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길 목사는 한국교회 복음주의 1세대이자, 복음주의 4인방(고 옥한흠·하용조, 이동원·홍정길 목사) 중 한 명입니다. CCC(한국대학생선교회) 캠프에 참석했다가 회심한 그는 평생을 '학생 전도자'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평생 유학생 선교 운동 단체 '코스타'와 캠퍼스 선교 단체 연합 '학원복음화협의회'(학복협)를 이끌었습니다. 남북나눔운동, 장애인 사역 등 사회 선교도 앞장섰습니다. 많은 사람이 홍 목사를 따르고 존경합니다. 삶으로 보여 주는 사역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복음주의 맏형으로 불리는 홍정길 목사를 만났습니다. <뉴스앤조이>는 2012년 2월, 은퇴를 앞둔 홍 목사를 한 차례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당시 홍 목사는 한국교회 목사들을 향해 "예수 잘 믿으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홍 목사는 이번에도 한국교회를 향해 차분하면서 굵직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 기자 주

복음주의 1세대 홍정길 목사를 만났다. 홍 목사는 2012년 2월 은퇴한 뒤에도 왕성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내가 올해 만으로 76살이야. 이만했으면 나도 쉬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또 숙제를 주시네."(웃음)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뉴스앤조이> 취재진을 만난 홍정길 목사가 불쑥 한마디를 꺼낸 뒤에 호탕하게 웃었다. 홍 목사는 2012년 2월 남서울은혜교회 담임에서 물러났다. 은퇴가 무색할 정도로 사역은 계속됐다. 장애인 밀알학교, 코스타, 남북나눔운동 등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미얀마 카친족을 위한 사역도 진행하고 있다.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판이다. 홍 목사와의 인터뷰도 어렵게 성사됐다.

홍 목사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낮추고, 삶으로 사역하는 이들을 추어올렸다. 앞서 <뉴스앤조이>가 인터뷰한 정주채·김정명 원로목사를 언급하면서 "좋은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야 진짜 좋은 사람이다. 두 분은 그렇게 사셨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말씀과 실재(實在)를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게 된 이유 중 하나를 '실재'에서 찾았다. 말로만 사랑과 섬김을 강조할 뿐 구체적인 행위나 행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교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과거에는 섬기는 일을 열심히 했는데, 부유해지면서 그러한 삶이 없어졌다고 했다. 홍 목사는 "하나님과 말씀 앞에 바로 서려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없어져야 할 종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목사와의 인터뷰는 8월 22일 서울 밀알학교에서 진행했다. 인터뷰는 강도현 대표가 진행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미얀마 카친족 위한 사역 중
장애인 사역 방점은 '일자리'
교육 아닌 취업으로 외연 확대해야

- 2012년 2월 남서울은혜교회에서 은퇴했다. 은퇴한 이후에도 여러 사역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최근에는 어떤 사역을 하고 있나.

요즘에는 미얀마에 자주 간다. 오뚜기를 세운 고 함태호 명예회장님이 내게 부탁한 게 있어서 그렇다. 미얀마 북쪽에 카친족이 사는데, 그곳에 학교를 세우는 중이다. 원래 안 하려고 했는데, 그분이 '씨드 머니'를 준 바람에 '숙제'를 하고 있다. 취소도 못한다, 천국 가서나 취소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미얀마 카친족은 120만 명 정도 되는데 대부분 기독교인이다. 미얀마는 불교 국가다. 1960년대 초 군부 정권이 들어서며, 불교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했다. 불교 외에 다른 종교를 취급하지 않다 보니, 카친족 독립군과 정부군이 지금도 내전을 벌이고 있다. 카친족은 정부로부터 고통과 탄압을 받으면서 이미 하나가 돼 있다. 모두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우리가 늘 평생 민족 복음화를 외치고 있는데, 거기는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있더라.

