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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 일

[창조과학 연속 기고⑯] 새로운 과학 운동을 향해

김우재   기사승인 2017.09.18  0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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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에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 과학의 건강성을 담보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 연속 기고'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글들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한국 과학 대중화 운동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자연과학이 처음 조선에 전파되고 지식인 사회에 퍼져 나간 시기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최한기의 저술을 통해 개화기 조선 지식인의 눈에 비친 서양 자연과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1) 개화기 중인 계층과 지식인에게 제한적으로 유통되던 자연과학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지식인 대다수와 일반인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 그 추동력은 바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그들이 지닌 자연과학 지식에 있다는 추론 때문이었다.

실제로 개화기 지식인 대다수는 서구 열강이 지닌 총포와 선박 등의 기저에 자연과학이 있다고 여겼으며, 우리가 식민지 처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자연과학적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 1930년대 김용관의 '발명학회'와 '과학 데이' 운동은 한국 최초의 과학 대중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과학 대중화 운동의 시작은 계몽주의적 발상에 기대고 있다.

식민지 시기의 과학 대중화 운동은 '과학 지식 보급화' 운동에 머물렀고, 과학을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강했다.2) 자연과학에 대한 각성이 일본 제국주의가 지닌 자연과학적 우세에서 비롯된 만큼, 자연과학을 바라보는 식민지 지식인의 시선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유행 속에서, 과학은 한 국가를 강력하게 만드는 어떤 테크놀로지의 이미지이면서도 막상 그 실체를 대하는 경로는 강연과 책 이외에는 없는 상태가 만들어진다.

만약 이 시대에 태어난 지식인이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면, 그에게 유학 외의 방법은 없었다. 특히 이 시기 조선의 상류층은 자식을 의사나 법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자연과학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3) 이런 상황에서 중인층 자제의 선택은 유학뿐이었고, 그에게 영향을 미친 과학 대중화 운동은 과학을 도구적으로 여기는 사상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후 다시 과학 대중화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유행한 시기는 박정희가 집권한 1960~1970년대다. 이 시기 박정희는 근대화를 위한 유일한 길을 '기술'에 대한 투자로 생각했고, 이를 통해 산업화를 이루고자 했다. 박정희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 미국이 무지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미 합작으로 이루어진 KIST의 설립은 과학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는 기폭제가 된 사건이다. 박정희에게 과학이란 기술이었고, 과학이란 기술을 포장하기 위한 도구였다. 과학기술이라는 말은 그렇게 탄생했고, 박정희는 금속공학자 최형섭에게 초대 과학기술원장직을 맞긴다.4)

최형섭을 비롯한 파이클럽은 식민지 시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부분 공학 분야를 전공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과학을 도구적으로 사고했고, 1930년대에서 조금도 진일보하지 못한 채 여전히 과학으로 사회를 계몽하려고 했다. 김용관의 시대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미국의 원조로 연구 기관이 생겨, 유학을 떠나지 않아도 과학기술자가 될 수 있다는 차이였다.

박정희는 과학 대중화 운동을 다시 활성화했다. 이 시기의 슬로건은 '과학의 생활화'나 '과학 대중화'처럼 계몽주의에 기초해 있었고, 국가의, 국가를 위한 과학이라는 새로운 측면을 지니고 있다. 즉, 박정희는 과학에 국가주의를 덧씌우는 데 성공했다. 이제 과학은 우매한 대중을 계몽하고 사회를 진보시키는 지식에서 벗어나, 국가의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키는 초석이 되고, 과학자는 이를 위해 봉사하는 치열한 산업 현장의 역군이 된다. 새마을 운동과 박정희의 과학 대중화 운동은 동전의 양면이다.

흔히 한국 과학기술 정책은 박정희 시대 이후 패러다임의 변화를 전혀 겪지 않았다고 말한다.5)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인들이 과학기술을 국가의 도구로 보는 사고방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이는 민주화 세력과 보수 세력, 심지어 진보 정당에서도 다르지 않다. 현장의 과학기술이 과학에 무지한 정치인과 관료에 의해 그저 국가 경쟁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을 때, 역설적으로 박정희에 의해 시작된 과학 대중화 운동은 반대편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을 필두로, 과학 대중화 운동 예산은 한해도 빠짐없이 지원되었고, 이들은 초등학생들과 중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과학 계몽 운동에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6) 과학의 달만 되면, 노벨상 시즌만 되면 등장하는 기사와 글은 반복되고 있다. 과학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GDP 대비 세계 최고의 연구비를 지녔고, 과학 대중화 운동이 근 100년간 지속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왜 과학이 없을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한국 과학기술의 양적 성장 과정에서 얻은 성과들은, 과학 대중화 운동이 이룬 성과들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현장의 과학자들은 과학 대중화 운동의 리더들과 괴리되어 있고, 서로 관심을 별로 두지 않는다.7) 둘째, 과학 대중화 운동이 지나치게 말과 글에 집중되어 있다. 지난 십년간 한국 과학 대중 교양서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필두로 이제 한국 과학 대중서 시장에도 토종 필자들이 크게 성장했고, 출판 시장을 좌우하는 영역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안아키'처럼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부모가 있고, 창조과학자가 장관 후보가 되고, 허현회의 사이비 의학을 신뢰하는 사람도 많다. 이 해설되지 않는 거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현장의 과학 활동이 지닌 특징에서 그 원인을 추적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과학은 이론과 실험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고, 이론은 말과 글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과학의 이론적 부분은 강연과 책이라는 매체를 위주로 진행되는 과학 대중화 운동이 충분히 담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의 다른 절반인 실험은 그렇지 않다.

