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33명의 목숨을 앗아 간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 한인 사회는 오랜 기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범인이 바로 한국계 이민 1.5세대 조승희 씨였기 때문이다.

조승희 씨는 현장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몇몇 전문가는 이민 세대가 이국 땅에 잘 적응하지 못해 이런 참극이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당시 대학 측은 조 씨가 외톨이였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풀러신학교에서 기독교윤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학준 교수는 미국 한인 이민 세대 대다수가 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갈등을 겪는다고 말한다. 유교주의·권위주의 영향 아래 자란 이민 세대가 미국에서 개인주의·자유주의 등 상반된 문화를 만나면서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학준 교수는 한인 이민 세대 70%가 청소년일 때 한인 교회를 찾는다고 했다. 한인 교회는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고 지역사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한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에서도 이민 세대는 자신 안에 있는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다. 성인이 되면 결국 교회를 떠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 교수는 한인 이민 세대를 돕기 위해 2007년 G2G교육연구소를 설립했다. G2G는 '우리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Generation to Generation)'라는 의미다. 연구소는 이민 세대가 문화적 갈등과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성경 공부 자료를 발간해 왔다. <iDentity>, <Living Between>, <사다리가 되어 주는 부모> 등이 대표적인 교재다.

현재 미국 한인 교회 130곳이 주일학교에서 G2G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 교수는 2015년 G2GKOREA를 창립해 한국 상황에 맞는 청소년·학부모 교재를 출판하고 있다. G2G 교재가 한국 청소년 사역에 필요하다고 본 교계 기독교교육학자들이 G2G에 출간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이학준 교수는 교회가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기 신앙을 확립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판 성경 교재 출간 작업을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이학준 교수를 9월 15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 청소년 사역이 가시적인 대형 집회와 이벤트에 몰두해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에게 교리와 율법을 강요하기보다 먼저 이들이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유롭게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한인 이민 세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한인 교회를 개척해 15년간 목회했다. 사역을 하면서 어릴 때부터 올바른 신앙관과 세계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형성된 틀은 좀처럼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타인(사회, 문화, 자연을 포함)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정립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대다수 교회는 이런 생각은 뒤로하고 일단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걸 우선으로 여긴다.

20년 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인 이민 세대가 무더기로 교회를 떠났다. 한인 교회는 이를 '조용한 출애굽'(Silience Exodus)이라고 불렀다. 한인 이민 세대 약 70%는 청소년일 때 한인 교회를 출석한다. 미국 사회가 인종 중심으로 뭉치다 보니, 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있는 한인 교회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하면 10명 중 1.5명만 교회에 남는다.

-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등학생들은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하면 기독교를 향한 비판과 도전에 직면한다. 성, 술, 마약 등에도 그대로 노출된다. 그런데 교회는 이들이 청소년일 때 이러한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민 세대가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고 행동해야 할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성경 공부 교재를 만든 건 일종의 백신을 만든 것과 같다. 교재는 청소년들이 사회문제를 놓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한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어 대학교나 사회로 나갔을 때 무방비로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G2G 교재는 2007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판도 나오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G2G 교재가 갖고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G2G 교재는 여러 분야 학자들이 모여 만들었다. 기독교윤리학자, 기독교교육학자, 조직신학자가 참여했다. 우리는 선배 기독교인에게 물려받은 신앙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재는 기존 성경 교재와 구성이 다르다. 기존 교재는 성경 본문을 읽고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 얘기하는 방식이었다면, G2G 교재는 미국 한인 청소년이 겪는 실질적인 문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 우리의 모토는 "청소년이 고민하는 문제는 모두 취급한다"이다. 혼전 순결, 포르노, 성, 마약, 인종차별, 타 종교와의 관계,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주제가 교재에 등장한다.

예를 들어, 가수 싸이가 미국에서 인기가 높을 때였다. 당시 한인 이민 세대는 자부심이 아주 강했다. 그런데 싸이 뮤직 비디오에는 성적인 문제들이 등장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교회가 못 보게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안 보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문제를 놓고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유롭게 토론해 보자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문제를 비유로 전하셨다. 고용주는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오랫동안 사마리아인을 차별해 온 유대인의 모습은 과연 옳은지, 강도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등 모두 그 시대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였다.

G2G 교재는 섣불리 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한국교회도 청소년들에게 혼전 순결이나 술, 담배 등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사역자가 일방적으로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방식이다.

율법을 강조하면서 청소년에게 "하라",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건 '쇠귀의 경 읽기'다. 사실 청소년은 이미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자기들만의 세계와 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어른들이 간섭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영역이 따로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하라", "하지 말라"고 강요하면 처음부터 청소년과 접촉점을 놓치게 된다.

예수님도 세리나 창녀를 정죄하지 않았다. "하라", "하지 말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대화를 우선했다. 이미 술을 먹고 있는 친구들, 성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은 기독교인 자격이 없는 걸까. 사실 어른들도 이 모습 저 모습 죄 짓고 살았으면서 나중에 용서받았다며 다시 잘 살고 있지 않나.

율법보다는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교회와 가정에서 먼저 배우고 누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다. 이것을 배제하고 율법을 우선한다면, 아이들은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안내하는 이정표와 같다. 거기에 심판적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가 수많은 이벤트와 대형 집회를 열어 청소년 사역을 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예배보다 소그룹과 같은 작은 단위의 모임이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한순간의 회심으로 아이들이 바뀔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청소년 사역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신앙을 확립해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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