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아침 8시 10분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포대와 각종 장비들이 소성리를 통과했다. 북한 핵미사일을 막겠다며 '긴급'이니 '임시'니 수식어를 달아 사드를 배치했지만, 사드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은 미국의 군사 전문가, 전 국방부장관 등이 이미 고백한 사실이다. 사드 레이더만이 그나마 유용한 물건이라는데, 그 용도는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을 감지하는 것으로, 미국과 일본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정설이다.

레이더는 고출력 전자파와 함께 방사선까지 방출한다. 미국 육군 교범과 레이더 제작 업체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Corporation)의 설명이다. 즉, 사드는 김천과 성주 주민들 목숨을 희생시키면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 위기를 고조하는 역할을 위해 배치된 악마의 무기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과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가.

사드 관련 각종 장비가 9월 7일 소성리를 통과했다. 사진 제공 강형구

피정을 떠나 기도할 곳을 찾던 나는, 소성리에 현장 기도소를 세우고 그곳에서 기도하라는 부탁을 하느님의 명령으로 알아듣고는 올해 4월 부활절 직후 소성리에 들어왔다. 기도와 지킴이 활동 중 4월 26일 기습 배치를 목격했고, 그 과정에서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우쳤다. 사드 반대 운동의 의미를 더욱 깊이 알게 된 것이다.

미국이 원하면 언제든 땅을 내줘야 하고, 세균을 들여와 실험해도 아무 소리 못 하고, 미군의 범죄에는 늘 관대해야 하며, 미국이 사라고 요구하는 무기는 언제든 사들여야 하는 나라. 미국이 돈을 받으며 주둔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 육군 영관급 장교가 미군 사병의 '피자 셔틀'을 해야 하는 나라…. 제 나라 국민보다 미국 요구에 충성하는 경찰의 모습은 4월 26일보다 9월 6~7일 더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이미 불법 배치한 뒤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마치고 바로 사드 포대를 완성하겠다는 방침이었고, 하루 전 통보하겠다고 했다. '하루 전 통보'라는 말이 최대한 많이 모여서 막아 달라는 부탁인지, 막을 테면 막아 보라는 협박인지 알 수 없었다. 주민들은 최대한 많이 모여 막아 달라는 얘기로 해석하고 싶어 했다. 전국에 달려와 줄 것을 호소했다.

생업을 내려놓고 400~500명이 달려왔다. 뒤늦게 도착해 길이 막힌 곳에서 격렬하게 싸웠던 분들까지 1,000여 명이 사드 추가 배치를 막기 위해 달려왔다. 미리 모인 300여 명이 사드 배치 통보 직전에 서울의 경찰 병력 이동을 감지하고 자동차를 이용해 마을 앞길에 사각형으로 성을 만들었다. 폭 10m, 길이 100m 남짓이었다. 경찰 병력들이 도착한 오후 4~6시에는 완성된 대형이 이미 결사 항전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남김천IC에서 들어오는 용봉삼거리도 트랙터 8대가 막아섰다.

올해 4월보다 2,000명을 더 보낸다고 했으니, 경찰 병력은 1만여 명이었을 것이다. 일부는 소성리로 들어오는 주요 길목을 차단했을 것이니, 소성리 집결 병력만 5,000여 명으로, 10대 1의 싸움이었다. 가로 배치한 트럭에 U-Lock로 자신의 목을 묶어서 걸고 있는 사수대가 있었고, 다른 차량에는 탑승자가 운전대나 좌석에 몸을 묶고 있었다. 그리고 차창을 통해 차와 차를 연결하는 인간 사슬을 형성해 차를 견인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부동자세로 긴 시간을 버티며 싸웠다. 그렇게, 사람들은 차량 대열 사이로 밀고 들어오는 경찰에 맞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버틸 뿐이었다.