실험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며, 그 지식은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다. 그 현장인 실험실은 이미 끝난 실험을 다시 재현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실험을 디자인하고 결과를 얻어 분석하는 곳이어야 한다. 한국의 과학 실험실들은 모두 죽은 지식을 재생산하는 과학의 묘지와 같다. 실험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이며, 이미 다른 사람이 했던 것을 재현하는 일은 꼭 필요하지 않다면 과학자가 취하는 행동은 아니다. 과학 대중화 운동은 바로 과학의 절반인 실험을 그 중심에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흔히 과학에 대한 논쟁이 있을때면, 토마스 쿤과 칼 포퍼 같은 과학사가, 과학철학자가 등장하곤 한다. 이들에 대한 여러 이론적 쟁점이 있지만, 쿤과 포퍼의 책을 가만히 읽고 있으면, 그가 과학을 이론의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마 그런 인식은 현장에서 실험과학자의 경험을 해본 이에게는 더 분명할 것이다.8) 과학을 글로 남겨진 역사로만 접근할 때 그런 오류가 발생하며, 이는 현장의 과학과 과학사·과학철학이 괴리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과학 대중화 운동은 과학사·과학철학이 저지른 비슷한 오류를 저지른 셈이다. 과학의 현장인 실험실을 떠난 과학 대중화 운동은 불완전하다. 거기서 과학은 '강연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책만 읽으면 과학자가 되는', '강연과 책을 많이 듣고 읽은 사람이 더 과학자스러워지는', '실험실 밖에서도 가능한' 존재가 된다. 그건 절름발이 과학이다.

과학 대중화 운동은 '아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한 번 몸에 익힌 습관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전거 타기는 평생 한 번만 익혀 놓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하는 것이 되면, 한국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과학을 몸에 익히게 되고, 천천히 이 사회에는 과학을 몸으로 체득한 이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런 노력 속에서, 창조과학회 같은 사이비 단체는 굳이 나서 분쇄하지 않아도 햇볕에 녹는 봄눈처럼, 그렇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과학은 하는 것이다. 아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과학 운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창조과학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출처: [창조과학 연속 기고 - 16] 새로운 과학 운동을 향해…(마지막 기고)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 바로 가기

김우재 / 급진적 생물학자

각주

1) 최한기의 <기측체의>와 <기학>은 만약 한국과학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자가 있다면 가장 먼저 읽어 봐야 할 저술이다. 개인적으로 한국과학사는 바로 최한기 근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임종태. "김용관의 발명학회와 1930년대 과학 운동." 한국과학사학회지 17.2 (1995): 89-133.
3) 김근배. (1998). [연구논문] 식민지 시기 과학기술자의 성장과 제약 - 인도·중국·일본과 비교해서 -. Journal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8, 160-194. 혹은 필자의 글 '영원한 중인 계급'을 참고할 것. http://saesayon.org/2010/08/13/10136/
4) 자세한 사실들을 알고 싶다면 구글에서 '김우재+최형섭'을 검색할 것.
5) 한 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과학기술 정책은 한 번의 큰 변화를 겪는다. 그건 바로 브레인코리아21(BK21)이라 불리는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였다. 하지만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투자는 이공계 직업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고, 2017년 한국은 다시 한 번 이공계 위기를 겪는 중이다.
6) 그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의 장래 희망은 의사, 변호사 아니면 연예인이다.
7) 물론 이제 점점 달라지는 중이다.
8) 그건 과학철학에서 말하는 과학철학의 세 가지 과제로 환원되는 문제인데, 필자의 다른 글을 참고할 것. https://revoltscience.wordpress.com/2012/07/15/왜-철학자는-과학자들에게-존경받지-못하는가/와 http://heterosis.net/archives/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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