의 성적 지향은 태생적인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성적 지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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