- 은퇴 감사 예배 당시 "하나님께서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으면 지금 사는 대로 계속 살 것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하셨다. 역점을 두고 진행해 온 장애인 사역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장애인 사역과 관련해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처음에는 (발달 장애) 아이들 교육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교육만 가지고 안 되더라. 15년을 교육해도 취업이 안 되니까 아무 소용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굿윌스토어'(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개인·기업·교회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물품과 평소 안 쓰는 물건을 재가공해서 판매한다. 수익은 장애인 인건비로 사용한다. - 기자 주)다. 현재 장애인 130여 명이 굿윌스토어 4개 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 사람은 장애인이 물건을 만들면 한 번은 불쌍해서 사 주지만, 그 이상은 안 사 준다. 지금도 깊은 의식 속에 장애인 하면 '재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기독교인이고 아니고를 떠나 팽배해 있다. 굿윌스토어 물건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장애인이 직접 깨끗하게 손질했고 품질도 좋다.

이것과 별개로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오르는데, 임금을 맞추려면 몇 억이 더 필요하다. 사업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이익을 가지고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구제로 돌아서 버린다. 만약 최저임금을 맞추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 130 가정 모두가 불행해진다. 발달 장애인이 학교에서 15년 교육받는 것보다 굿윌스토어에서 1년 일하는 게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 어떻게 해서든 유지할 필요가 있다.

- 결국 장애인 사역의 방점도 일자리에 있는 것 같다.

일자리가 아니면 복지라고 볼 수 없다. 이것까지 완성한 다음 (장애인 사역을) 그만두려 한다. 원래 내 목표는 시골에 예수 마을 세워서 선교사들 모시고 그분들과 같이 지내다가 주님 부르심을 받는 것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 '헛것'
'솔라 스크립쳐'로 돌아가야
한국교회에 '사랑', '섬김' 있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홍 목사는 전시성 행사에서 벗어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나부터 회개 운동'을 포함 여러 행사를 하고 있다. '개혁'하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지금 한국교회가 하는 모든 종교개혁 500주년 세미나는 '헛것'이다. 가장 기초가 말씀 즉 '솔라 스크립쳐'(오직 성경)인데, 이게 안 돼 있다. 말씀대로 안 되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작년 3월과 6월, 유럽을 방문한 적 있다. 개신교회를 찾아갔는데, 다 문을 닫았더라. 개신교 본 고장 독일을 비롯해 룩셈부르크, 벨기에는 가톨릭교회만 있고 개신교회는 없었다. 개신교회 자체가 죽어 있다. 그게 충격이었다. '내년(2017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우리가 뭘 보고 배우고 돌이켜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가만 보니 개신교가 이 땅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많지 않더라.

가령, 유교는 제사라는 제도가 있으니 존속이 된다. 무슬림은 '습관'이 있다. 메카를 향해 하루 5번 절하는 습관만으로도 유지된다. 불교는 염불만 외워도 유지된다. 가톨릭은 엄청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각 종교는 단순하면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솔라 스크립쳐'다. 말씀이다. 말은 그 단어에 대한 실재(實在)가 없으면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말씀, 말씀"하면서 말씀의 실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교회 어디에 사랑이 있고 섬김이 있는가.

대한민국 교회의 모든 세미나는 멋진 담론을 만드는 데 있다. 세미나에 가면 매번 똑같은 소리만 한다. 루터·칼빈을 연구하는 걸 실재라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한다고 좋은 사람은 아니다. 생활로 드러나야 한다. 각종 세미나가 죽어 가는 개신교에 과연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말씀만 있고 실재가 없다면 사기다. 이렇게 할 거면 개신교회는 없어져야 한다.

유럽 개신교회처럼 우리도 한때 개신교의 물결이 지나간, 얼마 있으면 파도 친 다음 잔해만 남은 교회가 되지 않겠나 싶다. 개혁은 실재다. 개혁에 '주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개혁은 무브먼트가 돼야 한다. 계속해서 활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개혁만 외칠 뿐 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평생 검사로 지낸 분이 '역사 속 기독교인의 모습'을 네 개로 분류해 말한 적 있다. 일제 때 기독교인은 "과연 크리스천은 다르다"는 말을 들었는데, 해방 이후 "설마 크리스천이 그런 나쁜 짓을 해?"로 바뀌었다. 6.25를 지나면서 "예수 믿는 거나 안 믿는 거나 할 수 없군"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예수 믿는 놈들이 한술 더 떠"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그러더라.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 현주소다.

