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에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 과학의 건강성을 담보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 연속 기고'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글들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인터넷에 떠도는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은 흔히 이들이 기대고 있는 개신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박근혜 국정 농단에 대한 비판이 한국인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듯이, 비록 특정 종교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과 제지를 종교에 대한 그것과 혼동해선 안 된다. 서로 죽일 듯 싸우는 창조과학자와 반-창조과학 연대의 수준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인터넷상에 떠도는 '창좀'이라는 말은 창조과학자와 좀비의 합성어인데, 한 개인 혹은 집단을 좀비라고 비하하는 집단의 정체성이란, 그들이 비난하는 대상의 이름만 바꾸면 '일베'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창조과학자들이 살인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적과 싸우다 적을 닮아 가는 일이, 20년 전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이 한창이던 온라인 공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1)

창조과학을 논리적으로 격파하고, 이들이 온라인 공간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열심히 싸워 온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소식일지 모르지만, 한국창조과학회는 카이스트·포스텍·한동대·명지대 등등의 유수한 대학과 대형 교회를 점령하고, 매년 열리는 학술 대회에 수천 명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개신교 세력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의 승리에 도취되어 자만하는 동안, 이들은 현실 세계의 개신교 조직을 이용해 자금을 만들고, 학술지를 출판하고, 조직을 만들어 사회 곳곳 심지어 지식인 사회와 정부 기관에도 창조과학자를 진출시켰다. 박성진 후보는 그 한 사례일 뿐이다.

싸움의 방식이 잘못되었다.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창조과학과의 전쟁은 오히려 이들에게 권위를 부여했다. 마치 이들이 학술적 라이벌이며 진화생물학자들이 상대할 만큼 대단한 집단인 듯한 착각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학술적 권위가 생긴 집단은 사회적 권위를 갖게 되고, 그 권위를 이용해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종교인을 포섭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창조과학과의 전쟁을 벌여 온 지난 수십 년간, 그가 잡지를 통해 마이클 베히의 논증을 격파하고 창조과학을 언변으로 박살냈다는 에피소드 외에, 과학계가 얻은 소득은 없다. 그 기간 동안 창조론자들은 정말 근사하게 보이는 학술지를 펴냈고, 지적설계론을 통해 진화했고, 이젠 공직에 진출해 과학계를 지탱하는 사회경제적 틀을 조종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창조과학을 분쇄하려는 도킨스의 시도조차, 자신의 도그마를 적에게 주입하려는 나이브한 전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그마와 도그마가 부딪칠 때 생겨나는 건 전쟁뿐이다. 도킨스의 도그마가 창조과학자들에게 부딪히면, 그 작용은 더 강한 반작용으로'만' 나타난다. 창조과학에 대한 몇 번의 대규모 논쟁이 한국에서도 있었지만,2)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은 '교진추'라는 강력한 단체였다. 교진추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의3) 약자로, 이들은 과학교과서에서 비과학적인 진화론을 제거하기 위해 창조과학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한 비장의 무기다. 이들은 2012년 실제로 교육부에 청원을 시도, 교과서에서 시조새를 삭제하려다 여론에 밀려 후퇴한 적이 있다.4) 이 사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후 벌어지는 창조과학회의 움직임은 더 이상 진화론으로 향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굵직한 사건들만 나열해 보자면, 교진추의 시조새 청원과 비슷한 시기인 2012년 박근혜 정부는 장순흥이라는 창조과학자를 교육과학 분과 인수위원장에 임명했다.5) 이후 미래창조과학부가 발족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당선된 박근혜 정부에서 과학은 여러모로 신음해야만 했다. 'X-프로젝트'라는 대국민 과학기술 연구비 프로젝트는 영구기관을 믿는 사이비과학자가 주도했고,6) 창조과학회의 학술원장이었던 김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가 한국연구재단 생명과학단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선임에 대해 국내 생명과학자 누구도 언론을 통해 비판하지 않았다. 창조과학으로부터 가장 보호되어야 할 생명과학 연구비를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창조과학회의 그것도 학술원장이 버젓이 앉아 몇 년간 연구비 집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제는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라는 중책에 창조과학회의 이사가 임명됐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과학이 사라진 나라에서나 일어날 일이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창조과학의 해악은 결코 그들이 수천 명씩 모여 자기들만의 학술 대회를 열고, 진지한 과학자라면 누구도 읽지 않을 유사 과학 학술지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의 해악은, 그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을 갖기 위해 공적 영역으로 스며들 때 생긴다. 예를 들어, 카이스트에서 버젓이 창조과학회 회원들이 모여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까지 눈에 불을 켜고 비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단, 카이스트의 정규 세미나 혹은 정규 강의에서 창조과학이 강의된다면, 이런 시도야말로 제도적으로 처벌할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창조과학자가 교회에서 신학자들과 모여 진화론을 비판하건 말건, 우리는 그런 무의미한 일들에 화내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창조과학자가 과학 연구비 집행을 주도할 권력이 될 때, 창조과학자가 과학기술 정책을 좌우할 공직자에 이름을 올릴 때, 창조과학자가 대통령이 되려 할 때, 그들을 반드시 막아야 하며, 그들을 막을 여러 장치를 지금부터 건설해 나가야 한다.

그들이 개인적 신앙과 판단을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와 사회를 창조과학으로 물들이려 할 때,7) 바로 그 순간이 한 사회가 길러 온 기초과학의 저력이 드러나는 때다. 우리에게는 그런 저력이 있는가? 없다. 그 이유는 수십 년간 한국사회에서 진행되어 온 과학 대중화 운동에 대한 심각한 재고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한국 과학 대중화 운동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박성진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출처: [창조과학 연속 기고 - 13] 사생활과 공공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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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 급진적 생물학자

각주

1) 확인하고 싶다면 반-창조과학 활동을 벌이던 한국 회의주의자들의 말로를 보라.
2) 1990년대에는 '회의주의자의 사전' 등의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또 2000년대 후반에는 장대익 등의 '과학과 종교 논쟁'으로 재점화되고는 했다.
7) 그것이 박성진의 '창조 공학' 발언이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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