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전도사로 사역할 때는 주로 청소년부와 청년부를 맡았다. 사업을 하면서 교회 교역자일 때와 크게 달라진 점 하나가 있다. 사역자 입장에서 찬양 사역을 하고 있지만,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일반 청년으로 지낸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교회 사역을 그만두고 일반 청년 입장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이 '주일날 빠지지 않고 출석하여 예배하는 청년들이 참 대단하다'였다.

내가 파티와 디제잉 관련 사업을 하다 보니, 금요일과 토요일이 가장 일이 많이 몰린다. 보통 일이 저녁에 끝나지 않고 새벽 늦게, 가끔은 다음 날 아침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토요일 새벽이나 아침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이 드는데, 예배 시간을 놓쳐서 그날 교회에 못 간 적이 꽤 있었다. 제시간에 일어났는데도 피곤하고 힘들어 그냥 쉬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잠들어 버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지난 10년간은 '교회 교역자'라는 반강제적 시스템이 있어서 어떻게라도 그 예배들에 참석했던 모양이다. 시스템이나 강제성이 없어지니 이런 모습이 나타나게 됐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교육전도사 때 했던 권면을 많이 반성하게 됐다. 부끄러웠다. 대표적으로 밤새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에게 어떻게든 오후 1시 청년부 예배에 참석해 보자고 말한 적이 있다. 2~3시간만 자고 준비해서 오거나, 정 안 되면 그냥 잠을 자지 말고 오후 1시에 예배하고 집에 가서 자라고 여러 번 권면했다. 내가 막상 그 입장이 되어 보니, 전도사 때 얼마나 청년들 삶을 이해 못 하고서 그런 권면을 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그렇다고 교역자가 청년들 입장이 돼 봐야 한다거나, 목회자가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병행하고 있거나, 사회생활을 해 본 목사라고 해서 반드시 좋고 건강한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해 보지 않은 목사라도 얼마든지 다양한 이슈에 상식적일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것은 경험 유무보다는 공감 능력 문제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의 문제지, 사회생활 유무에 따른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전도사 시절, 야간 아르바이트로 주일예배 참석이 어려운 청년에게 잠을 줄이는 방식으로 함께 예배하자고 권면했다. 그의 삶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포인트는 내가 그 당시 청년들에게 권면했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과 함께 예배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권면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교회 내에서 얼마든지 악의 없이 좋은 의도로 상대방 삶을 고려하지 않은 말들을 건네고 있다. 이렇게 상대방 삶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권면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해당 문제를 권면을 받는 대상의 개인 신앙 문제로만 치환해 버린다는 점이다. '믿음이 떨어져서', '방황하고 있어서', '신앙심이 부족해서' 등으로 귀결한다.

당시 내가 주일 전날 야간 아르바이트를 때문에 주일예배에 제대로 못 나오는 청년에게 고작 한다는 말은 "어떻게든 예배는 드리자"였다. 아는 교회 중 청년들에게 가급적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는 하지 말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어떤 교회는 청년부 임원에게 아예 아르바이트를 금지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청년이 어떤 사정으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지, 왜 주말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어떻게든 예배는 드리자"라고만 말한 것이다. 주말이나 주말 야간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분명히 있었을 테고, 아르바이트하는 것이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주말 야간에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을 꾸짖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평일에 공부나 다른 일을 하면서 주말에도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의 구조와 현실,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을까. 단순하게는 최저 시급이 오르면 적은 시간을 일해도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어 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니 청년들이 교회도 잘 올 수 있을 듯한데, 교회에서 안정적인 교회 출석 보장을 위한 '최저 시급 인상' 투쟁을 할 수는 없었을까.

언급한 제안이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교회에서 그간 개인 신앙 문제라고 규정해 버린 일이 사실 다양한 상황이나 맥락과 얽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맥락 중에는 개인 신앙 문제를 넘어, 우리 시대 사회 이슈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무상 노동 익숙해진 교회
섬김·봉사·헌신의 그림자

교회 내에서 개인 신앙 문제로 치부되는 가장 흔한 문제가 바로 '노동'이다. 한국교회는 섬김·봉사·헌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상(무급) 노동에 익숙해져 있다. 교회가 노동·서비스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익숙해지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교회를 상대로 물건을 납품·시공하거나 거래를 해 본 사업자는 많은 경우 "교회가 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웬만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보다 '싸게', '저렴하게'를 외치는 곳이 교회다. 당장 우리 회사만 봐도 일반적으로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금액 그대로 나가는데, 유독 교회에서 문의가 오면 대부분 싸게 해 달라며 흥정을 한다. 주로 "교회니까 싸게 해 주세요"라는 논리를 편다.

