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교회, 신학교, 선교 단체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방송 선교'에 앞장서는 교계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방송(CBS)이 2003년 설립한 전남CBS(유영혁 본부장)가 성추행 사건으로 시끄럽다.

20대 중반 김아영 씨(가명)는 올해 6월 CBS문화사업국 직원으로 채용됐다. 취직한 지 한 달도 안 돼 직속 상사 이영수 국장(가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전남CBS는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온 이 국장과 계약을 해지하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9월 8일 서울 안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김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 기자 주

올해 7월 전남CBS에서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다. 사측은 문제를 일으킨 직원과 계약 해지를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김아영 씨는 올해 6월 19일,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전남CBS 문화사업국에 취직했다. 문화사업국은 지역 교회·공단·대학과 광고 계약을 맺고, CMS 후원 관리 등을 해 왔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닌 김 씨는 전남CBS에 취직한 걸 행운으로 여겼다.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렸다.

불행은 일찍 찾아왔다. 한 달도 안 돼 기도 내용은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 씨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7월 4일 저녁, 문화사업국 이영수 국장은 환영회도 못 해 줬다며 김 씨에게 회식을 제안했다.

문화사업국은 전남CBS 외주 업체로 10년 넘게 계약을 맺어 왔다. 본부장실과 총무팀이 있는 전남CBS 4층에 사무실을 차리고 활동했다. 문화사업국 직원은 이영수 국장과 김아영 씨 두 사람이 전부다. 그러나 지역 교회 후원을 받으러 갈 때는 전남CBS 제작팀, 총무팀, 기술팀 직원도 함께했다.

회식하자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김 씨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회식은 순천 금당동에 있는 한 '소주방'에서 했다. 김 씨는 "이 국장이 '사람들은 CBS에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신실한 사람이 다닌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적은 데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갔다"고 말했다.

업무 외 사적 이야기도 오갔다. 김 씨가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이 국장은 '섹스'라는 단어를 꺼냈다.

"남자친구와 동갑인데, 연예인들처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도 만나 보고 싶다고 했다. 두 띠동갑 차이까지 괜찮을 것 같다고 하니까, 이 국장이 '섹스'를 이야기했다. 나에게 '다 알 나이이고, 나쁜 게 아니니 편하게 쓰겠다. 남자들은 늙어서도 성적 욕구가 있다. 이건 남자들의 본능이다. 지금 나도 그러는데 젊은 사람은 더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두 사람은 소주방에서 소주 2병, 맥주 6병 정도를 나눠 마셨다. 소주방을 나온 이 국장은 "1시간만 노래를 부르고 가자", "전 직원과도 블루스를 췄다"며 2차를 제안했다. 김 씨는 껄끄러웠지만 따라가야 하는 줄 알았다. 3분 거리에 있는 지하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한 곡씩 불렀다. 화장실을 다녀온 김 씨에게 이 국장이 손짓을 했다. 자기 옆자리로 오라는 의미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김 씨는 화장실에 한 번 더 다녀온 다음 원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 국장이 김 씨 옆자리로 왔다. 이 국장은 뽀뽀를 해 달라는 말과 함께 강제로 입을 맞췄다. 동시에 김 씨의 팔뚝을 쓰다듬었다.

놀란 김 씨는 휴대폰만 챙긴 채 밖으로 뛰쳐나왔다. 평소 의지하던 전남CBS 한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국장이 변태 같다", "무섭다"고 말했다. 차마 노래방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김 씨는 가방을 놔둔 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국장 회식 이후 "미안하다" 수차례 사과 
김 씨 "또 다른 피해자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고소"

다음 날 아침, 김 씨는 가방을 돌려받기 위해 이 국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이 국장은 용서를 빌었다. 김 씨는 "이 국장이 '술이 한두 잔 들어가서 여자로서 예뻐 보였다. 용서해 달라'고 했다. 소주방에서 '두 띠동갑 위까지 만날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그랬다'고 하더라. 괜한 이야기를 했나 싶었다. 특히 '여자로 보였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 국장은 사과의 의미로 이웃 도시인 광양에 가서 소주를 사겠다고 수차례 제안했다. 김 씨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김 씨는 이 국장과 단둘이 있는 게 무섭고 불편했다. 평소에 먹지 않던 위통약과 신경안정제 등을 챙겨 먹어야 했다.

