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교회, 신학교, 선교 단체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방송 선교'에 앞장서는 교계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방송(CBS)이 2003년 설립한 전남CBS(유영혁 본부장)가 성추행 사건으로 시끄럽다.

20대 중반 김아영 씨(가명)는 올해 6월 CBS문화사업국 직원으로 채용됐다. 취직한 지 한 달도 안 돼 직속 상사 이영수 국장(가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전남CBS는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온 이 국장과 계약을 해지하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사측으로부터 회유를 당하는 등 2차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 기자 주

성추행 사건에 대한 고소가 이뤄진 사측은 피해자를 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성추행당한 저보다 이영수 국장을 걱정하는 본부장에게 더 큰 충격을 받았어요. 꼭 내가 죄지은 사람 같았어요. 정말 분하고 억울해요."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김아영 씨가 "억울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쏟아 냈다. 9월 8일 서울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씨는 전남CBS 유영혁 본부장과 조용구 이사가 자신을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성추행한 이 국장이 처벌받지 않게 도와 달라 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8월 23일 성추행 혐의로 이 국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소문은 금세 퍼졌다. 김 씨는 29일 전남CBS 4층 본부장실에서 유 본부장을 만났다. 유 본부장은 "고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기자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요즘 그건 범죄다. 혐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범죄의 요건은 된다"고 말했다.

성추행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본부장이 고맙게 느껴졌다. 김 씨는 이 국장과 같이 있는 게 무섭다며 공간을 분리해 주고, 업무 지시도 공개적으로 받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 본부장은 "(CBS문화사업국은) 개인 사업체다. 계약이 해지되면 공간 문제는 당연히 해결된다"고 했다. 김 씨를 위하는 듯하던 유 본부장의 태도는 3분도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만약 이게 표면화되면 이영수는 교회도 못 나갈 거야. 교회도 못 나가고, 직장도 잃고, 큰 타격을 받을 거라고. 그래서 좀… 뭐랄까 이영수의 처벌을 완화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중략)

이영수 잘한 게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는데. 좀 어떻게 보면 불쌍하잖아. 어차피 처벌은 받게 될 텐데.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본인이 소송을 취하해도 기소는 되거든. 근데 형량에는 좀 영향을 미칠 거야. 그래서 이제 아영이가 결정해야 하는 그런 문제고. 병원도 계속 다녀야 하잖아? 병원비도 부담해야지. 이영수의 처벌을 좀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친)언니와 상의 좀 해 보고…"

이날 이후로 "이 국장이 불쌍하다"는 본부장의 말이 김 씨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국장의 행동을 범죄라고 인식하면서도, 피해자는 배려하지 않고 합의를 종용하는 유 본부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제 상태를 물어봐 줄 수 있는데, 이 국장 생각만 하고, 피해자 가족이 아닌 가해자 가족부터 생각하는 본부장이 너무 야속했어요. 만약 이 일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으실지 걱정돼요. 그래서 친언니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한 건데, 본부장은 오로지 이 국장과 그의 가족 걱정뿐이었어요."

본부장만 회유한 게 아니다. 전남CBS 운영이사장을 지낸 조용구 이사도 개입했다. 목사이기도 한 조 이사는 8월 29일 오후 김 씨를 만났다. 김 씨는 "조 이사가 '(CBS문화사업국과) 계약을 해지하면 너도 일자리를 잃는다. 이 자리에는 새로운 사람이 와야 하는데, 고용 승계를 위해서 노력하겠다. 이미 (이 국장을) 고소했지만, 선처해 줬으면 좋겠다. 합의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회유로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 날 조 이사는 문자메시지로 "혹시 회유한 것으로 생각했다면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광고 대행업체가 새롭게 선정되면 직장 승계를 본부장과 책임지겠다는 말을 했고, 이영수 씨 용서 문제는 언니와 협의해서 연락해 주기로 했으니, 답을 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이영수 씨와 방송국의 계약 해지를 조건으로 하는 말이니 오해 없이 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남CBS는 9월 1일 자로 CBS문화사업국과 계약을 해지했다. 김 씨는 계약 해지를 하더라도 먼저 회사가 이 국장에게 징계를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유 본부장은 "이 국장이 먼저 계약 해지를 요청해 와서 응한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김 씨가 제 발로 나가게 하는 게 맞느냐고 묻자, 유 본부장은 또다시 이 국장을 감싸고 돌았다.

"이영수가 일은 잘한다면서? 안타까워. 나이 50대 중반 돼 가지고… 만약 이게 기사로 나가면, 네가 (이 국장) 마누라라면 참겠냐? 못 참겠지? 창피해서 교회도 못 다녀. 네 남편이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면? 거의 다 이혼하자고 그럴 걸? 그러겠지? 나는 그런 부분을 안타까워한 거야."

유영혁 본부장 "합의하라고 한 적 없다,
피해자, 가해자는 CBS 직원 아냐
성추행 또 발생해도 '계약 해지' 외 방법 없어"
노조 "사건 제대로 처리됐는지 본사가 감사해 달라"

성추행 피해자 김아영 씨는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측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유영혁 본부장은 9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합의나 회유를 이끌어 낼 목적으로 말한 게 아니라고 했다. 이 국장의 가족까지 언급해 가며 회유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유 본부장은 "내가 기자 출신인데 언어 선택에 굉장히 신중하다. 합의하라고 한 적 없다. 만약 이게 알려지게 되면, 이영수 국장 가족들도 상처를 받지 않겠는가.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 아마 교회도 못 다니지 않겠는가, 창피해서. 일반적인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하자, 유 본부장은 "(김 씨) 본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답했다. 김 씨가 요청한 업무 공간 분리 등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전남CBS 직원이면 공간 분리나 징계를 할 수 있는데 (이 국장과 김 씨는)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 해지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유 본부장은 추후에도 유사한 일이 생겨도 "계약 해지 외 최상의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성추행 사건은) 전남CBS와 관계가 없다. 외주 업체에서 발생한 일이고, 두 사람 모두 CBS 직원이 아니다. 사건은 이미 종결됐다"고 했다.

유 본부장은 이번 성추행 사건이 전남CBS와 관련 없다고 밝혔지만, 노조 입장은 다르다. 전국언론노조 전남CBS분회는 9월 6일 CBS 한용길 사장 앞으로 "사측은 피해자를 회유하는 등 부적절한 후속 조치로 해당 피해자가 정신과 진료를 받는 등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사측의 후속 조치가 본사 규정과 관계 법령 등에 비춰 적법하게 처리되었는지 감사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성추행 사건은 계약 해지로 이어졌다. 문화사업국에 소속된 김 씨는 직장을 잃게 됐다. 김 씨는 이 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보다 회유를 시도한 사측에 충격과 실망을 느꼈다. 김 씨는 "6일 CBS 감사실에 겪은 일을 제보했는데, 지금까지 반응이 없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전남CBS 안에서 발생한 성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여직원 성희롱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음 기사에는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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