냉정하게 한번 이야기해 보자. 왜 교회니까 싸게 해 줘야 하나. 나 같은 경우야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잘해 줘야지' 하는 심리라도 작동하는데, 비기독교인에게 "교회인데 싸게 좀 해 주세요"라고 하면 공감이 될까. 냉정하게 보면, 교회라고 해서 싸게 해 달라고 할 당위성은 없다. 차라리 예산이 부족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오히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훨씬 교회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의 문제는 교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섬김·봉사·헌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노동에 익숙해진 교회 공동체에서 신자가 그저 교회 운영에 쓰이는 도구나 부품으로 전락돼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영상을 전공한 청년에게 시도 때도 없이 교회 관련 동영상 편집을 부탁하거나,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 청년에게 교회의 모든 현수막과 포스터를 만들게 한다. 카페 바리스타인 청년에게는 주말에 교회 카페 일을 시킨다. 교회에서 교인이 업으로 삼고 있는 일을 교육 클래스로 개설하는 경우도 있다. 사례는 다양하다. 신자가 교회에서 자신이 업으로 삼고 있는 일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유급으로 일하는데, 교회에서는 무급으로 일한다. 이것을 봉사와 헌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물론 완전히 무급은 아니다. 지금의 이 섬김과 봉사가 '하늘의 상급'으로 쌓인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국교회는 하늘의 상급 이야기를, 지금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한 결제를 저 멀리 죽음 이후로까지 유예해 버리는 불순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그 모든 지불 책임마저 하나님께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본인들이 이 땅에서 물질적으로 지불해야 하고 감당해야 할 것을 영적인 개념으로 환원해서 하나님과 천국에 계속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교회 일로 지치는 구조 성찰해야

교회 공동체가 섬김·봉사·헌신 없이 지속, 운영될 수는 없는 공동체라는 말에 일견 동의한다. 하지만 섬김·봉사·헌신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어야 한다.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에서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들만 보더라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결코 타의나 강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강요받아서, 억지와 강제로 하는 교회 일을 봉사와 헌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 순간부터는 결국 타의에 의한 노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가 직분이나 역할을 너무 강제로 임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그 자리 앉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고, 자리에 앉혀 놓았을 때 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봉사와 헌신의 취지와도 거리가 멀기 떄문에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이상 교회 일을 강제로 시키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상대방이 싫다는데 계속 하라고 말하고, 결국 하게 만들면 그것은 강요이고 폭력이다. 결코 권면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더 나아가 혹여나 '봉사·헌신을 하게 해서라도, 교회에서 어떤 일을 맡게 해서라도 교회에 나오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있거나,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면 당장 접었으면 좋겠다. 강제로 봉사하게 하고, 일을 시켜서 교회에 나오게 하는 방법은 적어도 신약성서에 나온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신앙은 결코 봉사와 헌신을 강제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봉사·헌신을 강제해서 신앙이 발생한다면, 그 신앙은 교회에서 맡고 있는 일이 끝날 때 같이 끝날 것이다. 봉사와 헌신으로 강제된 신앙은 애초부터 신앙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로 포장한 우상을 섬기라는 권면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요된 봉사와 헌신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신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교회 노동에 지친 신자나 교역자가 봉사와 헌신 그리고 사역을 잠시 쉬거나 중단하면, 믿음이 떨어져서, 방황하고 있어서, 신앙심이 부족해서 저렇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이것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정말 개선해야 할 교회 문화라고 생각한다. 믿음이 떨어졌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좀 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오히려 서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며 기도했으면 좋겠다. 교역자나 신자 할 것 없이 왜 이렇게 교회 일로 지치는 사람들이 생기는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해 봤으면 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