이 국장의 성추행은 회사 안에도 알려졌다. 전남CBS 여성 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해 사과를 이끌어 냈다. 8월 7일, 전남CBS 4층 본부장실에 유영혁 본부장, 이 국장, 여성 직원 4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영수 국장은 "창피하고 부끄럽다. 아영 씨에게 미안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사과와 별개로 김 씨는 불안에 계속 시달렸다.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이 국장과 같은 공간에서 단둘이 일해야 했다.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성추행이 외부로 알려지면 교회도 못 나갈 것 같았다. 김 씨를 상담하던 성폭력상담소는, 상태가 불안정하니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정신과 담당의는 약물치료를 권했다.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지나 김 씨는 이 국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불안 증세를 겪는 자신을 보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김 씨는 8월 29일, 유 본부장을 만나 고소와 별개로 '업무 공간 분리', '공개적 업무 지시'를 받기 원한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남CBS는 9월 1일 자로 CBS문화사업국 대표로 있는 이 국장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문화사업국이 사라지면서, 김 씨는 자동으로 직장을 잃게 됐다. 김 씨는 8월 31일부로 고용계약이 해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국장, 성추행 부인 "같이 신나게 놀아 놓고…"
유영혁 본부장 "계약 해지 외 다른 조치 불가“

이영수 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노래방에서) 뽀뽀를 한 적도, 팔뚝을 만진 적도 없다. (김 씨) 본인의 주장일 뿐이다. 특별히 터치한 부분은 없다. 억울하다. 같이 신나게 잘 놀아 놓고, 왜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성추행 시비에 휘말린 것 자체가 황당하다. 직장도 다 잃고, 이 나이에 어디서 일하겠는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자다가도 콱 죽어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수차례 사과하고, 공개 사과까지 해 놓고 이제 와서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이 국장은 "그날 평소 주량보다 많이 먹은 것 같았다. 혹시나 실수를 했나 싶었다. 혹시나 해서 사과한 것이다. 아영 씨한테 정말 잘해 주려고 했는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정말 창피스럽다"고 했다.

이 국장은, 성추행은 없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정황상 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이 국장은 수차례 사과했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자책하기도 했다. 8월 9일, 이 국장은 김 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이 힘들지?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너한테 너무너무 못할 짓을 했구나,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 죄책감이 든다. 진심으로 사과한 거고, 앞으로도 당연히 절대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반성을 많이 하고, 마음이 아프네. (중략) 너무 심하게 했던 것 같아. 마음을 몰라줬던 것도 미안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사죄받고 용서를 받고 싶다."

김아영 씨는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돼 직속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이 국장은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전남CBS 유영혁 본부장은 9월 9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계약 해지 외에는 다른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 본부장은 "문화사업국은 개인 사업체다. CBS 직원이 아니다. 외주 업체 안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불미스러운 일로 CBS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직원에 대한 보상과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유 본부장은 "다음 업체를 선정해 봐야 알 수 있다. 고용 승계가 될지 안 될지 지금으로서는 말해 주기 어렵다. 당사자(이 국장)와 이야기하라"고 했다. 이영수 국장은 "전남CBS와 계약이 해지된 게 맞다"고 인정했다. 노동법에 따라 김 씨에게 3개월치 임금도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혁 본부장의 말처럼, 이번 사건은 외주 업체에서 일어난 일이라 전남CBS가 개입할 수 없었던 걸까.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달랐다. 김 씨가 경찰에 신고하자, 유 본부장과 전남CBS 조용구 이사는 "이 국장을 선처해 달라"며 김 씨를 회유했다. 김 씨는 기자에게 "성추행당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음 기사에서는 김 씨가 겪은 '2차 피해'를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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