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폭행하거나,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다고 여자 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신문 지면을 장식합니다. '리벤지 포르노'도 인격을 살해하는 범죄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심각한 사건을 비롯해 스토킹이나 원하지 않는 스킨십 등이 연인 관계, 호감 있는 사이에서 일어났을 경우 '데이트 폭력'이라고 합니다.

데이트 폭력은 최근 페미니즘 논의와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이슈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생소한 개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연인들 사이에도 데이트 폭력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오히려 남녀 성 역할을 고정하는 게 일상적인 교회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금도 힘들어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교회와 데이트 폭력' 기획 세 번째 기사에는 실제로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대면·서면 인터뷰를 통해 다섯 명의 여성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에게 상흔을 남긴다. 믿었던 사람에 대해 배신감이 들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책감·죄책감에 빠진다. 오랜 기간 후유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을 당해도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쉽게 공개할 수 없다.

교회 다니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교회에 소문이 퍼질까 두렵다. 오히려 정죄당할까 무섭다. 어렵게 말을 꺼내도 "네가 먼저 끊었어야지", "왜 헤어지지 않았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2차 피해를 받는 셈이다.

<뉴스앤조이>는 데이트 폭력 피해 여성 5명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3명은 직접 만났고 2명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8월 8일 직접 만난 피해 여성들은 세 시간 동안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한 여성은 이야기 도중 눈물을 흘렸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또 다른 여성은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위로했다. 세 사람은 처음 만났지만 통하는 게 있었다.

피해 여성 중 4명은 남자 친구에게서, 1명은 사귀기 직전의 남성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가해자 중에는 신학생도 있었다.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여성들은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다정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돌변
길거리 폭언, 스토킹, 성폭행…
이별 요구에 "자살하겠다" 협박

- 여러분 모두 데이트 폭력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 것으로 안다. 힘들겠지만, 직접 겪은 데이트 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달라.

A / 그 사람과 같은 교회를 다녔다. 1년 정도 만났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나를 함부로 대했다.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성향은 두드러졌다. 장난삼아 나를 툭툭 쳤다. 몸에 생채기와 멍이 생길 정도였다. (그 사람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고통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원치 않는데도 포르노를 보여 줬다. 나를 통해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려 했다.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냐"며 소리를 지르고, "이기적인 여자 친구"라고 비난했다. 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은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B / 3년째 만나고 있다. 남자 친구는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폭언도 내뱉었다. 너무 힘이 들어, 헤어지자고 많이 요구했다. 그때마다 남자 친구는 "내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지?", "내가 죽어야 돼" 등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실제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 한 적도 있다.

자살 협박을 자주 듣다 보니 너무 우울하고 정신병이 생길 것 같다. 늘 하는 소리가 "너만 나를 인정해 주면 이렇게 화내지 않는다"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내 탓인가', '내 착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너무 혼란스럽다.

C / 그 사람과는 서로 호감 있던 관계였다. 상대방은 신학생이었는데, 나에게 종종 성희롱을 했다. "가슴 큰 여자가 좋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 널 타락시킬 것 같다", "섹스하기 위해 연애한다", "나랑 연애하면 자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는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같이 자자", "모텔 가자"는 말을 수차례 했다. 주변 사람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 그 사람은 성실하고 스마트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D / 그는 순정파였다. 도시락을 싸 주거나 집에 데려다주는 등 참 다정한 남자 친구였다. 교회 안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만 3년 정도 만났다. 그런데 사귄 지 1년 정도 됐을 때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말다툼 중 뺨을 때리거나 나를 밀치고 발로 밟았다. 마구잡이로 때렸다. 그렇게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오히려 아픈 척 말라고 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자기 몸을 자해하더라. 벽에 머리를 박고, 구토하는 척하면서 혼자 쓰러지기도 했다.

