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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전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창조과학

[창조과학 연속 기고③] 그들은 왜 진화론을 거부할까

김준홍   기사승인 2017.09.06  19: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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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에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 과학의 건강성을 담보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 연속 기고'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글들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진화론을 거부하는 사람들 혹은 창조과학자들은 왜 진화론을 싫어하고 거부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대답은 진화론이 인간을 다른 종과 동일 선상에 놓고 이해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장담하건대 인간의 진화 문제가 아니었다면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저작들도 그리 큰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윈도 그러한 논란을 예상했던지 그의 첫 저작 <종의 기원>(1859) 마지막 페이지에서 "인간과 인간의 역사의 기원에 대해 빛이 던져질 것이다"라고 언급할 뿐 인간과 다른 종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적대시하던 자들은 <종의 기원>이 던져 주는 암시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이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분기한 자손이라면 인간도 그 수많은 가지 중에 하나라는 것은 자명하였다. <종의 기원> 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윈의 얼굴과 유인원 혹은 다른 동물의 몸을 합성한 풍자만화가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다윈이 자신이 제시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한 것은 10여 년이 지난 후였다. 그는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의 정신 능력과 감정 표현 등이 기존에 생각하던 것보다 그리 크지 않으며 하나의 연속성에 놓고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구의 과학사를 놓고 볼 때 다윈의 진화론은 기존의 지구 중심 및 인간과 신 중심 세계관에서 탈피하는 흐름에서 마지막 방점을 찍은 이론이다. 중세까지의 서구 세계관에서 지구는 세상의 중심이었으며 인간은 신과 천사 바로 아래에 위치했다. 인간 아래에는 동물 및 식물, 광물이 위치했다. 이러한 정태적, 위계적 세계관에 변화를 가져온 첫 번째 사건은 갈릴레이(Galileo Galilei)와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것이다.

첫 균열이 있고서 200여 년이 흐른 뒤 두 번째 균열이 왔다. 지질학자 라이엘(Charles Lyell)은 지구의 나이가 기존에 성서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지층의 형성은 과거 오랜 시간 내내 지금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지질작용이 누적되어 일어났다는 동일과정설을 주장했다. 동일과정설은 라이엘이 제시한 지질작용의 일반 원리였다. 라이엘의 영향을 받았던 다윈은 생물 진화의 일반 원리를 찾고자 했고, 그 일반 원리인 자연선택론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마침내 천상과 지상의 중간 즈음에서 지상으로 내려놓았다.

지금 현재 인간이 자연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대적할 종이 없을 만큼 지배적인 종이 맞다. 하지만 생명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인간은 억세게 운이 좋았으며, 수많은 우연이 이어진 한 계통의 자손일 뿐이다. 잠시 시계를 6,500만 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만약 6,500만 년 전에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았다면 포유류는 지구상의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며 영장류도 포유류 조상으로부터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6,00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에서 열대 우림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두발걷기가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고 두발 걷기가 아니었다면 척추가 큰 두뇌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큰 두뇌 또한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의 기온이 내려가고 계절성 기후가 도래했을 때 사냥하는 법을 습득하지 못했다면 100만 년 전 빙하기가 왔을 때 인류의 조상들은 굶어 죽었을 것이다. 실제로 채식이 주식이었던 인류의 한 가지인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 속은 첫 빙하기가 올 때 즈음 모두 멸종하였다.

마지막으로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극심한 가뭄이 오지 않았다면 당시 생존하던 호미닌(Hominin) 집단이 작은 집단으로 고립되지 않았을 것이며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수많은 우연 중에서 단 하나만이라도 발생하지 않았다면 현재 우리는 이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간에 대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생물 및 인간의 진화에 대한 증거가 너무 압도적이기에 종교계에서는 비록 공식적으로는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선언하진 않았지만 진화론과 종교의 공존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1) 비록 영혼의 탄생과 관련되는 부분은 여전히 신의 역할로 남겨 두더라도 말이다. 창조과학은 영혼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고 중세 시대 이전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시도이다. 창조과학을 추구하는 자들은 아마도 지상에 머물기보다 천상과 지상 사이의 공간이 더 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출처: [창조과학 연속 기고 - 3] 그들은 왜 진화론을 거부할까?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 바로 가기

김준홍 /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생물인류학자,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자

각주

1)  예를 들어, 가톨릭의 사례: http://www.catholic.com/tract/adam-eve-and-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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