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다른 종교와 구별됐다는 동질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초대교회 성령의 공동체를 보라. '오직 그리스도만으로'라는 구호를 들고 모든 구원의 장벽을 무너뜨린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최근 '오직 그리스도만'을 배타적으로 해석하는데, 당시에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초대교회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으로'는 그리스도라는 이름 앞에서 남성·여성도 유대인·이방인도, 심지어 의인도 죄인도 구별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앞에서는 어떠한 다양성도 그 다양성 자체로 인정받고 수용됐다. 다양성 그 자체가 은사다. 다양성 그 자체가 우리에게 주신 은사라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은사·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 다양성은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중략)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다양한 교파가 있다. 그 다양성을 우리는 은혜의 선물로 인식해야 한다. 한 교단으로 통합하는 것은 의미 없다. 이 악한 세상에서 틀린 것, 옳지 않은 것은 구별해야 한다. 다르다고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은사'라고 하는 통로 속에서 수용돼야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다양성을 억압해 온 우리의 모습이 교회 역사다. 그것을 넘어서서 이 다양성 자체가 주는 축복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그분이면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고백한다. 그 속에서 주어지는 다양성의 은사를 누리자. 그리스도 안에서 다양성을 은혜의 선물로 누리자."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박일영 교수(루터대 전 총장)가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복교연·이문식 대표)은 올해 5월부터 '한국교회'라는 큰 몸을 이루는 다양한 종파들이 만나, 서로의 역사를 훑어보고 같고 다른 점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대한성공회, 기독교한국루터회, 그리스정교회, 아나뱁티스트 등 소수 종파 이야기를 듣는 정기 모임을 진행 중이다.

박일영 교수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양성의 축복을 누리자"고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 몸, 다른 모습. 형제자매 된 교회 함께 만나기' 두 번째 시간은 7월 27일 중앙루터교회(최주훈 목사)에서 열렸다. 이날은 최주훈 목사, 김복기 총무(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김승진 교수(침례신학대학교 명예)가 참석해 각 교단과 종교개혁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또 지금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발표했다.

5월 열린 첫 번째 포럼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발제를 시작하기 전, 색다른 예배 형식을 경험하는 시간이 있었다. 루터회도 대한성공회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예전'을 따른다. 참석자들은 루터회 전례를 따라 찬양하고 성찬에 참여했다.

루터회 공동 예배는 제단에 초를 밝히면서 시작한다. 성경도 구약, 사도서(서신서), 복음서를 봉독을 맡은 이가 번갈아 가면서 읽었다. 박일영 교수는 '은사의 다양성, 다양성의 은사'(고전 12:4-7)라는 주제로 설교했다.

성찬례가 시작되자 모두 앞으로 나와 손을 모았다. 최주훈 목사가 성찬례를 집례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찬례까지 모든 예식을 마치고 난 뒤 마지막 순서는 파송 찬송이었다. 기성 교회에도 있는 순서이긴 하나 사소한 것 한 가지가 달랐다. 루터회는 말씀을 듣고 성찬을 받은 교인이 은혜의 감격을 일상으로 가져가게 하기 위해, 모두 일어서서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려 찬송한다. 참석자들도 전부 일어선 채로 활짝 열린 출구를 바라보며 찬송했다.

루터는 '만인제사장'
아나뱁티스트는 '전신자제사장'

이어 열린 포럼에서는 루터회, 아나뱁티스트, 침례교에 대해 들었다. 발제자들은 종교개혁 500년 역사 속에서 각 교단이 어떻게 시작됐고 성장해 왔는지, 무엇을 주된 가치로 믿고 있는지 설명했다.

최주훈 목사는 미국 근본주의 신학이 팽배한 한국의 신학적 토양이 루터를 밀어냈다고 평가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먼저 최주훈 목사가 '종교개혁과 루터교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에서 '루터 바람'이 일고 있지만,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루터가 부정적으로 혹은 잘 알지 못하는 대상으로 치부된 것은, 극단적인 교파 쏠림 현상과 미국 근본주의 신학을 그대로 이식한 한국의 신학적 토양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비어 가는 교회는 제쳐 두고라도, 기독교 출판사와 학자들의 놀이터인 학회조차 특정 성향의 신학적 편중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곧 신학적 편식으로 이어졌다. 루터는 편집됐고 그 자리에 칼뱅이 등 떠밀려 왕 노릇한 지 오래다. 그 옆에 웨슬리는 엉거주춤 서 있다."

최 목사는 당시 루터가 발표한 글 중 많이 읽혔던 '독일 기독교인 귀족에게 고함'을 한국 상황에 빗대어 소개했다. 후대에 널리 읽힌 '95개조 논제'보다 당시에는 이 글이 훨씬 많이 읽혔다. 그 이유는 교회가 쌓은 세 가지 벽 때문인데 루터는 이를 △성직자와 신도를 가르는 차별과 구별의 벽 △평신도 성경 해석 금지의 벽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권위의 벽으로 구분했다.