결국 그 사람과 헤어졌다. 교회는 여전히 계속 다녔다. 장기간 해외 선교를 나간 적 있다. 여러 명이 갔는데 그 사람도 있었다. 하루는 내 방에 찾아와서 빨래 건조대를 던졌다. 술을 진탕 먹은 상태였다. 무서웠다. 방에서 나가려고 하는 날 구타했다. 내가 너무 악을 질러서 그랬는지, 오래 때리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한테 연락해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E / 2년을 만났고, 성폭력과 스토킹을 당했다. 이 사람 역시 처음에는 굉장히 젠틀했다. 갑자기 꽃을 사다 주거나, 편지를 써서 전달하기도 했다. 정서가 불안정했는데, 초기에는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3개월 후부터 이상행동이 나타났다. 그 사람 집에 초대를 받은 적 있다. 방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눈을 떠 보니 강간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싫다고 뿌리쳤지만 결국 성관계를 맺게 됐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후에도 원치 않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맺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섹스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가해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날이 갈수록 노골적인 스킨십을 요구했다. 영화관에서 자기 성기를 애무하게 하거나 버스에서 내 가슴을 만졌다. 비참했다.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거절하지 못하는 나도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결국 1년 정도 만나고 헤어지자고 했다. 그 사람이 나를 잡고 "인간쓰레기다", "너 같은 사람을 만난 시간이 아깝다" 등의 폭언을 했다. 그런데 헤어질 수 없었다. 내가 지금 헤어지면 저 사람 인생이 정말 끝날 것 같다는 연민이 들었다. 2년 중 1년은 감정 없이 의무감에 만났다.

스토킹은 끔찍했다. 가해자는 하루에 몇 백 통씩 문자를 보냈다. 피해자는 아직까지 그가 보낸 메시지를 갖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성폭력과 폭행 등을 당했을 때 바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는 뭔가.

A / 내가 겪은 일이 주위에 알려지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대응할 수 없었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도 들어 보지 못했다. 매우 생소했다. 데이트 폭력은 연인 간에 발생하는 사소한 일로 여겨지던 때였다.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지인에게 이야기하거나 상담받는 일은 상상도 못했다.

폭력과 집착을 견딜 수 없어서 이별했지만, 그전까지 어떻게 해서든 잘해 보려 노력했다. 너무 화가 나고 두려워도 참았다. 내가 더 착하게 굴면 될 것 같았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인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 와서야 '내가 그때 왜 똑부러지게 대처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한심하고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나를 미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B / 지금까지 사귄 남자 친구 중 세 명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 대응을 잘할 수 없었다. 나는 자존감이 너무 낮았다. 항상 내 잘못인 줄만 알았다. 상대가 자살하겠다고 하면, 정말 죽을까 봐 헤어지지 못했다.

C / 나도 대응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상대방이 하는 말들이 성희롱인지 몰랐다. 나중에서야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가해자한테 "왜 그때 나에게 모텔 이야기를 꺼냈냐"고 물은 적 있다. 그는 웃으면서 "장난인데 진짜로 받아들였느냐"고 받아쳤다.

스트레스가 한창 심할 때 기독교 상담가를 찾아갔다. 중년 남성이 상담했는데, 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남자는 원래 성욕이 강해서 그런 거다", "(신학생인 가해자가) 주의종이 될 수도 있으니 열심히 기도해 주고 인도하라"고 했다. 

D / 바로 헤어지지 못했다. 주변 사람에게 먼저 말하지도 못했다. 상대방은 교회와 학교에서 평판이 좋았다. 내가 말하면 그 사람은 매장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나도 죄책감으로 살기 어려우니 참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내가 가해자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던 상대에 대한 연민이 들기도 했다.

E /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가해자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인데, 내가 폭로하면 교회 안에서 매장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교회 안에서 내 이야기가 나올까 봐 불안하기도 했다.

이별 후 스토킹, 협박 이어져
피해자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남자에 대한 불신, 두려움 커져

- 데이트 폭력은 이별한 후에도 지속되기도 하는데.

A / 이별을 요구했을 때 깨끗하게 정리해 주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전 남자 친구가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다시 만나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했다. 내가 거부하자 본격적으로 스토킹을 시작했다. 통화와 문자로 온갖 욕설을 하고, 다 내 잘못이라고 했다. 어느 날은 막무가내로 찾아와 손찌검하고 성폭행까지 했다.

나쁜 짓을 한 건 그 사람인데 죄책감을 느낀 건 나였다. '내가 그 사람을 더 잘 받아 주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이별을 요구했으니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다. 필요 없는 죄책감을 꽤 오래 안고 있었다.

