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에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 과학의 건강성을 담보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 연속 기고'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글들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창조과학 운동, 그렇게 '교과서'에 집착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다뤄 온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을 과학 대중화가 이뤄지는 과정을 놓고 고찰해 보자. 과학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모델 중 하나로 연속체 모델(continuum model)이 제시된 바 있다. 이 모델에서는 과학계와 대중을 전문 집단 내(內) 단계(intraspecialistic level) – 전문 집단 간(間) 단계(interspecialistic level) – 교과서적 단계(pedagogical stage) – 대중적 단계(popular stage)로 나눈다. 이 순서대로 과학적 지식이 형성된 맥락은 희미해지고 그 지식은 교과서적 사실로서 각인된다. 이 모델에서는 과학계를 한 학문 내의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집단을 가리키는 '전문 집단 내 단계'와 서로 다른 분야들의 학자들 집합을 가리키는 '전문 집단 간 단계'로 다시 구분한 점이 눈에 띈다. 창조과학 운동에 참여하는 과학기술자들도 자신이 경력을 쌓아 온 전문 분야가 엄연히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전문 집단 간 단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1)

창조과학 운동의 메커니즘을 이 모델에 입각하여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계는 진화생물학이나 지질학에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과학기술자에게 먼저 '창조과학자'라는 엘리트적 계몽자의 권위를 부여한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전문 집단 간 단계에 속하나, 대중은 이들을 전문 집단 내 단계 – 진화생물학자, 지질학자, 천체물리학자 – 와 구분하지 못한다. 창조과학자들이 교과서적 단계에 개입하여 "진화생물학, 지질학, 우주론 등의 현대 과학에는 오류와 한계가 분명하기에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대중에게 각인시키면 대중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중은 과학 지식을 교과서적으로 받아들이며 그 지식이 형성된 맥락을 모르기에, 창조과학자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전문 집단 내의 문제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이렇게 창조과학 운동은 '대중', 특히 자칭 천만 성도를 자랑하는 개신교인 대중을 확보할 수 있다.

개신교의 쇠락을 막기 위해 대중을 노리고 사회 중심부를 노리는 창조과학 운동

그럼 이렇게 확보한 대중이 과학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이전에도 대중 및 언론을 활용하여 과학계 내의 지식 교류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언론에 알려지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물리학자, 천문학자, 그리고 수학자가 협력하게 된 사례가 있으며, 오존층의 파괴를 언론에 알려 과학계, 정치계, 그리고 시민사회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 사례가 이에 속한다.2) 이렇게 대중적 단계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창조과학 운동의 '대중 확보'는 결코 그렇지 않다. 창조과학 교과서를 통해 창조과학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형성된 유권자층이 과학계의 정상적인 활동을 부정하는 정치 세력에게 투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인터스텔라' 도입부에 학교에서 "아폴로 달 탐사는 조작이다"는 음모론을 교과서에서 가르치며 농업만을 권장하고 과학기술자가 되는 것을 막는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나는 이 장면을 통해 창조과학 운동의 더 큰 위험성을 본다.

그럼 개신교계가 이렇게까지 나와야 하는 상황일까. 그럴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개신교는 새로운 국면을 맞기 때문이다. 신학교의 정원 조절 실패로 인한 목회자의 과잉 수급, 청소년 및 20대 개신교 신자의 급격한 감소는 기존 복음주의 개신교의 '복음화를 통한 개신교인 증가'라는 패러다임이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국 개신교는 교인 감소, 특히 젊은 층의 급격한 유출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개신교권의 적극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다.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 이광원 회장은 이전에 창조론이 포함된 생물 교과서를 집필하여 검정을 받으려 했던 이광원 교사와 동일 인물이다.3) 이러한 교과서 개정 요구는 "교과서에 성서와 배치되는 사상이 담겨 있으면, 언젠가는 그런 사회가 되고 만다"는 사고에 기반한 것으로,4) 개신교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국과 달리 개신교가 수적으로 절대 우위가 아니며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최대한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하면서 사회적인 설득력을 가지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또한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박혀 있으며, 대중에 먼저 호소하는 반지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박성진 교수의 발언5) 또한 '복음화'를 위해 '진화론'과 맞서 싸운다는 면에서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反)지성 스캔들', 그리고 결자해지(結者解之)

지금까지 미국 개신교에서 한국 개신교로 이어지는 창조과학 운동과 개신교 근본주의 세력의 깊은 유대 관계, 1980년대 이후에 한국에서 벌어진 창조과학 운동의 양상,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과학 대중화 모델의 적용까지 다루었다.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은 창조과학이 가지는 유사과학적 성격, 한국 과학기술사에 있어서 미국이 끼친 지대한 영향, 그리고 개신교가 쇠락하는 가운데 사회의 중심부를 다시 차지하려는 정치적 탐욕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또 하나의 독특한 유사과학 운동이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 특히 그중에서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이 창조과학을 신봉하고 심지어 공적 영역에 심어 놓으려 하는 이 거대한 '반지성 스캔들'을 개신교만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이 가지는 근본주의적, 이분법적, 반지성적인 성향은 개신교인이든 아니든 충분히 비판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단순히 창조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이분법과 반지성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이후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우리나라의 급속한 근대화는 경제적 발전을 대가로 많은 것을 앗아 갔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과학기술계가 '조국의 산업화'를 대가로 건전한 대중적 과학 문화의 형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대량 유학을 통해 미국식 시스템이 한국에 급격히 도입된 상태에서, 자정 능력이 없는 한국 과학기술계가 그 내부에서 미국에서 유입된 창조과학을 걸러 낼 여유가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결국 과학기술계가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창조과학이 공적인 영역에서 계속 등장하는 작금의 현실은 지금까지 쌓아 온 우리나라의 과학 대중화 수준이 실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나를 포함한 필자들이 이렇게 BRIC(그리고 <뉴스앤조이>)에서 창조과학의 해악에 대해 알린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대중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전략을 다시 돌아볼 때가 온 것이다. 창조과학이 개신교계가 자랑하는 자칭 '천만 성도'라는 그 거대한 대중을 공적 영역 진입의 발판으로 삼기 전에, 과학기술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과학기술인'이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제안해 본다. 지식이 만들어진 맥락은 사라진 채 4차 산업혁명이니 창조 경제니 하는 구호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과학기술 현장의 모습을 대중에게 생생하게 들려주어야 되지 않을까.

*출처: [창조과학 연속 기고 - 10] 창조과학, 대중을 탐하다 (3): 과학 대중화를 다시 생각하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 바로 가기

박준우 /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창조과학 강연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20대가 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각주

1) M. Bucchi, "Of deficits, deviations and dialogues", Handbook of Public Communic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Oxon: Routledge. 2008, 61-63
2) 위의 책, 64
3) 오상아, "高 과학교과서 진화론 내용 약 33%…창조론 입각 집필 '원천 봉쇄'." <기독일보>. 2014.02.14. 웹페이지. 2017.08.30 접근.
4) 이대웅, "교과서가 성서 배치하면, 결국 사회가 그렇게 변한다." <크리스천투데이>. 2014.02.13. 웹페이지. 2017.08.30. 접근.
5) "2007 학술 대회 개최". 한국창조과학회. 2007.06.05. 웹페이지. 2017.08.30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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