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폭행하거나,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다고 여자 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신문 지면을 장식합니다. '리벤지 포르노'도 인격을 살해하는 범죄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심각한 사건을 비롯해 스토킹이나 원하지 않는 스킨십 등이 연인 관계, 호감 있는 사이에서 일어났을 경우 '데이트 폭력'이라고 합니다.

데이트 폭력은 최근 페미니즘 논의와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이슈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생소한 개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연인들 사이에도 데이트 폭력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오히려 남녀 성 역할을 고정하는 게 일상적인 교회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금도 힘들어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교회와 데이트 폭력' 기획 두 번째 기사에서는 <뉴스앤조이>가 지난 일주일간 진행한 데이트 폭력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봅니다. - 기자 주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남자 친구와 룸 카페를 갔습니다. 키스 중 제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은 남자 친구는 콘돔 없이 저를 강간했습니다. 이후 제가 섹스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술을 먹여 모텔로 여러 차례 끌고 갔습니다. 섹스를 거부하면 저에게 소리를 지르며 때릴 것처럼 위협했습니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이번 데이트 폭력 설문 조사로 들어온 실제 사례다. <뉴스앤조이>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7월 29일부터 8월 5일까지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일주일간 총 50명이 참여했다. 응답자 나이대는 20대 32명(64%), 30대 15명(30%)이었다.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한 응답자는 50명 중 38명(76%)이었다.

이번 설문 조사는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경우와 지인의 사례를 알고 있는 경우로 나누어 진행했다. 직접 경험한 경우가 33명(66%), 지인 사례를 아는 경우가 17명(34%)이었다. 참여자 중 41명(82%)이 여성이었고, 남성은 7명(14%)이었다. 이 중 여자 친구에게 직접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는 남성은 3명(9.1%)이었다.

<뉴스앤조이>는 '교회와 데이트 폭력'을 주제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데이트 '성폭력' 비중 높아
3차례 임신중절수술 하기도
아무 대응하지 못한 여성들

설문 조사에서 데이트 폭력의 범주를 한국여성의전화가 내린 정의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눴다. △신체적 폭력 △언어적 폭력 △정서적 옷차림 △경제적 폭력 △성폭력. 경험 사례를 묻는 문항은 복수 응답으로 진행했다.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겪은 데이트 폭력은 '성폭력'이었다. 본인이 직접 데이트 성폭력을 당한 경우는 23명(69.7%), 지인이 당했다고 응답한 경우는 11명(64.7%)이었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한 적이 있다", "강압적으로 성기 삽입을 한 적이 있다"는 답변이 많았다. 원치 않는 콘돔 없는 섹스로 임신중절수술을 3차례 받은 여성도 있었다. 응답자들은 "포르노에서 학습한 성적 판타지를 포함한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했다", "애무를 하던 중 삽입은 원하지 않았지만, '이미 다 한 거나 다름없다'며 강제로 했다", "누드 사진을 요구했고 내가 꺼려 하니 본인이 먼저 자기 사진을 보냈다. 결국 나도 보내게 됐다" 등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성폭력' 가해자 중에는 신학생, 다른 여성과 결혼한 전도사도 있었다.

'정서적 폭력'에 응답한 사람은 50명 중 26명(52%)이다. 직접 경험했다고 응답한 33명 중에서는 20명(60.6%)이었다. 피해자들은 옷차림을 단속당하거나 일정을 공유하도록 압박을 받았다. 자기 허락 없이 이성을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응답자 중 한 명은 "(남자 친구는) 자기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도록 대답을 강요했다. 시간마다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했고, 한 시간에 한 번 이상 전화 또는 문자하기를 요구했다"고 했다.

정서적 폭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연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것을 통제가 아닌 '관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남자 친구에게 인간관계를 통제당한 한 여성은 "관계가 모두 깨져 스트레스가 쌓였다. 마음이나 생활에 여유가 없어 신경이 예민해졌다"고 했다.

'언어 폭력'을 겪은 사람은 24명(48%)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하하고 비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여성과 여자 친구 몸매를 비교하는 말부터, "못 생겼다", "성격이 안 좋다", "멍청하다", "이렇게 가난한 집은 처음 봤다" 등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가해자가 피해자 상황을 조작해 현실감과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가스라이팅'도 있었다. 응답자 중에는 성관계를 거절하자, 남자 친구에게서 "우리 관계가 멀어진다면, 그건 네가 섹스를 거절해서"라는 말을 들은 사람도 있었다.