D / 한국에 들어온 지 6개월쯤 됐을 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1시간에 10만 원이더라. 비용이 부담 돼 나중에는 약만 처방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엄마가 그 사람에게 연락했다. 그 사람은 "왜 이제 와서 난리냐. 협박하는 거냐"고 오히려 화를 냈다. 정중하게 사과하라 했지만,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교회에서 선교를 간 그 나라에서 영주권을 받고 잘 지내고 있다. 가끔 한국에 오는데 엄마를 찾아왔다. 엄마는 꼴도 보기 싫어서 "용서해 줄 테니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용서해 줬는데도 여전히 나한테 "네가 맞을 짓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꿈과 미래를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왜 피해자가 더 힘들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E / 2차 피해가 너무 심했다.도저히 볼 자신이 없어 메시지로 헤어지자고 했다. 나에게 "인간 말종"이라고 말했지만, 아무 말 없이 헤어져 줬다. 이후 스토킹과 협박이 시작됐다. 하루에 문자를 몇 백 통씩 보내고 수십 번 전화했다. 연락 안 받으면 교회 사람들에게 나와 성관계 맺은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했다. 성관계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협박하기도 하고.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했다.

별일 아닐 줄 알았던 스토킹은 막상 당해 보니 끔찍했다. 무서워 잠도 제대로 못 잤다. 5분만 답장 안 해도 집에 찾아오고 친구들한테까지 전화했다. 엄마에게 성관계 사실을 알리는 폭로 문자를 작성하고, 그 화면을 캡쳐해서 나한테 보냈다. 연락 안 하면 엄마에게 보내겠다고. 무시할 수 없었다. 칼 들고 와서 자기도 죽고 나도 죽이겠다는 말도 하고, 헤어질 거면서 왜 성관계 맺었냐고 하고.

- 데이트 폭력이 삶에도 큰 타격을 줬을 것 같다.

A / 후유증이 꽤 오래 남았다. 신체적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정신적 후유증은 그렇지 않다.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됐다. 교회도 나가지 않고 대인관계도 점점 어려워졌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존감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만 커졌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게 너무 어려웠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 당한 폭력의 상처는 절대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B / 자존감이 더 낮아졌다. 왜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데이트 폭력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D / 데이트 폭력의 기미가 보이는 사람은 바로 헤어진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집착하면 바로 헤어진다. 그래서 교제 기간은 2~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생활에도 타격이 있다. 한 2~3년간 사회 활동을 전혀 못했다. 2년은 거의 집에만 있었다. 당시 대학원을 다녔는데 결국 자퇴했다. 머리가 멈춘 것 같았다. 술과 담배 없이는 못 지냈다. 살 희망이 없으니 충동 행동을 많이 했다. 8차선 도로 한복판에 뛰어들기도 하고. 나 스스로를 싫어했다. 나는 이미 더럽혀졌고 쓰레기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E / 데이트 폭력을 당할 때도, 이후 1년이 지나서도 주위에 말할 수 없었다. 우울증이 깊어졌다. 집에서 무의미하게 영상만 봤다. 높은 곳을 보며 '저기서 뛰어내리면 죽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정서가 불안해졌다. 갑자기 울기도 하고. 당시에는 시간 감각도 없었다. 친구들 만나서 "지금 몇 월이지?"라고 묻거나 여름인데 겨울옷을 찾았다. 사실 그때 생각이 잘 안 난다. 그 시기만 사라진 느낌이 든다.

- 모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목사, 전도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릴 생각은 안 했나. 교회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A / 교회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다녔던) 교회는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이었다. 다소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부모님도 같이 교회에 다녔는데, 엄격했다. 자칫 소문이라도 나면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비난이 내게로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났는데, 속이 편했다.

B / '나를 더럽혀진 사람으로 볼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교회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D / 당시 엄마가 교회에 사건을 이야기했다. 해외 선교 도중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교회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목사 아내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중에 목사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성인끼리 일어난 일을 왜 우리 아내한테 이야기하느냐. 아내가 충격을 받았다"고 항의했다. 목사는 마치 교회와 무관한 것처럼 말했다. 교회에 더 이상 말할 게 없었다.

