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에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 과학의 건강성을 담보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 연속 기고'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글들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박성진의 문제 인식은 명확하다. 오늘날 사회 전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배운 사람들 사이에 창조과학을 전파해야 한다는 절실함이다. 비록 무종교인이지만, 필자는 그의 이 절박한 간증을 이해한다. 세상을 건강하게 변화시키고 싶은 열정은, 지식인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변화시킬 그 세상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준이냐는 것이다. 박성진이 꿈꾸는 세상은 진화론이 해체된 세상이다. 진화론에 물든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무형의 악을 상정하고 공포를 앞세워 신도들을 모으는 체계가 기독교 신앙, 특히 사막 종교에서 나타나는 한 특징임을 이해한다면, 이 결연함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의 결연함을 비웃지 말자. 그의 결연함에 진지하게 응대할 필요가 있다.1) 그의 짧은 발언을 분석해서2) 도대체 누가 노예인지 도출해 보려는 노력은 그래서 가치 있을지 모른다.3) 그는 한국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혹은 되었던) 공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과학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고 했다. 이 발언에 대한 그의 해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종교적 행사에서 한 발언이었다"는 것이다.4) 만약 그의 발언을 받아들인다면 창조과학 학술 대회는 종교 행사가 된다. 이 학술 대회가 종교 행사라면, 한국창조과학회가 진지하게 주장하는 모든 학술 자료들은 목사의 설교 비슷한 권위만을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이 학술 대회의 발표 자료들은 기껏해야 신학 관련된 항목으로 묶어 자연과학계에선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문서가 된다. 그는 겨우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자리 하나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이 평생 받아들이고 실천해 온 창조과학의 진지한 학문적 성과를 내던져 버린 것이다. 창조과학회 이사 자리를 과감히 던져 버렸다는 점은 이런 추측에 신빙성을 더한다. 그에게 창조과학이란 다른 정치적 야망을 위해선 언제든 던져 버릴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한국창조과학회는 박성진 교수의 후보 지명 이후 발언과 행동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했다.

박성진 교수는 호스트마이어와 ACGR까지 동원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해 왔던 자신의 창조과학회 이력을 한순간에 모두 부정해 버렸다. 마치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철새 국회의원들처럼, 그는 장관이라는 자리를 위해 신념을 부정하는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창조과학회 활동만 그런게 아니다. 그는 2016년 연말의 기계공학과 정기 세미나에,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인 이영훈을 초대했다.5) 대부분의 교수들이 이공계 교수들을 초청했던 세미나였다. 당시는 박근혜 탄핵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촛불로 불타오르던 그 뜨거운 겨울이었다. 그는 이 사건이 화제가 되자,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뉴라이트가 뭔지도 모르고, 역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보지 못해 무지했다고 고백했다.6)

이 해명은 믿기 어렵다. 도대체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역사학자 중에 꼭 짚어 이영훈을 초대할 수 있고, 지방신문의 칼럼을 통해 한국사 전반을 꿰뚫는 글 두 편을 실을 수 있을까. 심지어 박근혜를 탄핵하는 역사적 순간에까지 무식했다면, 그 촛불의 염원을 모아 당선된 현 정부의 공직엔 올라선 안 된다. 모든 해명에서 그는 지식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포스텍의 기계공학과 동료 교수인 문원규 교수에 의해 그동안 박성진 교수가 숨겨 왔던 진실이 드러났다. 그는 극우 포퓰리스트 변희재를 적극적으로 초청해 학생들과 간담회를 열었고, 평소에도 뉴라이트 사관을 적극적으로 설파했다고 한다.7) 근본주의끼리는 통하는 법이다.8)

이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은 이후 청와대가 내놓은 공식 해명에 연결하기 위해 급조된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청와대는 박성진 교수가 개인의 무지라는 프레임으로 위장한 해명을, 순식간에 모든 공대 교수들에 대한 모욕으로 이끌었다. 즉, "공대 출신으로서 그 일에만 전념해 온 분들"은 건국절에 대해 모를 수도 있고, 몰라도 공직에 앉기엔 부족함이 없다는 논리다.

