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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의 다양성, 다양성의 은사

성령이 주는 은혜의 선물

박일영   기사승인 2017.07.29  15: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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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7월 27일 중앙루터교회(최주훈 목사)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이문식 대표) 2차 포럼에서 박일영 교수(루터대 전 총장)가 고린도전서 12장 4-7절을 본문 삼아 설교한 내용입니다. 허락을 받아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먼저 여러 다양한 교파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뜻있는 모임을 갖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 귀한 시간에 설교를 맡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은 성령의 은사와 관련해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지금 기준으로도 한 교회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령의 은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의 은사"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방언"과 같은 신비한 체험이지만, 당시 고린도교회 역시 성령의 은사를 방언과 같은 초월적 체험으로 여기고, 여기에 따른 여러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그들은 신자라면 이러한 신비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체험이 있는 사람과 체험이 없는 사람, 이런 영적 구별이 있게 됩니다. 또 예언과 같은 경우 자기가 받은 예언이 올바른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다양한 은사들이 있는데 어떤 은사가 더 귀한 것인가 라는 은사의 우열 문제를 가지고 다툴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성령의 은사에 대한 혼란, 그리고 이어지는 실제적인 교회 안에서의 영적인 무질서…. 이런 것들이 바울이 씨름해야 했던 문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고린도전서 12장, 13장에서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성령의 은사 강론의 끝이 "사랑장"이란 별명이 붙은 고전 13장입니다. 거기에서 사도 바울은 방언과 예언도 다 일시적인 것이고 사랑만이 영원한 은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싶어하는 강조점을 간추려서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성령의 은사란 신비한 체험뿐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 속에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강조점을 우리는 무엇보다 사도 바울이 은사라는 말과 직분이라는 말을 같은 맥락에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12장 4절의 은사와 5절의 직분과 6절의 사역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직역하면 은혜의 선물이고, 직분은 원어로 섬김과 봉사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사역은 명령이나 위탁을 받은 일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는 모든 일, 그것은 폭넓게 성령의 일하심이라는 영역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님 자신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재능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직분도 사역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맡겨진 직분과 사역을 감당할 능력도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 자신이 일하십니다.

세 번째는 그것은 은사와 사역과 직분은 어떤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영광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고백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이 관심하시는 것은 우리 공동체이고, 그 공동체에 속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 속에 속한 개개인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개개인의 은사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공동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가 본문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고, 제가 오늘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사의 다양성입니다. 본문에서 후렴처럼 반복되는 어구가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사역은 여러 가지나 하나님은 같다고 말합니다. 이 은사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다 할 수 없습니다. 재능이 같을 수 없고, 맡은 책임이 같을 수 없습니다. 같은 성격의 재능과 책임이라도 사람과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식과 같은 다양성에 대해서 우리는 곧잘 큰 우를 범해 왔습니다. 교회를 오염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왜곡하는 것이 바로 이 다양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잘못된 적용에 있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은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 다양성 가운데서 우열을 매기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직분이 가장 높은 것이고, 어떤 은사가 가장 고귀한 것인가. 언제나 이런 질문을 묻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높은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 다양한 은사를 받은 우리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더 우월하고, 어떤 것이 더 열등한 것인가 구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뿐더러 성령의 은사를 왜곡하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재능보다 초월적인 은사를 더 높게 보는 것도 잘못입니다. 다스리는 직분, 가르치는 직분도 다른 은사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서 다른 은사들과 구분될 수 있는 것뿐입니다. "누가 더 높은가?"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이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성령의 은사라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교정해 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이 은사의 다양성과 관련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더 심각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는 다양성 가운데서도 일종의 동질성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구별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나는 "남성"이라는 것 속에서 다른 남성들과 공유하는 어떤 동질성을 찾습니다. 물론 내가 남성인 건 분명하지요. 문제는 그러한 구분으로 우리는 남성과 여성을 대치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박일영"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이지, 남성 중 하나, 그것도 여성과 구별되고, 또 여성을 억압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진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란 다른 종교들과 구별된 일종의 동질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령의 공동체를 보십시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모든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이름으로만"이라는 구호는 배타적인 구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이름 앞에서 남성도 여성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의인도 죄인도 아무런 구별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오직 그리스도만으로"라는 이름으로 다양성 그 자체가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 초대 성령의 공동체였습니다.

저는 다양성 그 자체가 은사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은사가 다양하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것 자체가 우리에게 은사, 카리스마타, 즉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남성을 말할 때 그것은 여성과 구별되는 어떤 동질적인 것으로서의 남성이 아니라 그 자체가 다양성의 한 요소라는 것을 의미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 자체가 은사입니다. 여성 자체가 은사입니다.

기독교 공동체 가운데서도 다양한 교파들이 있습니다. 그 다양성은 이제 은혜의 선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교회 연합의 과제는 한 교단으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이 악한 세상 속에서는 이단적 거짓 가르침에 대한 경계는 늘 있어야 하지만, 서로 다름을 왜곡해 다양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오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함께 고백하는 그리스도가 참 성경적, 사도적 그리스도이시면 충분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그리고 '다양한 성령의 은사'가 뜻하는 참의미를 통하여 우리의 서로 다름이 은혜의 선물로 수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작은 시간이 그러한 성령의 은혜의 선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박일영 / 루터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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