한국교회에도 세 가지 벽이 존재한다. 최주훈 목사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며 성직자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태도 △설교권은 목사에게만 있고 신자는 질문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성서 해석의 담 △목회자를 해임할 수 있는 권리가 교회에 없는 현실을 벽으로 꼽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교회는 '권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교회가 해결하지 못한 것이 권위만은 아니다. 최주훈 목사는 루터가 1529년 발표한 <대교리문답> 서문 일부분을 소개했다. 여기서 루터는 소명은 사라지고 습관만 남은 목회자들을 강하게 질타한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게으른 뚱땡이 목사와 거만한 성도들이여, 제발 부탁합니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십시오. 당신들이 믿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당신들의 지식수준은 바닥입니다. 수준 높은 박사인 줄 착각하지 마십시오." <대교리문답>(복있는사람)

김복기 총무는 아나뱁티스트가 따르는 신앙 가치를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500년 전 루터가 강력하게 종교개혁을 외칠 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있다. 아나뱁티스트는 교파의 시작을 1525년 1월 21일로 본다. 당시 독일·스위스 일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태어난 지역에 따라 가톨릭교인 혹은 개신교인으로 구분됐다. 아나뱁티스트는 이런 관습을 거부하고, 이미 세례를 받은 성인이 자신의 신앙고백에 따라 다시 세례를 준다고 해 '재세례파'로 불리기도 했다.

김복기 총무는 전 세계에 있는 아나뱁티스트 기조를 따르는 여러 공동체를 소개했다. 이들은 스위스 형제단, 후터라이트, 메노나이트, 아미시, 부르더호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아나뱁티스트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500년 전 국가를 부정하는 급진 성향으로 분류돼 종교개혁가에게조차 박해받던 아나뱁티스트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몇 가지 가치가 있다.

△신조 대신 공동체 중심의 신앙고백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누는 교회 수직 구조 타파(전신자제사장) △신앙고백이 가능한 성인 세례만 인정 △성서, 성령, 공동체 해석에 달린 성서의 권위 △믿음과 동시에 실천을 강조하는 제자도 △회중 교회, 평화 교회 등을 추구하는 교회론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 책임 △'성찬례' 대신 '주의만찬' 등이다. 아나뱁티스트는 앞서 소개한 루터회와 다르게 전례에서 성찬례보다는 일상의 식탁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기념하자는 의미에서 '주의만찬'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런 아나뱁티스트의 모습은, 때로는 이단으로 때로는 대안으로 취급됐다. 김복기 총무는 "이미 예수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아나뱁티스트는 대안도 아니고 길도 아니다. 다만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였는지 끊임없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부르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자 했던 그들의 신실한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진 교수는 침례교는 국교 체제를 거부한 신앙인들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침례교는 앞의 두 교파보다 다소 출발이 늦었다. 김승진 교수는 종교개혁의 역사 속에서 침례교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침례교인들만이 독특하게 믿고 있는 신앙을 소개했다. 침례교가 지금의 '회중 교회'가 된 것을 이해하려면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침례교는 영국성공회에서 분리됐다. 국교 체제 대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는 영국 분리주의자들이 1609년 침례교를 시작했다.

시작은 영국이었지만 뿌리를 내린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 이미 자리 잡은 청교도들이 세운 것은 회중 교회였지만 이 또한 '국교'로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다. 미국에 침례교회 수가 늘어나면서 점차 국가와 교회를 분리하고, 종교의자유를 보장하라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는 제1차 수정헌법에 "의회는 국교의 제정에 관하여 그리고 자유스러운 종교적인 활동을 금지하기 위하여 어떠한 법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항목 제정으로 이어졌다.

침례교도 아나뱁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승진 교수는 "유아세례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발명품이며 인간들이 만들어 낸 교리, 관습이자 전통"이라고 말했다. 물을 머리에 뿌리거나 하는 약식 세례가 아닌 세례받는 사람이 직접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침수례'를 고수하는 것도 다른 종파와 다른 점이다.

침례교회는 각 교회 공동체가 가장 중요한 단위다. 총회, 지방회도 있지만 여기에 참석하는 대의원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김승진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침례교는 루터회가 취하고 있는 '성례전주의'와 달리, 성례는 형식이고 상징일 뿐이라는 '성례형식주의'를 따른다는 점도 밝혔다.

복교연이 마련한 종교개혁 500주년 연속 기획 포럼은 9월 28일 아현감리교회에서 한 차례 더 열린다. 다음 포럼은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의 같고 다른 점을 짚어 보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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