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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 활동가가 본 학교 폭력

[인터뷰]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 이재영 원장

최유리   기사승인 2017.09.13  15: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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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가해 학생 1명이 9월 11일 구속됐다. 청소년 폭행 사건에서 10대가 구속된 것은 이례적이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부산소년원에 위탁하는 임시 조치가 취소돼 도망갈 염려가 있으며 소년으로서 구속해야 할 부득이한 사유가 있었다"고 했다.

가해 학생 구속 전,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는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9월 13일 오후 2시 기준으로 26만 8,000여 명이 동의했다. 청원에는 "청소년 보호법은 범죄자 보호법에 가깝다", "제발 미성년자라고 감형하지 말아 달라", "청소년들도 다 알고 저지른다", "정작 보호받을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양아치들만 보호받으니…" 등의 의견이 달렸다. 이들은 청소년이라도 범죄를 저지르면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응보주의', '엄벌주의'를 주장했다.

소년법 폐지 논의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강한 처벌은 청소년 범죄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평화교육에 힘써 온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rea Peacebuilding Institute·KOPI) 이재영 원장도 한국 사회에 팽배한 엄벌주의로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가해자 처벌=문제 해결'이 도식화돼 있는 사법 체계에 한계가 많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는 9월 12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KOPI 사무실에서 이 원장을 만났다. 그는 한국 사회가 정의에 대한 다양한 사고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해자 처벌로 끝나는 정의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회복적 정의'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서 회복적 정의의 의미, 청소년 폭행 사건에서 갖는 '응보적 정의'의 한계 등을 들었다.

KOPI 이재영 원장을 만나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KOPI는 11년째 회복적 정의를 주제로 평화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 징벌뿐 아니라 피해자 치유도 목표로 하는 사법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운동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에 방점을 둔 응보적 정의를 상식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응보적 정의에는 한계가 있다. 응보적 정의 관점은 사건 당사자인 피해자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해자만 처벌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가해자 처벌로 피해자의 울분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해자가 처벌받아도 피해자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 처벌은 피해자가 하는 요구 중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진정한 사과, 처벌, 치료, 물질적 보상 등 여러 가지를 원할 수 있는데, 현재 사법 체계는 처벌만 강조한다. 나머지는 피해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회복적 정의는 이런 사법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피해자 회복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 최근 언론에서 청소년 폭력 사건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 사건에 분노한 국민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소년법 폐지 청원을 올렸고 27만여 명이 동의했다. 회복적 정의 운동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엄벌주의가 범죄를 예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은 사람들 생각과 달리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2011년 말, 학교 폭력과 관련한 기사가 신문 지면을 도배했다. 정부는 2012년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며 개별 사건에 대한 엄벌주의를 강화하는 '학교 폭력 근절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 발표 후 폭력이 줄었다고 통계를 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 보면,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대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묻게 된다. 그간 정부가 낸 통계가 의미 없다고 느낄 정도다. 강력한 처벌이 범죄를 줄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징벌의 실효성은 미국만 봐도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은 주에 따라 사형 제도가 있는 곳도 없는 곳도 있다. 엄벌주의가 통한다면 사형이 있는 주에서는 범죄 발생률이 더 낮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다수 자료에 따르면, 강력한 처벌 정책을 표방하는 곳일수록 수감자 수가 더 많다. 이 결과는 사람들의 상식이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나는 정부가 분명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을 폐지하거나, 여론을 받아들여 지금의 법을 더 강력하게 개정하는 행동을 취할 것이라 예측한다. 그러나 우리는 몇 년 지나서 또다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실효성이 있느냐고 묻게 될 것이다. 2012년 나온 학교 폭력 근절 종합 대책의 실효성을 묻고 있듯이.

정부나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엄벌주의가 정답이라는 생각 대신 왜 청소년이 괴물이 되었는지 성찰했으면 좋겠다. 그 성찰을 놓친 채, 이번 상황을 표면적으로만 해석해 방안을 내린다면 괴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괴물을 보게 될 것이다.

- 어떤 사람은 회복적 정의가 가해자에게 벌하지 않거나, 응보주의를 부인하는 것처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회복적 정의에 대한 오해 중 하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나에게 '온정주의자'냐고 묻는다. 나는 처벌 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복적 정의는 회복과 무관한 응보주의에 반대할 뿐이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끝나는 시스템으로는 피해자든 가해자든 어떤 사람도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가해자가 잘못을 깨닫고 반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엄벌주의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느끼는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사과를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목적이 아니라 더 적은 형량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소년범 재판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이 죄송하다고 눈물·콧물을 흘린다. 그 장면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에 회의적인 생각도 든다. 과연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에게도 저렇게 했을까, 묻게 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건이 공론화하면, 가해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가해자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식 앞길을 생각하면서 피해자 부모에게 합의를 요구하거나 사법부에 우리 아이가 반성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배제돼 있다. 가해자는 자신을 위해서 사과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심정이나 피해자가 당한 고통을 고려한 게 아니다. 실제로 감형 후 태도가 바뀌는 사람도 보았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회복이 필요한데, 엄벌주의는 거기에 대한 근본 대책이 없다. 우리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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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회복적 정의 서클 프로그램이 있다. 사진 제공 KOPI

