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로빈 바캇 목사(39)는 파키스탄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왔다. 2015년 8월, 그는 부인과 세 자녀와 함께 난민 신청을 했다.

전체 국민 95% 이상이 무슬림인 파키스탄에 개신교 목사가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파키스탄 내 기독교인은 전체 국민 중 약 1.56%다(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국가 정보). 파키스탄은 종교의자유가 있는 국가다. 정부 차원에서 기독교를 박해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에게 '선교 비자'를 줬다.

그러나 몇몇 이슬람 근본주의·극단주의 단체가 기독교인과 소수 종교인을 대상으로 납치, 폭행, 살해, 강제 개종 등을 하는 상황은 계속돼 왔다. 파키스탄 정부는 2015년 프랑스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에브도> 테러 사건 이후 더 이상 선교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

로빈 목사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가 살던 곳은 파키스탄 남쪽 해안 도시 카라치(Karachi)다. 기독교인이 적지 않은 지역이다. 그는 2004년 UGA성경대학(U.G.A Bible College)을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카라치 예수복음성회교회(Jesus Gospel Assemblies Church)에서 목회했다.

처음에는 종종 일어나는 박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교회로 협박 편지가 오거나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경고 전화가 걸려 와도, 통상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동료 목사들도 비슷하게 겪는 일이었다. 그런데 교인 중 한 명이 납치된 데 이어 아들도 납치를 당할 뻔하고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자신과 가족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타깃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변에서도 로빈 목사에게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빈 목사 가족은 피난길에 올랐다.

로민 목사 가족은 처음에 미국을 가려다 비자 문제로 한국을 선택했다. 부인 로빈 리조이스(46)의 오빠가 한국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난민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는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일터 고용주도 권위적이었다. 피부색만 보고 로빈 목사 가족을 무슬림으로 내몰며 차별하는 이도 있었다.

로빈 목사 가족 이야기를 듣기 위해 9월 6일 서울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로빈 바캇 목사는 이민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으로 간 뒤였다. 대신 리조이스와 그의 세 자녀 보아스(16), 미갈(14), 모닝(9)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로빈 목사 가족이 한국에서 어떤 어려움을 견디며 지냈는지 들었다.

로빈 바캇 목사는 재작년 종교 박해를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다. 사진 제공 로빈 리조이스

괴한들, 성경 학교 교사 납치
아들 보아스도 납치 시도
가족들과 한국으로 피난

사건은 2012년 시작됐다. 로빈 목사와 리조이스는 당시 어린이 성경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성경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하는 아이작 심슨(당시 24세)이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그는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사마리아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출근길에 습격을 받은 것이다.

심슨과 함께 납치됐다 극적으로 탈출한 다른 동료는, 납치범들이 성경 학교와 교회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였다. 로빈 목사 가족과 교인들은 아직도 아이작 심슨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8월에는 로빈 목사 부부의 아들 보아스가 타깃이 됐다. 보아스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괴한 4명에게 습격을 받았다.

"그들이 저를 둘러싸고 위협하며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어요. 다행히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한 행인이 도와줘서 겨우 도망칠 수 있었어요. 그들이 뒤에서 저를 향해 말했어요. '네 아버지가 목사인 걸 안다',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다', '다시 너를 데리러 가겠다'. 무서웠어요."

보아스는 곧장 집으로 가 이 일을 로빈 목사 부부에게 알렸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소식을 접한 교인들은 걱정했다. 아이작 심슨의 어머니는 로빈 목사 부부를 찾아가, 자신이 겪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차라리 파키스탄을 떠나라고 권유했다.

사진 속 인물이 바로 2012년 괴한에게 납치된 아이작 심슨이다. 그는 로빈 목사가 운영하는 성경 학교 교사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주민 노동자 차별 만연
월급·고용 불안정
무슬림으로 오해받기도

로빈 목사 가족은 보아스 납치 미수 사건이 일어나고 2개월 뒤에 한국으로 입국했다. 리조이스의 오빠가 경기도 일산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었다. 로빈 목사 가족도 일산에 터를 잡았다.

