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인권'은 개신교와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일까. 지난해부터 각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각종 인권조례안이 표류 혹은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전남 순천시가 추진한 청소년노동인권조례안, 인천시가 추진한 청소년노동인권조례안, 대전시가 추진한 학생인권조례안 제정이 보수 개신교계의 조직적 반발로 전부 무산됐다.

각 지역 개신교계는 일사불란하게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동성애 반대 운동을 한다는 몇몇 채팅방에는 각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올라왔다. 교인들은 시의원에게 릴레이 문자를 보내고, 담당 공무원에게 항의 전화를 반복했다. 조례안을 발의한 시의원을 지목해 '낙선 운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인권조례안이 "동성애를 옹호·조장하고 합법화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충남 아산시는 인권조례안을 제정했다가 보수 개신교의 반발로 조례안을 도로 폐기했다. 이 과정에서 아산시기독교연합회(박귀환 회장)가 지역 인권조례 제정에 찬성한 목회자들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아산 지역 개신교인 총공세에
두 손 든 시의회, 인권조례안 폐기

올해 5월 안정헌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아산시 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5년 3월 제정된 '아산시 인권 기본 조례'에 더해, 인권센터를 설립하고 인권침해·차별 등에 대한 상담·조사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례 개정안은 아산시의원 15명의 만장일치로 6월 5일 통과됐다.

아산시기독교연합회는 아산시의회가 통과시킨 인권조례 개정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아산시의회 홈페이지 갈무리

아산시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취지의 아산시 인권조례 개정안은 제정 뒤 역풍을 맞았다. 아산시기독교연합회를 비롯한 아산시동성애인권반대위원회(장헌원 위원장) 등 개신교 시민단체가 일제히 '동성애 옹호·조장하는 인권조례 개정안 폐기'를 외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산시의회가 입법 예고 등 필요한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아 절차상 문제도 있다고 했다.

이들은 아산시 인권조례 개정안이 "동성애를 옹호·조장하고 합법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아산시 인권조례 개정안에는 동성애 내용이 없지만, 상위 조례 우선 원칙에 따라 아산시도 '충청남도 도민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충청남도 도민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 제정안', 즉 '충청남도 인권조례'에도 동성애 관련 내용은 없다. 보수 개신교계는 2014년 제정된 '충남 도민 인권 선언'에 '성적 지향'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충청남도 인권조례도 이를 따를 것이라 주장했다. '아산시 인권조례 < 충남 인권조례 < 충남 도민 인권 선언'이라는 식의 논리를 폈다.

아산시기독교연합회는 6월 27일 아산시의회를 방문해, 인권조례 개정안에 반대하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다. 개정안을 발의한 안정헌 의원이 "인권조례 자체가 동성애 조장이나 성소수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동성애를 지지 옹호하는 뜻으로 원안을 가결한 것은 아니다. 입법 예고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단순 실수"라고 항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산시 인권조례 개정안이 폐기될 위기에 처하자 아산시인권위원회는 7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인권조례를 근거 없는 추측과 비뚤어진 확신으로 동성애와 에이즈 확산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것은 상식을 가진 아산시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며, 동시에 아산시민을 대상으로 공포감을 퍼뜨려 인권의 가치를 폄하하고 훼손하는 것으로써 용납될 수 없는 시대착오적 폭거에 다름 아니다"라며 개신교계를 비판했다.

지역 개신교계 반발이 거세지자 아산시의회는 6월 27일 교계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권조례 개정안 통과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교계 대표들은 개정안 통과만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조례 자체를 폐기할 것을 주장했다. 안장헌 의원은 폐기한 법안과 같은 '인권 기본 조례 전부 개정 조례안'을 196회 임시회의에 재상정했으나 8월 28일 열린 총무복지상임위에서 '심사 보류'로 결정 났다.

아산시기독교연합회,
조례 찬성한 목회자들 압박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기독교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성애 옹호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6월 열린 세계 가정 축제 걷기 대회 참석자들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인권조례 개정안 폐기를 이끈 아산시기독교연합회는 최근 조례안 제정에 찬성한 목회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종명 목사(송악골교회)는 아산시기독교연합회 내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총무를 맡고 있었다. 충남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대표도 겸하고 있는 이 목사는 8월 9일 안희정 도지사(더불어민주당)가 충남 지역 종교 대표들과 만나는 자리에 참석했다. 종교인들은 "인권은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다. 충남 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안 지사에게 전달했다.

이종명 목사는 최근 뜻밖의 일을 겪었다. 아산시기독교연합회 관계자가 이 목사를 불러 총무직 사임을 권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종명 목사가 아산시기독교연합회 목회자들이 모인 채팅방에 인권조례안이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게 아니라는 취지의 글을 몇 차례 올린 것을 문제 삼았다.

이종명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아산시기독교연합회가 시의원에게 전화하고, 관련 기관 방문해서 항의하고, 시청 앞에서 시위하는 등 조직적으로 조례안을 반대해 왔다. 교회 중심으로 인권조례안 폐기하라고 서명운동도 벌였는데, 내가 다른 목소리를 내니 따돌리다가 결국 총무직 사임을 권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산시기독교연합회는 아산 지역에서 이주 노동자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우삼열 목사(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도 흔들었다. 우삼열 목사는 아산시 인권위원장도 겸하고 있는데, 아산시기독교연합회는 인권위원장으로서 행보를 문제 삼았다.

아산시기독교연합회는 8월 21일, 우삼열 목사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에 "우삼열 목사가 감리회 위상을 손상하고 반기독교적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우삼열 목사의 반기독교적 행위와 반교회적 돌출 행위의 진상을 조사해 주시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달라"며 공문을 보냈다.

우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인권위원장으로서 인권조례안을 지키려는 건 당연하다. 인권조례안이 자꾸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한다고 하는데, 내가 무슨 아산시민들에게 동성애를 하라고 강제하는 활동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 인권조례안 제정은 국가인권위원회 권장 사항이다. 아무리 그렇게 얘기해도 반동성애를 외치는 보수 개신교계에는 먹히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조차 동성애 옹호 기관으로 아예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우삼열 목사는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개신교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존재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반헌법적인 기관임을 증명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우삼열 목사가 속한 서울연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 목사가 아산시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거기에서 비롯된 활동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교단은 '교리와장정'에서 동성애를 찬성하는 목사는 출교 대상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우 목사도 이를 잘 인지하고 있다. 연회도 우 목사에게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는 아산시기독교연합회 입장을 듣기 위해 박귀환 회장에게 연락했으나, 박 회장은 "언론팀에서 보도 자료를 보내겠다"고 알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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