청와대는 이 논리를 "진보와 보수의 견해를 가진다고 해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다양성 프레임으로 덮으려 한다. 아니다. 청와대가 저지른 실수를 덮기 위해 내어 놓은 이 궁색한 변명은, 첫째, 교양 있는 지식인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공대 출신 모두를 모욕했고, 둘째, 박근혜 정부가 저질러 온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거리에 나선 촛불 시민 모두를 모욕했다. 박성진의 해명도, 청와대의 변명도 모두 비겁한 기회주의자의 행동이다.

박성진 교수가 활동해 온 창조과학회엔 불교 신자나, 천주교 신자가 없다. 다양한 전공자들로 이루어진 한국창조과학회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철저한 개신교 신앙인이라는 점이다. 이들을 관통하는 논리도 매우 단순하다. "진화론은 악마의 학문이다. 그 악마의 학문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우리는 크리스찬이며 악마와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진화론을 이 세계에서 몰아내는 전사가 되겠다." 바로 이런 이유로,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론과 상관없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도 하나의 우산 아래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노예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강제로 종속되어 있고, 부당한 차별을 받는 사람"을 뜻한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생물학이 발견한 진화론의 증거들을 타인에게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진화는 생물종의 역사를 설명하는 현존하는 최선의 이론 틀이며, 그 외의 권위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 이외에 생물 종의 역사를, 과학적 방법론에 의거해서 차곡차곡 쌓아올린 대립 이론이 있다면, 같은 방식으로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교육될 수 있다.

하지만 창조론은 아니다. 진화생물학은 한 개인의 사상을 강제로 종속하지 않는다. 다양한 증거와 설명을 보여 주고, 개인의 선택에 맡길 뿐이다. 창조과학자들은 그들이 만든 억지 논리를 부흥회, 수련회, 교회, 사이비 단체 등을 통해 강요하고 전파시킨다. 특히 이들은 아직 제대로 과학적 진실을 파악할 능력이 없는 어린 학생들을 찾아가 창조과학을 강요한다. 한국창조과학회는 바로 그런 '노예 만들기' 작업을 수십 년간 이어 온 사이비 단체이기도 하다.

과학은 끝없이 오류 가능성을 수정해 가는 방법론의 체계이며, 그 방식은 진화하는 생물을 닮았다. 진화인식론은 바로 지식의 진화 가능성을 생물학의 발견들을 통해 정식화하려는 노력이다. 교조적인 신앙을 통해 지식 체계의 진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논리 체계, 그것이 창조과학의 본질이다.

교조적 신앙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쇠퇴되어 가는 신념 체계이며, 바로 그 교조적 신앙 체계가 다양한 테러와 분쟁의 원인이 된다. 창조과학은 교조적 신앙 체계이며 인류의 발전을 거부하고 종교를 중세의 암흑기로 되돌리려는 퇴행의 습관이다. 그곳에서 어린 학생들은 노예로 키워지며, 다양한 과학적 발견에 노출되지 못하고 독단의 노예가 된다.

누가 노예인가. 이 한국에 몇 천 명도 되지 않으면서 무방비로 노출된 어린 학생들의 두뇌에 창조과학이라는 독단의 논리를 심고 있는 창조과학자들, 노예는 그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 창조과학자는 노예 상인이며, 동시에 독단의 노예이기도 하다.

*출처: [창조과학 연속 기고-9] 우리는 창조론의 노예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 바로 가기

김우재 / 급진적 생물학자

각주

1) 물론 문제가 하나 있다. 이토록 결연하게 창조과학의 위대함을 부르짖는 학자가, 후보지명 이후 문제가 되자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기록들을 하나둘 지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크리스천 과학기술 포럼'이라는 웹사이트에서 박성진의 실험실 탐방/대담  코너는 리스트에서만 보이고 공개되지 않고 있다. 후보 지명 이후 며칠간 이 사이트는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었다.
2) 박성진, 2007년 창조과학 학술 대회, "오늘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1세대 창조과학자들의 뒤를 이을 젊은 다음 세대들의 대대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일반 대학의 크리스천 교수들과 네트워킹을 하여 그 밑에서 연구와 학위를 취득하고, 각 분야에 흩어져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여호수아와 같은 인재들을 키워 내야 한다. ACGR은 이것을 시작하려고 한다"
3) 일반적으로 창조과학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가치 없다. 그들이 공적 영역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그렇다.
7) 사실 이 폭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서 그의 능력이다. 동료 교수조차 그가 비전 있는 장관 후보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8) 이 순간 우리는 물어야 한다. 변희재 당신은 창조과학을 믿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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