과거 한국교회는 고아원도 만들고, 병원도 설립하고, 다른 사람 섬기는 일을 열심히 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이 사립학교 70~80%를 세우고, 나라가 무너질 때는 국채보상운동을 교회 중심으로 했다. 3.1운동도 인구의 1.5%밖에 안 되는 기독교에서 16명 지도자를 세우지 않았나.

하지만 한국교회가 부유해지면서 실재를 잃어버렸다. 삶은 없어지고, 성경 공부로, 부흥회로 다 도망갔다. 정말 종교개혁 500주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바로 서려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없어질 것이다.

- 2013년 CBS '크리스천 NOW'에 출연해 "목회에 실패했다"고 고백한 적 있다. 미국 대형 교회의 몰락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미국의 대형 교회들이 그렇게 무너질지 몰랐다. 우리 시대에 목회할 때는 교인들이 엄청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리는 해야겠는데 이를 배울 수 있는 건 미국의 대형 교회뿐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로버트 슐러와 잭 하일즈 같은 목사들이 무너졌다. 롤 모델로 삼았는데 얼마나 웃긴 일인가.

CBS 방송 이후 <뉴스앤조이>가 "나의 목회는 실패"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너무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았다. 아예 실패한 것으로 끝내 버렸다.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건 "그것 따라하지 말라", "반복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런데 기사에서 그 강조를 볼 수가 없었다. <뉴스앤조이>는 먼저 깨우쳤다는 식으로 계도하려 든다. 교만하면 안 된다.

-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국민 75%가 목회자와 교회를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회개지, 회개. 고(Go)하고, 백(Back)하고. 우리의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을 인정 안 한다. 진정으로 인정 안 하니까 변화가 없다. 회개는 변화다.

한국교회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없다. 진보든 보수든 누구든지 자기가 옳다고 말한다. 말씀을 읽는다는 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프로테스탄트의 큰 손실 중 하나가 메디테이션(명상)이 없다는 것이다. 말씀을 깊이 생각 안 한다. 선생이 한 말을 그대로 따오거나, 책에서 인용할 뿐이다. 자기 눈으로 성경을 보지 않는다. 그러니 힘이 없다. 이를 넘어서 깊이 묵상해야 한다. 나는 절대 묵상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내 삶에 주께서 구체적으로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타인의 눈과 입을 빌리지 않고, 내 영혼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순종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개신교인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고, 주신 사명에 대한 충성 또한 없다.

- 성장주의도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는다. 많은 교회가 부흥과 성장에 매달린다.

커지는 거야, 누가 커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나는 학생 단체에서 예수 믿고, 신학 공부도 얼치기로 한 다음, 어느 날 불쑥 목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서 목회를 했다. 목회자로서 너무 부족하니까, 이것만은 하나 하겠다고 다짐한 게 있다. 내 기도 없이 우리 성도들 하루를 시작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새벽 기도 드릴 때 아예 교적부를 가지고 단상에 올라갔다. 예배 이후 매일 새벽마다 교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한 3년 하니까 나중에 교적부를 볼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교인 2,000명이 넘어가니까, 오전 9시가 돼도 기도가 안 끝나더라.

이 이야기를 존 스토트 목사에게 한 적 있다. 그분이 "목회는 그 원본이 예수님이고, 그 매니페스토가 요한복음 10장이다"고 말씀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게 키워드였다. 특히 교인을 알지 못하는 목회는 경영(management)이지, 목회(pastoral)가 아니라고 한 게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교회를 나누기 시작했다. 함께 목회해 온 강경민·박영선·김남선 목사를 내쫓았다.(웃음) 교회를 나누고 보니 23개나 됐다. 그래도 몰려드는 추세를 막을 수 없었다.