- 엄벌주의는 강력한 처벌로 범죄를 막자는 것인데, 회복적 정의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해자에게 드러나는 폭력성이 당일 처음 튀어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사건 발생 전부터 어떤 계기들을 통해 축적돼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도, 발생하기 전에 이미 피해자가 한 차례 폭행을 당해 신고한 적이 있다. 가해자가 보복한다고 또다시 피해자를 폭행한 것이다. 만약 상황이 발생한 처음부터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범죄자는 감옥을 3번 다녀왔다. 그는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3번째 범죄를 저지른 후에야 처음 피해자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처음 본 피해자에게서 자신을 경멸하는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그 이후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마음도 들고 사과하는 편지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행위 자체가 피해자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어 차마 편지는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만나고서 태도가 변하는 사례를 종종 보면서, 가해자에게 피해자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청소년인 사건 중에서는 가해 학생이 "나는 장난으로 한 건데"라고 가볍게 말할 때가 있다. 그런 학생일수록 피해자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 일각에서는 평화‧치유‧회복 등을 이야기하는 회복적 정의를 실현 불가능하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렇다. 나이브하거나 순진한 발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이해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행할 수 있는 정도에만 맞춘다면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 타협해서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만 가다 보면 오히려 공동체가 책임져야 하는 기능을 잃어버린다.

과거에는 학생들끼리 다툼이 생기면 교사가 나서 갈등을 중재했다. 지금은 갈등이 생겼을 때 학교 안에 대처 매뉴얼이 있고 교사들이 거기에만 맞춰서 처리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아이들이 싸울 때 교사가 버튼을 눌러 경찰을 바로 부를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길지도 모른다. 학교 안에서 교사는 점차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만 담당하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아이들끼리 갈등이 생겨도 더 이상 교사들에게 중재를 맡기지 않고 사법에 의지하겠다고 한다. 학교 분쟁이 사법으로 가는 일이 현실이 됐다.

학교란,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기 전에 전인격적인 교육을 하는 곳이라고 배운다.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갈등을 해결하는지 배우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학교 상황은 그렇지 않다. 교사가 지식 전달 외 다른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나는 지금이라도 학교가 가야 할 방향성을 다시 잡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효율성이 아니라 방향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11년간 회복적 정의를 알렸는데, 최근 공교육 현장에서 회복적 정의를 도입하는 시스템이 많아지고 있다. 화해 권고 제도, 공동체 서클, 회복적 생활 교육 등이 학교에서 실시된다. 학생 간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학생과 교사가 동그랗게 앉아 돌아가며 이야기한다. 어떤 교사는, 학생을 처벌하면 금방 끝날 문제인데 무엇 하러 오랜 시간 이야기하고 있냐고 묻는다. 그렇게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회복적 정의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복적 정의' 이론서로 알려진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KAP). 뉴스앤조이 최유리

- 회복적 정의의 뿌리를 성서에 찾기도 한다.

우리는 성서에서 회복적 정의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 예수는 율법이 아닌 사랑을 이야기했고, 그 사랑을 따라 살았다. 교회 공동체는 사회 법보다는 더 상위 개념인 사랑의 법을 따르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면 사법 시스템은 변혁된다. 아니 붕괴된다.

생각해 보자. 사랑의 법으로 기독교인이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면, 해코지한 사람을 형제로 받아들인다면 사법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교회가 치외법권이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그렇지 않다. 권력과 결탁하면서 제도 권력이 유지되는 데 신학적 토대를 마련한다.

나는 교회가 이번 청소년 사건을 사회문제가 아니라 교회 일 중 하나로 여기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대 아이들이 괴물이 되고 있다는 점과 피해자가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을 애도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교회 안에서도 회복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한국교회는 오히려 회복적 정의를 악용하지 않을까.

용서와 화해는 부산물일 뿐이다. 이 부산물은 상황을 정확하게 직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행위 없이는 자발적인 책임을 질 수 없다. 우리 역시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인정 없이 바로 용서로 건너뛸 수 없다고 본다.

직면하려면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두에게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안전한 공간이 아닐 뿐더러 가해자에게 직면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교회 욕먹이는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 성경 메시지를 피해자의 입을 막는 데 사용한다. 일단 교회는 회복적 정의를 말하기 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

올해 6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서 요청이 들어와, 2박 3일간 목회자들에게 회복적 정의를 소개하는 강의를 했다. 목회자 30여 명이 각자 소감을 나눴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 한 목사가 "당회에서 서클 방법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목회자 역시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데, 교인들은 목회자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받아들일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를 목회자가 즐길 때도 있고.

그 이야기를 듣고서, 교회가 어떤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 토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교회는 소통하는 구조, 목사에게 치우친 권력을 교인들과 함께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 문화 없이는 회복적 정의가 오히려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모두에게 반발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목사, 교인을 대상으로 교육 훈련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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