'신체적 폭력'은 9명(18%)이 경험했다. 한 여성은 남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요구했다가 스토킹, 주거 침입 및 폭행을 경험했다. 다른 응답자는 남자 친구가 자신의 손목을 비틀고 배와 얼굴에 주먹질을 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여성은 길거리에서 남자 친구에게 50분간 구타당하고 목을 졸린 일도 있었다고 했다.

데이트 폭력을 직접 겪은 피해자 33명 중 21명(63.6%)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이 중 당시에는 그것이 데이트 폭력인지 몰랐다고 응답한 사람이 17명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헤어지고 1년이 지나서야 데이트 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대응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로는 "너무 어려서 무서웠다", "행여 대응했다 보복당할까 두려웠다", "사랑하기 때문에 인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억압한 것 같다"가 있었다.

응답자 50명 중 여성이 41명이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설문 조사 결과, 데이트 폭력 중 성폭력 비율이 높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데이트 폭력 경험한 남성
"남자이기 때문에 말 못했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 90% 이상이 여성이고, 가해는 90% 이상이 남성이다. 그러나 간혹 여성이 남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도, 여자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는 남성이 소수 있었다.

남성 응답자 7명 중 3명은 자신이 성폭력, 신체적 폭력, 언어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한 남성은 "관계를 원할 때 내가 거절하면 굉장히 토라진다. 추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의지와 무관하게 관계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나보다 덩치가 더 큰데, 화가 나면 폭력으로 해소하는 경우가 많아 때릴 때 맞아 주었다"고 했다. 또 다른 남성은 "집에 못 가도록 막았다"며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언어 폭력을 겪었다는 다른 남성은 "조별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내 외모를 자주 비하했다"고 답했다.

세 사람은 모두 데이트 폭력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유는 "남자이기 때문에 말하기 힘들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창피했다" 등이었다. 셋 중 자신이 경험한 일이 데이트 폭력이라고 인지한 사람은 여자 친구가 집에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응답한 남성뿐이었다.

응답자들은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에게 당부하는 말도 전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목회자에게 상담했지만 가해자 두둔
"말해 봤자 교회는 이해하지 못할 것"

<뉴스앤조이>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이 목회자에게 상담을 요청했는지도 질문했다. 목회자와 상담한 경우는 50명 중 2명(4%)이었다. 한 응답자는 목회자에게서 "성관계 후 마음이 떠난 것은 죄악이고 상대가 스토킹을 해도 참으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가해자 협박 강도가 셌지만, 목회자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 너에게 좋지 않으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고, 오히려 가해자가 심신미약이라며 그를 걱정했다"고 했다.

지인 사례를 아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 응답자는 자신의 지인이 목회자에게 들었던 피드백을 적었다. 그는 "(지인이 목회자로부터)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고 여자는 교회에서는 경건하고 조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피해자들이 교회에 도움을 구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다. 응답자들은 "교회는 소문이 빠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신실한 자매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상대방은 신학생이라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말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나에게 폭력적인 말만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를 정죄할까 봐 아무에게도 밝히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교회에 바라는 점으로 "단순한 치정으로 넘기지 말아라", "순결 이데올로기 강요하지 말고 남자 성도들을 단속해 달라",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지 말라", "교회가 무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제가 있을 때 상담받고 위로하고 같이 문제점을 나눌 수 있도록 교회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체라는 이유로 이런 문제는 덮는 경우가 많다. 지체라면 잘못된 점을 고쳐 줄 수도 있어야 한다", "폭력에 대한 선행 교육을 하고, 피해자 적극 보호 및 상담 치료 등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매뉴얼을 숙지하고 이행하면 좋겠다" 등을 언급했다.

응답자들은 데이트 폭력을 겪는 피해자들에게 당부하는 말도 전했다.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가장 많았다. 이들은 "무서워할 필요없다.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상대방이 나쁜 것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잘못한 것은 없다", "당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자존감을 잃지 말아라", "혼자가 아니니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은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데이트 폭력에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자책감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라.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고 적었다.

응답자들은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전문 기관에 상담하라는 실제적인 조언도 했다. 한 여성은 "고민이 정리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하니 혼자 속 끓이지 말고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에 꼭 전화하라"고 했다. 이외 "제발 헤어지고 유관 기관에 적극적으로 요청해라", "참지 말고 말해야 한다. 경찰서 가서 신고도 해야 한다"고 적었다.

<뉴스앤조이>는 설문 조사 후, 응답자 중 일부에게 경험담을 더 자세히 들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지방에 사는 한 여성은 "한국교회가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이 변했으면 한다. 나와 비슷한 사례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면 바란다"며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했다. 얼굴을 보고 그들과 나눈 대화는 '교회와 데이트 폭력' 세 번째 기사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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