지금도 남서울교회 성도들에게 참 미안하다. 목회 처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약속한 걸 못 지켰으니까. 남서울은혜교회를 개척할 때도 250명밖에 안 됐다. 그게 몇 달 안 돼 1,000명 되고 그러니까. 참… 그 다음부터는 그때처럼 기도가 안 되더라. 1,000가정이 넘어 버리니, 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 몇 만 명이 출석하는 초대형 교회 목사는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그 목사와 주님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나와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틀렸다고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사람은 이기적이어서 어떤 변명이라도 만들어서 그 길 간다. 사람과 싸우는 것보다 그냥 내 갈 길 가야 한다.

홍 목사는 후배 목회자들을 향해 "예수 잘 믿으라"고 조언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후배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요한복음 10장을 다시 읽어 보라고 하고 싶다. 존 스토트 목사님 말씀이 옳다. 목회자가 성도를 모르면 목회라고 볼 수 없다. 매일 아침 요한복음 읽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예수도 잘 믿으라. 그분은 살아있는 인격이고, 오늘도 당신과 교제하시는 분이다.

- 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리며, 다른 교계 지도자와 달리 존경을 받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잘했다고 자부하는 게 있다면.

잘한 건 딱 하나다. 네 명이 정말 사랑하고 살았다는 거다.(웃음)

- 복음이 사회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 못한 게 우리 한계이기도 하다. 성경에는 하나님 말씀이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그 행함도 온전하게 한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행함의 실재가 한국교회에 없다.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다.

-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인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에서 이런 모습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실재가 있어야 한다. 성경 공부하는 것보다 정말 주께서 말씀하신 거 하나 붙들고 그대로 순종하고 살아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순종의 열매가 있는지 봐야 한다. 남서울교회에 김인수 장로라는 분이 계신다. 이분은 순종하면서 살았다. 어느 정도로 순종했냐면, 내가 설교 시간에 "한국교회에 사랑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참 부끄러운 언어다.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 왜 우리 아이들을 다른 나라에 입양시키는가. 정말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 있다면 입양은 한국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한 적 있다. 그런데 석 달 뒤 김 장로님이 아이를 입양했다. 나이 50살에. 정작 설교한 나는 말만 하고 안 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청 이후 비난 쏟아져
"답답함 풀렸다는 청년들 이야기에 '잘 썼다 싶어'
문재인 정부 첫 단추 잘 끼워"

- 지난해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대통령은 하야하십시오"라는 공개서한을 썼다. 처음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고 밝혔는데, 반응이 어땠나.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데 탄핵 정국 때 교회 청년들이 답답함에 숨을 못 쉬었다고 그러더라. "목사님 글 읽고 숨 쉬게 됐다"는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 그래도 잘 썼구나' 싶었다.

- 1993년부터 남북나눔운동을 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대북 문제에 있어서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평가한다. 특히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걸 걸고 전쟁을 막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대북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제발 책 몇 권 읽고 통일 운동하는 사람 중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실무를 아는 사람을 뽑으라고 했다. 남과 북은 70년 분단 상태로 완전히 다른 나라로 자랐다. 체제도 다르니, 양자 간에 브릿지를 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다.

그런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모두 통일로 가는 교각을 세우지 않고, 마지막에 상판 덮을 생각만 했다. 각자가 '통일 대통령'을 꿈꾼 것이다. 나는 문 대통령에게 경험자를 실무자로 세워 달라 했다. 이번에 통일부 장·차관 잘 뽑았다고 본다. 민족의 가장 큰 문제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해 주길 바란다.

- 최근 종교인 과세 문제로 논란이다.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이 들고일어나 반대하고 있다. 특히 김진표 의원의 경우 "교회나 사찰을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과세는 다 똑같이 해야 한다.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 대통령도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은가. 세상에 이런 나라 없다. 종교인이라고 다른 대우를 받으려 하면 치팅(부정행위)이지, 치팅. 김 의원 본인도 아마 속 심정은 그렇지 않을 거다. 모두 똑같이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과 별개로 나중에 다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종교인 과세가 시행이 된 다음 교회 헌금 사용처를 추적하게 될 경우, (재정 투명성) 습관이 안 됐던 목사들은 굉장한 혼란을 겪을 것이다.

