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먹는 공동체로 표현되는 로고스서원을 이끄는 김기현 목사의 신간이 나왔다. 불완전한 시대에서 불완전한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는 현대인, 그중에서도 신앙의 신비 지속과 세속에서의 의미 찾기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본 신간이 주는 울림은 상당하다. 오랜만에 곱씹어 읽어 볼만한 책이 나왔다.

책의 프롤로그는 강렬했다. 저자는 스스로를 바벨론 강가에 사는 이로 규정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약에서 바벨론 강가란,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과 서러움을 통렬히 경험했던 아픔의 공간이다. 저자는 왜 하필 행복과 설렘의 낙원이 아닌, 황량하고 스산한 바벨론 강가를 자신의 거처로 정했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야 하고, 그 목적지는 바로 바벨론 강가와 같은 시련과 눈물의 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통 목사가 아니다. 그는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며 목회자로서의 한계에 봉착하기도 하고, 세상의 모순 앞에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 현장, 삶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해 간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이 10여 년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200여 칼럼 중 일부를 선정하여 각 부의 내용을 채워 넣었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깊이 다룬 저서는 아니다. 다른 시기, 다른 주제로 다뤄진 다양한 꼭지는 저자의 다방면의 지식과 깊은 통찰을 보여 준다. 저자의 시각은 따뜻하다. 세상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신앙인의 관점이 녹아 있다. 동시에 신실한 제자도를 강조하는 저자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럽게 저자의 바벨론 생활기를 간접 체험하게 된다. 저자는 바벨론을 "지상의 왕이나 집단, 지역, 이데올로기"로부터 떨어진, "사명의 땅"이라고 부른다.

<불완전한 삶에게 말을 걸다 - 세상과 하나님나라의 경계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위로> / 김기현 지음 / 예수전도단 펴냄 / 228쪽 / 1만 3,000원

제1부 제목은 '진리와 믿음에 대하여'이다. 한국교회 위기는 꽤 오랫동안 공론화됐고, 이에 관한 다양한 진단들이 논의됐다. 그중 하나는 교회의 독선과 배타성이다. 우리는 종종 투쟁적인 어조와 공격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진리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조우하는데, 이 중 많은 사건이 교회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자못 안타까운 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이들은 사실 진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는 독단과 거리가 멀다. 답은 분명하다. 진리는 사랑이다. 팩트의 맞고 틀림, 가치의 옳고 그름을 넘어서 모든 이를 품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진리이다.

또한 진리는 '두 날개'다.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두 날개가 같이 펄럭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이 존재를 지탱한다. 성경 또한 하나의 날개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성경 안에서 서로 배타적인 내용을 발견하고서 어리둥절해하고는 한다. 신명기는 우리의 고난이 우리 죄 때문이라고 하고, 욥기는 죄 없이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신명기나 욥기 중에 하나는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성경이 지닌 양면성을 이해해야 한다. 다름이 서로를 보충하며 온전한 진리를 드러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건강한 이성을 구비해야 한다. 우리는 의심하고, 묻고 따져야 한다. 저자는 한국교회의 질문하지 않는 맹목적 신앙을 지적한다. 호기심 꽤나 많은 학생은 누구나 한번쯤 목사님께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가 혼쭐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믿음이 이성과 배타적인 것처럼 배워 왔다. 하지만 신앙과 이성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한다. 저자는 "신학은 철학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의심의 해석학'의 세 대가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를 통해, 우리는 한국교회의 참상을 더 또렷이 직면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제2부 제목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의미에 대하여'이다. 제2부는, 제3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로 이어진다. 독자는 2부와 3부를 통해 저자의 목회자로서 정체성을 깊이 체감할 수 있다. 삶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해 왔던 저자의 산 경험은 신앙에 관한 실존적인 문제에 공감이 되는 답을 제시한다. 2부에는 저자를 찾아와 '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는지' 질문한 한 형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이는 자못 심각한 질문이 아닌가. 필자는 이명박, 황교안 또는 최순실을 보며 저와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있었다. 사실 누군가가 통쾌하게 '구원받지 못해!'라고 대답해 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의 대답은 이런 못되고 철없는 심보를 뭉갠다. 곰곰이 생각건대 저자의 말이 옳다. 저자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판단과 결정을 우리가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 저자의 보수적이고 온건한 신학적 사고가 부각되는 부분이다.

이것 말고도 우리의 고민은 많다. 한례로 저자와 가까운 한 목사는 저자에게,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반드시 사용하는지 물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분명 깊은 사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고 불가해하지 않은가. 그런데 저자의 대답은 하나님께로 향해 있다. 저자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실 사람은 하나님이 결정하신다"고 말한다. 돈에 대한 저자의 가르침도 같은 선에 서 있다. 돈은 상황에 따라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잘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 하나님. 너무 뻔한 말이 아닌가. 그러나 기본은 언제나 중요하다. 우리는 저자의 말을 깊이 새길 때, 부단히 스스로를 훈련하고 연단하며, 주님이 바라는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는 주어진 그릇의 크기나 재질을 바꿀 수 없어도 그릇을 깨끗게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저자는 말씀과 기도, 제자도를 반복해 강조한다. 저자가 예로 드는 주기철의 일사각오 믿음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러나 약간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이런 얘기는 자주 들어온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자신의 특별한 신앙 훈련법을 제시하는 데 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시편의 기자였던 다윗은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할 때마다 글로 표현했다."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는 글을 읽고 쓰는 행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통성기도와 금식, 수련회…, 모두 제각각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직접 '로고스교회'와 '로고스서원'을 운영하며, 글을 읽고 쓰길 그치지 않았던 저자의 제안에 따라 각자의 골방에 들어가 글을 써 보자. 그러면 우리는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의 존재를 발견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확장하며,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마지막 4부는 저자의 지적인 교양과 통찰이 가장 빛나는 장이다. '세상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구성된 마지막 부에는, 리처드 도킨스, 김용옥, 도정일, 한완상 등 기존 신앙에 도발적 질문을 던지는 지식인들에 대한 비평이 주를 이룬다. 각 인물의 주장에 관한 저자의 대응에는 일관성이 있다. 저자는 이성을 존중하면서도 신앙을 강조하고, 자유를 희구하면서도 교리의 필요성을 증명한다. 균형과 합리성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것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한국교회의 문제 원인과 대안에 대한 그의 주장이다. 과거 학생 시절 운동권에서 활동했다는 전력만 본다면, 그는 급진적이고 저돌적인 대안을 주장할 듯싶다. 그러나 그의 방향은 전적으로 근본적이고, 상식적이다. 즉 올바른 신앙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올바른 신앙에서, 올바른 신학이 나오고, 이로부터 교회가 바로 선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여러 현실적인 모순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주장에는 깊은 힘이 담겨 있다. 사실 기존의 것 일체를, 심지어 우리의 진정성 가득한 신앙조차 원점에서 반성하고, 쓸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지만 저자의 일관된 신앙과 삶의 일치 앞에서 필자는 부득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불완전한 삶에게 말을 건다>(예수전도단)라는 책의 제목처럼, 저자는 자신의 불완전한 삶을 수긍하고, 견디고, 전진하는 신앙의 성숙한 여정을 보여 준다. 진정 우리가 찾았던 신앙의 선배다. 모든 현대인은 경계인이다. 경계를 넘어 자신의 신앙을 다시 성찰하고자 하는 기로의 순간, 우리는 이런 젊은 어른의 이야기를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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