트럭과 자신의 목을 U-Lock로 묶은 사람을 끌어내려는 경찰들. 사진 제공 강형구

상황을 살핀 경찰들은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진입을 시도했다. 임시 구호소로 사용하던 월명2리 천막과 옆에 있는 기독교 현장 기도소를 무너뜨리며 밀고 들어왔다. 차량 사이사이로 들어온 경찰은 안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제압하고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경찰은 10겹, 20겹으로 대형을 갖추어 밀고 들어왔고, 겹겹이 서 있는 동료의 등을 타고 넘어와 위에서부터 덮치기도 했다.

주민들은 밀려오는 힘에 맞서 나를 죽이고 지나가라며 서 있을 뿐이었다. 힘겨루기 과정에서 주민들은 하나둘씩 끌려 나갔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워낙 많은 인원으로 작전을 수행하느라 경찰은 구급차가 들어올 길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로 밀어붙였다. 위급한 환자는 구급차까지 200~300m 되는 거리를 들어서 옮겨야 했다.

경찰 중에도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들의 부상은 겹겹이 미는 과정 중에 그 안에서 압박당한 결과로 생긴 것이었다. 중간에 있던 경위 계급 지휘관이, 어쩌다 앞줄까지 밀려와 압박을 당하게 되자, 뒤에서 미는 의경과 순경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치는 상황도 발생했다.

6시간에 가까운 작전 끝에 길 위 사람들을 모두 끌어낸 경찰은 차량에 몸을 묶은 사람들과 차량을 견인하는 일에 집중했다. 도로 한 차선을 포기한 경찰은 사드 포대를 실은 차량이 지나갈 수 있도록 갓길 주차된 차량들을 견인해 통로를 만들었다.

사드 포대를 실은 차량이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만든 경찰들. 사진 제공 강형구

경찰은 기가 막히게도 '종교CARE'팀을 만들어 운용했다. 주민들과 오래 부딪쳐 온 경북기동대 경찰들을 일선에 세우지 않고 이들을 내세운 것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종교CARE팀이 아니었다. 가장 늦게 성직자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법복을 찢고 부상을 입히면서 성직자들을 끌어냈다.

경찰들에 의해 현장 기도소는 완전히 초토화됐다. 십자가와 성경은 짓밟혔다. 천막 안 노트북을 비롯한 살림살이는 모두 망가졌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완전 폐허였다. 단지 체포 연행만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이들의 기만전술 중 하나였다.

현장 기도소를 세운 뒤 많은 기독교인이 다녀갔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사람만 200여 명, 기도회나 현장 예배로 함께한 교회 혹은 단체도 40여 곳이었다. 상주하는 사람은 1명이었지만 현장 기도소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기독교인들의 구심점으로, 매일 기도회를 통해 소성리의 아침을 깨워 왔다.

아침 기도회 중 장비를 반입하려는 국방부 요청으로, 경찰이 목사님과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을 끌어내며 부상을 입힌 적도 있었다. 저들은 종교는 CARE한다고, 인권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이곳은 교회"라며 막아선 목사님의 경고를 무시했다. 기도소를 통째로 그냥 무너뜨렸다. 뜻있는 교인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이어질 경찰청 및 청와대 항의 방문, 규탄 집회에 많은 기독교인이 참여하기를 기도한다.

나뒹구는 기도소 물품들. 사진 제공 강형구

사드 배치를 저지하지 못해 끝내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아직 끝난 싸움은 아니다. 수난의 세월을 겪었지만 교회가 주님에 대한 부활 신앙을 지켰듯이, 우리도 사드를 뽑아내기 위한 싸움으로 부활 신앙을 이어 갈 것이다. 이 싸움이 주님이 명령하신 싸움이며, 싸움의 방법은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고 믿는다.

무기 장사에 미쳐서 전쟁을 일으켜 온 나라,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만들고 무기를 팔아 온 나라, 그 악의 제국에 맞서 하늘의 심판을 선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주님의 제자들이 감당할 몫이라고 믿는다. 무기로 평화를 만들겠다는 자들, 무기를 강매하며 온갖 명목으로 남의 나라 국민들 고혈을 빠는 악의 제국에 맞서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화를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강형구 / 예수살기 사무국장, 평화를만드는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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