요즘 영화를 보니까 대한민국에서 검사라는 말은 도둑놈보다 나쁜 개념이고, 정치가는 사기꾼 중에 사기꾼이고, 목사는 위선자로 소개되더라. 이런 소리가 많이 나올 때일수록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민주화 운동 참여한 진보 형제들
고통당할 때 곁에 있어 주지 않은 것 후회"

홍 목사는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목회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코스타에서 기독 지성인을 대상으로 고지를 점령하라는 '고지론'을 강조했다. 엘리트주의나 고지론을 통한 복음 전도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는데.

이 문제는 김동호 목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김 목사는 2001년 10월, eKOSTA와의 인터뷰에서 "고지론은 엘리트주의가 아니고, 고지론의 약점이 엘리트주의로 갈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자 주) 높은 자리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가난보다 부요가 힘들고, 세력이 없을 적보다 있을 적에 유혹을 견디는 게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그게 실패해서 문제다. 어려운 길을 영적으로 준비해서 갔으면 좋을 것 같다. 링컨이나 크롬웰, 카이퍼 등 선한 의지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는 모델이 얼마나 많은가.

- 42년간 목회를 해 오셨다. 돌아봤을 때 아쉽거나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후회되는 게 한두 가지겠는가.(웃음) 정말 후회하는 건 세 가지다. 첫째, 가정을 못 돌봤다. 다른 사람들 다 도와줘 놓고, 정작 내 아들 놈들은 나 때문에 힘들게 사는 과정을 겪었다. 큰아이 결혼식 전날, 아들에게 살면서 가장 힘든 게 뭐였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들이 "어렸을 때 아빠 얼굴을 본 적이 없다"면서 울더라. 그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아들과 달리 나는 매일 얼굴을 봤다. 새벽에 나갈 때 보고, 집에 돌아와서 자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까. 나도 울면서 아들에게 사과했다. 아이에게 많은 게 주어져도, 아빠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더라.

둘째, 남서울교회에서 목회에 성실하지 않았다. 교인들에게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학생 전도자'로 살겠다고 서원했다. CCC를 나와 1975년 남서울교회를 개척했을 때였다. 서원 때문에 시작한 게 성경 공부였고, 1986년 유학생 선교 운동 단체 코스타를 시작했다. 1년에 석 달씩 해외로 나갔다. 캠퍼스 선교 단체 연합체 학원복음화협의회도 활동했다. 교인들에게 면목이 없다. 하나하나 돌보지 못한 게 참 후회스럽다. 그런데 교인들은 머저리 같은 목사를 잘 봐줬다. 지금도 사랑해 주고 있다.

셋째, 한국교회 안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진보 형제들이 있었다. 그들 옆에서 격려해 주지 못해 후회스럽다. 그런데 만약 지금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살아온 대로 살았을 것 같다. CCC 안에도 진보 그룹이 있었다. 박성준 교수(한명숙 전 총리 남편), 고 신영복 선생, 고 김근태 전 의원, 서경석 목사 등이다. 그분들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공부했다. 학생운동의 시작이 CCC에서 시작했다.

당시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민주화를 타깃으로 사역할지, 아니면 복음화를 타깃으로 사역할지 두 가지를 놓고 매일 싸웠다. 그때 나는 민주화보다 복음화가 더 앞서야 한다고 확신했다. 지금도 그 확신은 변화가 없다. 당시 하용조·김지철 목사도 "복음 전하다 죽자. 내일이 없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복음에 미쳐 살았다. 내게 하나님이 주신 역할은 민주화가 아닌 복음화였다고 믿었고, 맡은 역할에 충실하는 게 내 갈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보 형제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죽고, 불에 타 죽고 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 그 사람들이 고통당할 때 더 가까이 가서 곁에 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마치 연어철 연어잡이처럼 학생들 전도하러 방학 때마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생애를 쏟았다.

이런 후회들이 있다. 그렇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이전과 다른 선택을 택할지 모르겠다. 모르는 일이다. 두 번 살아야 알 수 있는 건데, 삶은 두 번 주어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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