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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호모포비아가 아니었다"

로마서 1장 '역리'는 현대의 동성애를 지칭하는 말이었을까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7.09.14  17: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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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롬 1:26-27)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보수 개신교인들은 신약에서도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고 말할 때 이 구절을 든다. 어떤 목사들은 이 구절에서 말하는 '상당한 보응'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로마서를 쓴 바울은 지금 사회에서 말하는 '동성애' 개념을 알고 이 구절을 쓴 것일까. 바울신학을 전공한 한수현 박사(시카고신학교)는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 이를 현대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9월 13일 길목협동조합이 개최한 '이단 시비에 바울이 답하다' 강좌에서, 바울이라면 지금 한국 개신교가 앞장서는 반동성애 운동과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이단성 시비를 어떻게 볼지 분석했다.

'역리'는 로마제국 황제들의 
난잡한 성생활을 가리키는 말

구약은 동성애를 부분적이고 파편적으로 언급하지만 로마서는 그렇지 않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순리'와 '역리'를 말한다. 보수 개신교인들은 이 구절을 바울서신 중 가장 강력하게 동성애를 정죄하고,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라고 본다.

한수현 박사는 로마서 1장에 나온 '순리'와 '역리'를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레위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죄의 한 종류로 언급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로마서 1장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땅에 임한다고 선언하면서 갑자기 '동성애 본문'이 등장한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개신교인들 주장대로라면, 이 부분은 동성애 때문에 이 땅에 악이 임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읽힌다.

한수현 박사는 꼭 그렇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바울서신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인간 도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로마서가 쓰인 당시 역사·정치·사회적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드러났는지, 바울은 왜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님이 그 공동체를 통해 로마 사회에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살펴야 한다. 바울서신은 신학자·사도·목회자의 시선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성서 연구자 닐 엘리엇(Neil Eliott)이 쓴 <바울 해방하기: 하나님의 정의와 바울 사도의 정치학>(한국 미출간)에는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한수현 박사는 말했다. 엘리엇은 역사가 수에토니우스 말을 인용하며 "당시 로마 황제들은 모든 상상 가능한 역리적 행위를 다 행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로마제국 3대 황제 칼리굴라는 친족과의 근친상간, 친구 부인 강간, 외국인 죄수·인질과 성행위 등을 했다. 모두 '역리'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칼리굴라의 모든 악행을 그대로 답습한 폭군 네로. 네로가 지배하던 로마제국 내 공동체에 보내는 편지가 로마서다. 한수현 박사는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은 모두 제쳐 두고, 그 배경과는 상관없이 로마서 1장을 임의로 현대 성소수자들에게 대입해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되물었다.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바울이 동성애를 혐오했기 때문에,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자)라서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라고 한수현 박사는 설명했다.

"바울이 정말 호모포비아였다면 그의 시각으로는 바울서신을 이해할 수 없다. 동성애자를 색출하고 격리시켜 이 세상에서 동성애자가 사라지면, 우리가 자연스레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깨달아 알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까. 그렇다면 바울은 뭐 때문에 칭의를 이야기했을까.

바울이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성적 타락이 로마제국 엘리트 계층에 공공연하게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었다는 거다. 로마서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타락한 사람들이 제시하는 정치 비전이나 모델을 로마인들이 믿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호소하기 위한 표현이었다고 보는 편이 문맥적으로도 맞다."

길목협동조합이 개최한 '이단 시비에 바울이 답하다' 월례 강좌에 50여 명이 참석해 강의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수현 박사에 따르면, 바울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모인 공동체에 또 다른 종교적 의무를 지우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보수 개신교인들처럼 동성애자 그리스도인이 이성애자로 돌아와야만 구원이 완전해진다고 보지는 않았다는 지적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케 된 그리스도인에게 그 어떤 율법·죄·종교의 굴레도 씌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 보수 개신교인들은 (바울이 하지 말라고 한) 그것을 하고 있다. 복음에다가 '너희들의 성 정체성을 바꾸면 더 고귀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자신들이 원하는 복음의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바꿔서 맞추려고 한다. 그건 제국의 방법이다."

한수현 박사는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우리와 다른 조건을 지닌 타자를 배척하고 떼어 내는 게 아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앞으로 교회는 성소수자들을 일상으로 초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턱대고 그들을 적대시하거나 배척하는 게 아닌 먼저 이웃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성소수자 신학생들의 존재를 언급했다. 그가 다니던 신학교는 백인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한 박사를 도와준 사람들은 백인 성소수자였다. 한 박사는 "이미 미국 신학교와 교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성소수자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수많은 신학자도 겪은 일일 텐데 아무 말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침묵하지 않고 성소수자와 함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단'이라 낙인찍히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한수현 박사는 성소수자를 고침이 필요한 불완전한 대상, 정죄해야 할 타인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선 공동체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자고 했다.

"성소수자를 신학적으로 재단하고 판단하고 싶으면 그들을 먼저 이웃으로 맞은 뒤에 그들과 함께 논의하면 된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된다. 바울이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할 때 자기 신학을 강요하지 않았다.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더 돕고, 어떻게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한국교회도 일상에서 성소수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만나기도 전에 그들을 신학적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돕는 사람을 이단이라 몰아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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