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남녀가 불평등한 성차별적인 사회구조, 즉 권력관계에 있다. 이러한 가부장 사회는 한 사람 아래 모든 구성원이 종속되어 있는 사회로, 상하 위계 관계나 지배와 복종의 힘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남성들의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남성이 저지르는 '여성 폭력'은 여성을 동료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 또는 성적 대상물로 여기기 때문에 발생한다. 성폭력을 비롯해 아내 폭력, 데이트 폭력, 성매매 등도 마찬가지다.

성차별적인 사회는 남성의 '여성 폭력'을 묵인하고 용인하며 정당화한다. 그간 많은 여성이 이런 성차별적이고 불의한 구조와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를 써 왔다. 그 결과로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특별법 등을 만들어 냈다. 의식의 변화는 매우 더디지만 사회는 제도의 변화와 함께 그나마 조금씩 성평등한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교회는 성평등한 조직인가

성평등과 관련해서 교회는 사회보다 20~30년 뒤쳐져 있다는 말을 듣는다.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여성 안수를 금지하는 교단이 있고, 여성 안수를 시행하는 교단이라고 해도 여성 목사를 선뜻 청빙하려는 교회는 거의 없다. 개체 교회나 교단의 정책 의결 기구에는 여성이 늘 배제된다.

한국교회는 성 평등하지 않다. 전형적인 가부장 조직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목사 성폭력이 발생하는 대부분 교회는 남성 담임목사에게 많은 권한이 주어진 교회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남성 목회자는 남성 중심적인 성서 해석과 설교로, 교회 안에 성차별적인 관습을 유지하고 확대한다. 교인들로 하여금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맹목적으로 섬기는 것을 신앙 행위로 이해하게 하고, 목회자를 향한 신뢰와 기대를 악용해 성폭력을 행사한다. 이것이 일반 성폭력과는 달리 특수한 부분이다.

여성 교인은 자신이 성적으로 침해를 당하고 폭력을 당한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졸지에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침묵할 수밖에 없다. 교회는 늘 가해 목사를 옹호하고 편들어 왔기 때문이다.

목사 성폭력 사건
근절할 수 있을까

목사가 또 성폭력을 저질렀다. 목사 성폭력 사건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청소년 사역을 하는 목사란다. 피해자는 청소년이다. 이미 재판이 진행해 1년 전 가해 목사가 실형을 받았지만 교단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해 목사는 최근까지도 버젓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집회 인도를 하고 있었다.

"교회는 약한 자, 억울한 자, 권위에 억눌린 자들을 보호할 특별한 책임이 있으며, 부정행위를 탄핵하고, 악을 회개하도록 부름을 받았다(사 61:1-2). 교회는 가부장적 억압과 각종의 성폭력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이 창조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그래서 모든 피조물이 서로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교회가 이러한 요청에 제대로 응답하려면 억압과 고통을 조장하는 구조적 불의와 단호히 결별하고 대안적 삶을 창조해야 한다. 특히 기독교와 가부장제와의 유착을 끊어 내는 내적 갱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내적 갱신 없이는 교회가 성차별주의로부터 발생한 성폭력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2002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발표한 '성폭력 극복과 예방을 위한 교회 선언'을 인용한 글이다. 15년 전 선언이 공허하게 들린다.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이미 포기한 듯하다. 감리회, 기장, 예장통합 등 주요 교단에서 여성 교역자와 여성 교인이 목회자 성윤리 지침을 만들고 예방 교육 매뉴얼을 제작하고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교단에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교회에서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을까? 교회에서 과연 성평등은 불가능한 것일까?

기대가 아닌 희망으로

내가 속한 감리회는 작년 초 입법 의회에서 여성 총대를 15% 할당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애초에 30%를 제안한 것이 15%로 줄어든 채 통과됐지만 그동안 여성 총대 비율이 3% 남짓이었던 것에 비하면 큰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이제 시작이니 함께 준비하고 싸워 온 이들과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했다.

그런데 최근 입법 총회를 앞두고 모인 장정개정위원회에서 여성 15% 할당제 법안이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폐기하는 안을 상정해 투표에 붙였다고 한다. 다행히 2표 차이로 부결됐지만 차기 회의에서 재심의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다.

이 위원회는 감리교 여성 연대와 여교역자회가 올린 양성평등 관련 법안을 모두 부결시켰다. 목회자 성 윤리 강령과 성폭력특별법 제정, 성폭력 예방 교육과 성 평등 교육 의무 실시 등이 포함된 법안들이었다.

실망스럽고 지치는 상황이 계속되지만 아주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작은 성과와 큰 실패를 반복하면서 기대와 희망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마땅하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해도 쉽게 얻어질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쉽게 바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한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듯 언젠가 성 평등한 교회, 약한 자, 억울한 자, 억눌린 자가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될 것을 희망하며 오늘도 함께 싸워 나간다.

홍보연 / 맑은샘교회 담임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양성평등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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