E / 교회 오빠에게 처음 어렵게 얘기했을 때 "네 잘못이 아니고 그건 데이트 폭력이다"고 이야기해 줬다. 그 말을 듣고 목사를 찾아갔다. 연애할 때도 목사와 상담을 꾸준히 해 왔다. 그런데 목사님은 "네가 반응해 주니까 (가해자가) 그런 거다. 무시하라"고 하거나 "그 아이와 성관계를 가졌냐"고 묻기도 했다. 나한테 "회개하라"는 말도 꾸준히 했다. 당시 죄책감에 매일 교회에 가서 몇 시간씩 울며 기도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황당했다. 목사님도 가해자를 알고 있었다. "걔가 좀 힘들어하는 거 같으니 옆에서 잘 챙겨라"고 하더라.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를 탓하거나 정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교회가 데이트 폭력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
페미니즘 가르치고, 피해자 정죄 안 했으면
피해자 돌보고, 실질적인 성교육 이뤄져야"

- 교회가 데이트 폭력 및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A / 이 질문에는 회의적이다. 대부분 교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럴 의지도 없다고 본다. 교회에서 페미니즘을 적극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왜곡된 성의식을 자꾸 부추기고 재생산한다. 데이트 폭력이 발생해도 피해자는 교회에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기 너무 힘들다.

바라는 점은 누군가 데이트 폭력이나 성범죄 피해 사실을 말한다면, 그들을 아낌없이 격려하고 지지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가해자를 동정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란다. 피해 여성들이 교회에서까지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B / 피해자를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해 여성이 성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더렵혀지고 순결을 잃었다고 취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교회는 유난히 여성의 순결을 강조한다. 이 경우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말하기 두려워진다. 교회에서 내 이야기를 했을 때 "네가 강하게 거절했어야지", "그런 기미가 보일 때 바로 헤어졌어야지"라는 식의 피드백을 받았다. 교회가 몸과 마음이 상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필요할 때 행동을 취해 주었으면 좋겠다.

C / 최근 교회에서 성교육하는 박수웅 장로 기사를 봤다. 나도 한때는 박 장로 강의를 듣고 순결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다. 지금 다시 보니 너무 남성 중심적이다. 남성에게 왜 성욕을 절제하게 하지 않고 여성에게만 순결을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실질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데이트 폭력을 경험하면서 교회 도움을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다. 교회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믿음 좋은 나에게는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라며 넘기는 듯했다. 데이트 폭력은 어느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인지했으면 좋겠다.

D / 교회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권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픈 게 먼저인데, 교회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섭리가 있겠지"라고 말한다. "너를 향한 하나님 뜻이 있겠지"라고 한다. 그건 피해자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치유도 하지 않은 사람,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람에게 다 나은 뒤에 할 수 있는 말을 강조하면 안 된다. 용서하라고 말하지 말고 제발 피부터 닦아 줬으면 한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는 말도 그만하고.

E / 교회 곳곳에 피해자를 향한 폭력이 존재한다. 교회 안에서 성 문제가 발생하면 가해자보다는 피해 입은 여성만 이중으로 타격을 받는다. "혼전순결 지켜야 하는데 왜 못 지켰어"라고 묻는다. 죄를 지었다고 회개하라고 한다.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무책임하고 몰상식하게 피해 여성을 대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섬세함을 갖춰야 한다. "왜 잤느냐"고 묻기 전에 불안해하는 피해자를 집에 직접 데려다주기도 하고, 2차 피해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현재 연애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도 귀담아듣고, 혹시 데이트 폭력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관심 가졌으면 한다.

- 데이트 폭력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D / 당장 상담을 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상담사가 내게 "아무리 맞을 짓을 해도 때리는 건 잘못된 거다"라고 말해 줬다. 시간이 지나고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 생겼다. 상대 잘못을 인지하자,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인 내가 숨어 살 이유가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피해자들이 마음 독하게 먹고 자신을 회복하는 데 모든 힘을 썼으면 한다. 죽겠다고 난리를 쳐도, 그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전 남자 친구는 갑자기 길거리에서 구토하는 척하면서 쓰러졌다. 119에 신고해서 사람 쓰러졌다고 신고하니까, 일어나서 도망갔다. 가해자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상대방을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랬지만 소용없었다.

E / 괜찮다고, 당신은 아무 잘못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나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전조 증상'이 분명 있었다. '이거 데이트 폭력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100% 맞다. 만약 그런 생각이 든다면 절대 참지 말고 대응했으면 한다.

이들은 서로 경험한 것 달랐지만 통하는 지점이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도 누구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트 폭력으로 남몰래 눈물 흘리는 피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교회가 먼저 피해자들을 보듬고 끌어안아야 하지 않을까. <뉴스앤조이>는 '교회와 데이트 폭력' 마지막 기사로, 교회 안에서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상담할 때 지켜야 하는 것,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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