한국은 파키스탄보다 잘사는 나라였다. 문화가 발달했고, 고층 빌딩과 고급 차를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로빈 부부는 많은 사람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 성숙한 의식을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터에서 만난 한국인 사장이나 직원들의 말과 행동은 생각과 달랐다.

난민 신청을 하면 난민법상 신청일부터 6개월간 취업할 수 없다. 로빈 목사 부부는 입국하고 6개월이 지난 뒤에야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도서 물류 센터, 공장, 식당 등을 전전했다.

한국인 고용주는 이주민 노동자에게 인색했다. 같은 일을 해도 한국인보다 시급을 적게 줬고, 몸을 써야 하는 고된 일만 시켰다. 로빈 목사 부부는 영어에 능통했지만, 대다수 직원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거나 의견을 제시하기 힘들었다.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다. 고용도 불안했다. 이번 주는 3일, 다음 주는 5일…. 출근하는 날이 일정하지 않았다. 매달 받는 임금도 유동적이었다.

외모만 보고 무슬림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었다. 부동산에서 만난 어느 집주인은 대놓고 "'깜둥이'는 안 받는다. 무슬림은 위험한 사람들 아니냐"며 계약을 거부했다. 로빈 목사 부부는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며 종교 박해로 한국에 왔다고 해명했지만 집주인은 믿지 않았다. 무슬림은 거짓말하면서 한국 사회에 침투한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집주인은 자신이 교회 장로이기 때문에 무슬림 수법을 잘 안다고 했다.

보아스가 말했다.

"한국인들은 무슬림을 직접 만난 적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적대감과 두려움이 큰지 모르겠어요.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모든 무슬림을 미워하지 않아요. 무슬림 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어요. 저를 납치하려고 했던 이들도 무슬림이었지만, 저를 구해 준 분도 무슬림이었어요. 파키스탄에 있는 제 친구들도 무슬림이고요."

은행에서 만난 김디모데 목사 도움으로, 로빈 목사 가족은 살 곳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사진 왼쪽부터) 김디모데 목사, 보아스, 모닝, 리조이스, 미갈. 뉴스앤조이 박요셉

로빈 목사 가족은 지난달, 한 기독교인의 도움으로 서울 강남에 있는 월셋집을 저렴하게 얻을 수 있었다. 일산에서 우연히 알게 된 김디모데 목사가 도울 사람을 알아봐 줬다. 후원자는 강남에 있는 한 대안 학교 원장이었다. 그는 리조이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보아스와 미갈, 모닝이 학비 없이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 줬다.

아이들은 현재 학교생활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벌써 친구도 사귀었고, 보아스는 동아리에도 가입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꿈이 있었다. 보아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고 싶어 했다. 카메라를 좋아해 평소에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제작하는데, 언젠가는 비기독교인이 쉽게 성경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미갈은 의사가 꿈이다. 전 세계에 있는 아픈 사람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모닝은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리조이스는 자녀들이 꿈을 이뤘으면 좋겠지만, 한국에서는 꿈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이 이방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나라라는 말도 덧붙였다. 2년 전 신청한 난민 자격은 지난달 출입국사무소로부터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 로빈 목사 가족은 재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이민도 알아보고 있다. 리조이스는 말했다.

"한국 정부의 난민 정책은 난민 신청자의 상황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 같다.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은 우리들을 마치 잠재적 범죄자처럼 여긴다. 면접관은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며 무슨 말을 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지금은 다행히 좋은 기독교인을 만나 살 집과 일터를 구했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모든 사람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한다. 한국 정부가 우리 같은 난민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신경 써 줬으면 좋겠다. 한국교회도 종교 박해로 한국을 찾는 기독교인 피난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슬림이라고 해서 무조건 혐오하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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