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직장 안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질 때가 있다. 월요일 아침부터 내규에 위반된 일을 지시하는 상사, 부당 거래를 요구하는 협력 업체 사장,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트집 잡으며 실랑이하는 고객을 만나면, 전날 예배에서 받은 은혜는 사라지고 없다. 어느 정도 눈과 귀와 입을 닫고 적당히 넘어가야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다.

30년 가까이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이철규 원장도 비슷한 고민이 많았다. 10년간 멀쩡히 사용해 온 틀니를 가져와 문제가 있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 보험료를 지급받기 위해 허위로 진료 기록을 작성해 달라는 지인, 과잉 진료를 권하는 업계 관행 등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갈등했다.

이 원장은 일터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묶어 최근 <오늘을 그날처럼>(새물결플러스)을 출간했다. 치과의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갈등했던 경험담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다.

"의사로서 나는 어찌 보면 매일 각양각색의 환자들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세상은 나에게 그럴수록 더욱 공격적이 되라거나 견고한 방어막을 치라고 권한다. 그래야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을 겪지 않게 된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신앙은 오히려 내게 무장을 해제하라고 한다. 보호막을 걷어 내고 환자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라고 한다." (45쪽)

"나는 수년 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맛본 이후 어떻게 하면 주일의 신앙과 일터에서 보내는 6일의 신앙을 일치시킬 수 있을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경쟁·효율·생산성이라는 기업의 가치가 판을 치고 있는 일터에서 정직·배려·존중·관용,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타인을 대접하는 황금률, 환자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 등 신앙적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106쪽)

이철규 원장은 치과의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갈등했던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철규 원장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웨신대)에서 성서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것이다. 의사가 신학을 배운 것도 흔하지 않은데, 학위논문 주제는 요한계시록이다. 올해 4월, 새물결아카데미에서 '삶으로 읽는 요한게시록'를 주제로 연속 강좌를 열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역에 있는 치과에서 이철규 원장을 만났다. 7월 27일 오전 10시, 병원은 한산했다. 진료실 문을 열자 이 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가지런히 정렬된 흰 치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뷰는 두 시간가량 진행했다. 기독 의료인으로 살면서 겪은 이철규 원장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불교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교회에서 열심히 할수록
인격 거칠어지고 마음 공허

이철규 원장은 당초 기독교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대학생 때 불교 동아리 회원이었다.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봉사 활동에 따라갈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런 그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건 순전히 아내 때문이다.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그는 마지못해 교회에 등록했다. 이어 학습·세례도 받았다.

처음에는 '나이롱 신자'였다. 예배만 참석했다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왔다. 둘째가 생기고 나서 신앙에 변화가 생겼다. 둘째가 아팠다. 아픈 둘째를 보며 그는 신앙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예배에서 몇 번 뜨거운 경험을 하고 나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다. 교회 생활에 적극적으로 변했다.

"처치맨이었어요." 이 원장은 말했다. 그는 교회 행사라면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가했다. 크로스웨이 성경 연구, 전도 폭발, 제자 훈련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교회에서 그를 돋보이게 했다. 여름철마다 선교팀장이 되어 교인들을 데리고 해외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 봉사를 마친 뒤 예배 시간에 결과를 보고하면, 목사와 교인들은 존경 어린 시선과 박수를 보냈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 점점 중독되는 것 같았어요. 올라가는 명성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가 그런 제 모습에 흠칫 놀란 적도 있었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정이나 직장에서 마주하는 제 모습은 교회와 반대였거든요. 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인격은 거칠어지고 삶은 자꾸 메말라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 제 모습이 싫었어요."

그는 담임목사를 찾아갔다. 담임목사는 그에게 기도 열심히 하고, 성경 열심히 읽고, 교회 열심히 나오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이 원장은 당시 답답했던 마음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교회는 신자들의 주중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많은 헌금이 아닌 정직한 헌금, 가치 창출, 타인에게 유익을 끼친 만큼의 대가로 받는 치료비 등을 중요히 여기고 격려와 권면을 받기를 기대했지만 내 신앙적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107쪽)

이 원장은 잘못된 관행으로 얼룩진 의료계 현실에서 어떻게 양심과 신앙을 지킬지 갈등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잘못된 관행으로 얼룩진 의료계 현실은 그를 더욱 코너로 몰았다. 현행 의료보험 수가(酬價)로는 도심에서 병원을 운영하기 힘들었다. 과잉 진료를 하는 병원도 있었지만 그것은 고객을 속이는 짓이었다. 돈을 많이 남기는 방법은 이외에도 재료비 후려치기, 협력 업체 대금 납부 늦게 하기, 저급한 재료 사용하기 등이 있었다.

법과 제도 미비로 오해를 살 때도 있었다. 같은 병이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법이 다를 수 있다. 표준 치료 지침에 없는 신경 치료를 추가하거나 항생제 투약량을 늘릴 때가 있었다. 관계 기관은 표준 치료에서 벗어났다며 이를 문제 삼았다. 이 원장은 제도에 허점이 있고 의료계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어 가끔 의사들이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했다.

"제도 부재는 잘못된 관행을 낳아요. 기독교인 의사들이 만나면 다들 그래요. 어떻게 양심적으로 병원을 운영할지 고민이라고요. 신앙을 따른다는 건 관행을 포기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 않은 거죠. 의사만 이런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떤 시대든 법과 제도는 현실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니까요. 다른 직업군에 있는 기독교인도 관행과 제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행 나섰지만 시험 낙방
신학대서 기독교윤리 공부
요한계시록에서 발견한 뜻

이철규 원장은 미국행을 결심했다. 현재 의료 환경과 제도 아래에서는 신앙과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양심적 진료를 하고 싶다는 소망과 미국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욕구 아래, 미국 치과의사 면허 시험에 도전했다. 필기시험은 쉽게 통과했다. 실기가 문제였다. 두 차례 도전했는데 모두 낙방했다.

