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5m. 삶과 죽음 사이를 잴 수 있다면, 송국현 씨에게 그 거리는 5m에 불과했다. 송 씨는 2014년 4월 자택에서 일어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중증장애인이던 그는 혼자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누워 있는 침대로 불이 옮겨 붙을 때, 그는 꼼짝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서 출입문까지 거리는 5m였다.

장례 예배는 송 씨가 출석해 온 너와나의교회 류흥주 목사가 집례했다. 류 목사는 8월 2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송 씨는 중도 장애인이다. 20대 초반 뇌출혈로 쓰러져 뇌병변 3급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그를 시설에 보냈지만, 송 씨는 20여 년 후 시설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가족은 그를 외면했다. 송 씨는 홀로 지내야 했다. 이건 송 씨 개인만의 일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많은 장애인이 지금도 고립된 채 살고 있다."

뇌병변장애 고치기 위해 교회 출석
회심 후 목사 되기로 결심
"장애인이 목사할 수 있겠냐" 비난

류흥주 목사는 2011년 너와나의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장애인 목회를 꿈꿔 왔다.그 역시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장애가 있는 목회자로서 차별과 편견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장애인에게 전하고 싶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며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역도 펼치고 싶었다.

지금은 다양한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장애인이 목회할 수 있느냐는 편견과 차별에 번번이 부딪혔다.

류 목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에 처음 나갔다. 교회에 가면 장애를 고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몇 주 몇 달 몇 년 교회에 꾸준히 출석해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귀신이 들리거나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장애가 생겼다고 말하는 교역자 때문에 마음속에 병이 생겼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기 시작했다.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때다.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나님은 장애가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사용하신다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이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신대원에 진학했다. 공부를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그를 계속 흔들었다. 한 선배는 "목사는 슈퍼맨이어야 한다. 어떤 일이든 모두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장애가 있는 네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지금은 웃어넘기지만, 당시 류 목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기에게 과연 목사 자격이 있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1994년 신대원을 졸업했지만, 목회를 할 수 없었다. 당시 그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에는 3,000여 교회가 있었는데, 그를 불러 주는 데는 없었다. 교회를 개척할 형편도 못 됐다. 사역 경험이 전무한 그는 자격 미달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었다. 류 목사는 2000년부터 지인의 권유로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류흥주 목사(앞줄 가장 왼쪽)와 너와나의교회 교인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장애인 단체와 함께 농성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회·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조직
"장애인 인권 운동도 '목회' 
삶의 소망 전하고 싶어 교회 개척"

류 목사는 인권 운동할 때 "강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단체들이 거리에서 농성할 때마다 함께했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리프트 추락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투쟁에 전념할 때, 류 목사는 동료들과 함께 휠체어와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지하철 선로로 뛰어내렸다.

뇌병변 장애인 연합 단체를 조직하는 일에도 몰두했다. 1998년 성인 뇌성마비 장애인 10명이 모여 만든 뇌성마비연구회바롬(바롬)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유일한 뇌성마비 장애인 연합 단체였지만 '자조' 모임 성격이 강했다. 류 목사는 장애인 권익 옹호 활동을 위해 2002년 바롬을 중심으로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회를 조직하고, 2004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를 만들었다. 류 목사는 두 단체에서 각각 위원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류 목사는 장애인 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오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구축해 나갔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허전한 기운이 계속 맴돌았다.

"목회를 접고 평생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감리회는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강조한다. 장애인 인권 운동에 나설 때도 사회 구원에 힘쓰겠다는 각오였다. 장애인 인권 운동 자체가 '목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삶의 목적을 허락했다.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좋은 복지 서비스를 누린다고 해도, 이분들은 마음속에 갈급함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왜 장애인이 되었는지', '왜 장애를 갖고 태어났는지', '나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 여러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이분들에게 삶의 소망을 전하고 싶었다. 내가 예수님을 통해 소명을 발견한 것처럼."

류흥주 목사는 "장애인이 목사가 될 수 있느냐"는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어야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뇌성마비'라는 이유로 
개척 지원서 수차례 반려 
지역 주민들, 장애인 교회 입주 반대

교회 개척을 결심했지만 류 목사는 몇 가지 고비를 넘어야 했다. 첫 번째 고비는 교단 지방회였다. 지방회는 류 목사가 제출한 교회 개척 신청서를 여러 차례 반려했다. 서류에 '뇌성마비'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담당 목사가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떨어뜨린 것이다.

"담당 목사가 모든 뇌성마비 장애인은 언어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지방회에 면담을 신청하고 담당 목사를 만났다. 장애가 있지만 설교하는 데 지장이 없고, 어떤 비전을 갖고 목회를 하려는지 설명했다. 그 결과, 목사 안수에 이어 개척 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고비는 지역 주민이었다. 류 목사는 2011년 4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상가를 임대해 예배당을 마련했다. 그런데 2년 후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부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오가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아파트 상가로 이사할 때도 마찰이 있었다. 집주인과는 이야기를 잘 마쳤지만, 이번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나섰다. 이사하는 날, 주민들이 승용차로 건물 입구를 막고 엘리베이터 전원을 차단했다. 류 목사는 그날 밤 주민들과 간담회를 연 끝에 가까스로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예배당 한쪽 벽면에는 교인들 사진이 붙어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장애인·비장애인 구별 없이 예배 인도 
장애인 콜택시 이용하는 교인에게 교통비 
교육 통해 '전문 강사'로 양성

너와나의교회는 개척 초기 류 목사 가족과 지인을 포함 교인 10명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매주 50여 명이 교회에 출석한다. 절반 이상이 장애인이다. 요즘처럼 개척이 어려울 때 너와나의교회 교인 수가 매년 증가하는 이유가 있다.

류 목사는 대형 교회가 장애인을 위해 편의 시설을 갖추고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고 했다. 장애인이 교회 안에서 참여할 수 있는 장이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너와나의교회 주일예배에서는 장애인이 예배를 인도하거나, 대표 기도를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교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모든 행사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예배가 소란스럽게 흘러갈 때도 있지만, 다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 다른 교회와 달리 사회를 보거나 기도할 수 있다 보니 만족도가 크다."

너와나의교회는 매주 교인들에게 교통비를 제공한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오는 교인들을 위해서다. 미자립 교회라서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다. 교회 운영위원회에서 가끔 교통비 지급을 중지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류 목사는 그럴 때마다 교인들이 아무 부담 없이 예배에 나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운영위원을 설득한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직업이다. 교회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비영리 단체 '라이프라인장애인자립진흥회'를 만들었다. 장애인을 '전문 강사'로 양성하는 기관이다. 상임이사 박승유 권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 인권 교육, 성폭력 교육, 자살 방지 관련 교육 등을 통해 전문 강사로 길러내고 있다. 장애 당사자가 직접 겪은 사례를 전할 수 있어 다른 강사보다 더 효과적으로 강의할 수 있다. 언어장애가 있는 이들도 강사가 될 수 있다. '의사소통 보조 기구(AAC)'를 이용하면 된다. 지금까지 71명이 교육을 받았고, 42명이 초·중·고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회는 이외에도 장애인이 갖고 있는 재능과 적성에 맞는 직업훈련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행 플래너 양성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여행사에는 장애인을 위한 여행 상품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류 목사는 직업교육이나 문화 체험 활동을 계획할 때 반드시 장애 당사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교회가 다양한 장애인 사역을 펼치고 있지만,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장애인들을 끼워 넣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나는 순서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먼저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들에게 맞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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