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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식 목사 성범죄, 믿기 어려웠다

그를 비호하는 이들이 남 같지 않았던 이유

강동석 기자   기사승인 2017.08.23  16: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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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문대식 목사 성범죄 피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드러난 사실과 추가 제보 등을 종합하면, 그의 파렴치한 행동은 상습적이었고 오래 지속됐다. 몇 명이나 피해를 입었을지 가늠이 안 된다.

문대식 목사 성범죄 소식을 들었을 때, 취재기자에게 여러 번 사실 관계를 되물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를 조금이나마 괜찮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탓이다. 기사 원고를 교정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성범죄 사실은 확실했다. 첫 기사를 내보낸 뒤, 그의 연락 두절이 구속 수감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나는 <영의 사람이 되라>(꿈꾸는사람들)를 읽고 문대식 목사를 처음 알게 됐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오순절파에서 말하는 방언 은사를 체험하면서 회심했기 때문에, 방언에 관심이 많았다. 은사주의 관점에서 방언을 정리하고, 성령 사역이나 은사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을 찾고 있었다. 당시 나에게 <영의 사람이 되라>는 맞춤한 책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문대식 목사 설교를 종종 찾아 듣기 시작한 것은. 지금까지 인터넷 주소를 외울 정도로 그의 미니홈피에도 곧잘 들어갔다. 나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보수 신앙인이었고, 신비 체험에 경도돼 있었다. 성경을 바탕으로 '성령 사역자'로서 상담한 경험을 내세우며 거침없이 설교하는 문 목사 말은 모두 옳아 보였다. 대학교에 입학한 해, 지방에서 올라온 뒤 바로 늘기쁜교회 수요 예배에 참석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문대식 목사에게 안수 기도를 여러 번 받았고 수요 예배에 대여섯 번 참석했다. 그가 예배 전 진행했던 '상담'과 '예언 기도'도 받았다. 내 성격과 앞으로 진로에 대해 넓게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견 거만해 보이지만 자신 있는 말투, 성경 자구를 통한 명확한 자기주장으로 설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상담할 때는 따뜻한 말투와 선량한 미소로 일관해 그에 대한 신뢰는 커졌다.

시간이 꽤 지나 신앙 노선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결별 의식처럼 수요 예배에서 그에게 기도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제 문 목사가 말하는 '성령 사역'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적어도 그가 이 분야에서만큼은 문제없이 사역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성 청년·청소년을 1,000번 넘게 상담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크리스천의 연애, 혼전 순결, 낙태 문제를 이야기하며 가슴 아파하는 그의 모습도 한편으로 절절해 보였다.

문대식 목사가 왜곡된 성 인식 등 큰 한계를 안고 있었고 이단성 문제가 제기됐어도, 성(性) 문제만큼은 깨끗하리라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일이 터지고서야 문 목사에 대한 여러 생각이 확증편향에 불과한 편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래서인지 첫 기사가 나가고 나서 "그럴 리 없다"며 <뉴스앤조이>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해 사실관계를 묻는 이들이 남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적어도 내가 기도를 받았던 그 순간만큼은 문대식 목사가 순수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성범죄가 꽤 오래전, 2009년 언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령 사역자로 어느 정도 유명했던 그였기에, 그와 직접적으로 관계했던 사람들은 그의 성범죄를 얼마나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을지 짐작되지 않는다.

후속 기사가 나간 뒤, 성범죄가 사실이 아니라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잠잠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 사실이 과장돼 있다며 피해자를 비난하고 문 목사를 추종하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해자가 다수라는 사실이 명백한 이 시점에 와서까지 이런 이야기가 들리는 게 가슴 아프다. 피해자들의 개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온 문대식 목사를 편들어서는 안 된다.

문 목사는 교단 치리와 재판을 앞두고 있다.

감리회가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치리할지 걱정스러운 것은,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 안위를 챙기며 '성직'을 운운하는 '꾼'이 많은 탓이다. 문대식 목사가 범죄를 저지른 대상이 미성년자가 아니었다면, 지난한 싸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왜 교회는 어렵게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에게 더 상처를 주는가 하는 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목회자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며 문대식 목사가 강한 어조로 인용했던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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