실기 시험에서 떨어진 그는 생각을 바꿨다. '나는 이 황폐한 토양을 개간하려 노력한 적이 있던가?' 그는 기독교윤리로 방향을 돌렸다. 한국에 있는 웨신대에서 기독교윤리와 성서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윤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고 싶었어요. 기독교인은 대안적 삶의 질서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윤리는 다른 말로 삶의 방식(way of life)이에요.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건 종말론이라고 생각해요. 종말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이 결정돼요. 그래서 전공도 요한계시록으로 정했어요. 이필찬, 김근주, 전성민, 김형원 교수님께 가르침을 받았어요.

사람들은 종말론을 쉽게 오해해요. 모두 부서지고 파괴하는 걸로 상상하죠. 현재와 내세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을 통해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어요.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행실을 바르게 하고 신앙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요. 오늘날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날에 기쁨의 소제가 될 거라고요."

책에서도 이 원장은 오늘날 교회가 현세에서 내세까지 이어지는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잊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기독교인이 '일터 신앙'을 잃어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소망은 현재를 지탱하는 축이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신앙은 과거와 미래를 놓쳤다. 성도는 스토리를 망각했고, 교회는 스토리를 재해석하는 큰 스토리를 잃어버렸다. 그 결과 우리들의 교회에서는 십자가에서 출발하여 새 창조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상상력이 사라졌다." (14쪽)

"현세의 삶과 내세적 삶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오늘 우리의 행동은 무의미한 몸짓이 아닌 영원의 날을 향한 씨 뿌림으로써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생과 내생의 연속성은 반드시 '다시 살아남'을 매개로 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상을 손꼽으라면 누구나 부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113쪽)

이 원장은 오늘날 교회가 현세에서 내세까지 이어지는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잊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 원장은 5년 전 치과 의료 선교에서 만난 의사들과 '좋은 치과 만들기 기도 모임'을 만들었다. 오늘날 의료계 문제를 신앙으로 어떻게 풀어 갈지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모임이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환자, 직원, 병원 운영 등을 놓고 얘기한다. 폴 스티븐슨, 팀 켈러 등의 책을 읽고 일터 신학, 제자도를 주제로 토론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좋은 치과 만들기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다. 원장, 직원, 환자, 협력 업체, 지역사회, 공공 기관 등 각 영역별로 점검 사항이 들어 있다. 여기서 지향하는 좋은 치과는 △치과 공동체 구성원을 존중하고 △환자를 정직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해결해 그들이 속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치과에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직원 채용 시 '인사위원회'를 만들어 선임 직원들이 함께 면접하고 채용을 결정한다. 최근에는 주 5일제를 도입했다. 한 달에 한 주만 토요일 진료를 하고 다른 주말은 모두 쉰다. 왜 주말에는 진료를 하지 않느냐는 환자들 불만도 있었지만, 직원들 요청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 원장은 자신의 실수도 환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의사가 환자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옆에 있는 직원들은 금방 알 수밖에 없다. 이는 의사와 직원 사이에 불신을 쌓는 일이다. 이런 노력 끝에, 환자들에게는 솔직하고 투명한 병원으로 알려졌다. 10년~20년간 꾸준히 병원을 찾는 단골이 많다. 장기 환자들이 오히려 이 원장의 건강을 챙긴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치아를 진료해 달라는 마음에서다.

이 원장과 직원들. 이 원장은 직원들을 존중하고 정직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 원장에게 일터에서 기독교인 정체성을 놓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할 말이 없는지 물었다. 이 원장은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계속해서 갈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한계시록은 선·악 구도가 선명해요. 묵시록의 특징이죠. 우리는 두 길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일터 신학의 핵심이 '타협(compromise)'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떤 길로 나아갈지 목표를 정했다면, 삶에서 그 방향을 유지하는 과정이 타협인 거죠.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삶이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려워요. 

팀 켈러는 저서 <팀 켈러의 일과 영성>에서 톨킨이 쓴 '니글의 이파리'라는 단편을 소개해요. 니글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무를 하나 그리기 시작해요. 그러다 결국 이파리 한 장만 그리고 세상을 떠나죠.

니글의 모습에서 우리를 보게 돼요. 우리는 하나님나라라는 아름다운 나무를 꿈꿔요. 그 나무를 그리기 위해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형편없어 이파리 하나만 그리고 끝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그 나무는 이미 완성되어 있거든요. 하나님나라는 이미 현존해요. 따라서 우리의 수고가 무의미하지 않는 거예요."

'니글의 이파리'는 이 원장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도 '니글의 이파리'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 종말을 기다리며 일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기독교인의 삶은 매우 값지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삶의 밑바닥이나 그 너머에는 참다운 실재가 있는 게 분명하며 따라서 이생이 끝이 아니다. 그러니 부르심에 답하기 위한 수고는 비록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영원무궁한 가치를 갖는다." (264쪽)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성도들이여! 신앙을 희석하는 혼합주의의 세태 속에서 말씀을 따라 굳건히 살기를 권합니다. 이것이 참된 복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여러분은 사회적·경제적 난관에 부딪힐 겁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다스림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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