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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그리스도교'는 없지만…

[서평] 마크 채프먼 <성공회 신학>(비아)

양지우   기사승인 2017.07.24  11: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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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학 - 성공회 신학의 형성과 발전> / 마크 채프먼 지음 / 노철래 옮김 / 비아 펴냄 / 452쪽 / 2만 2,000원

존 스토트(John Stott),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 C.S. 루이스(Lewis)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톰 라이트(N.T Wright)나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은?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 존 밀뱅크(John Milbank), 앤서니 티슬턴(Anthony Thiselton)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 본 독자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남성 저자라는 점은 둘째 치고라도 그들 모두 성공회라는 교단에 소속된 성직자 혹은 평신도 저술가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성공회라는 바탕 위에서 표현했다. 저자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의 책을 읽어 본 적 있지만, 활동의 바탕이 되는 '성공회'를 모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에서 성공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교단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교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공회에 관한 단편적인 이해, 혹은 오해가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성공회에 관해 물으면 열 중 여덟, 아홉은 헨리 8세가 이혼하기 위해 만든 교단이라고 생각한다. 100% 거짓은 아니지만, 그런 이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프로이센 제후들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만큼이나 단순하고 편협하다.

<성공회 신학 - 성공회 신학의 형성과 발전>(비아)은 복잡하다고 느껴지는, 그리고 때로는 모호해 보이는 성공회의 역사와 신학을 설명한 책이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근대교회사, 성공회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지은이 마크 채프먼(Mark Chapman)은 이 책을 통해 성공회 신학이 지난 500년간 어떠한 여정을 걸어왔는지를 살핀다. 하지만 마크 채프먼은 이 여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아니, 어떻게 보면 친절하게 설명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성공회 신학은 몇 줄의 신앙 조문이나 선언, 특정 신학자의 신학 저술로 축약될 수 없는 복잡함을 그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간단하고 명료한 앎보다는, 복잡하고 모호한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이해를 위해서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책은 9장으로 구성된다. △성공회 신학, 그리고 성공회에 대한 몇 가지 신화 △종교개혁과 성공회 신학 △성공회 신학의 정착 △타협에 대한 도전 △리처드 후커의 신학 △17세기 △1662년, 자유주의와 성공회의 창안 △신학과 세계 성공회 공동체 △결론. 자세한 색인 목록을 제공한다. 옮긴이의 글은 책의 특징과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서술해 놓았다. 그 뒤에는 방대한 참고도서 목록이 나오는데 19세기 이전의 문헌들을 1차 자료로, 그 이후의 자료들을 2차 자료로 정리한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분류는 자의적인 선택은 아니다. 성공회 신학의 결정적인 분기점이 19세기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 성공회가 잉글랜드의 '유일한 교회'가 아닌, 하나의 교회로 자리 잡게 되자 성공회 내 분파들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성공회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분투했다. 초대교회, 그리고 교부들의 교회와의 연속성을 강조하던 성공회-가톨릭주의자들은 교부들의 문헌을 출판하여 교인들에게 나누는 운동을 시도했다. 이에 맞서 복음주의 계열의 성직자와 교인들은 1840년 파커 협회(The Parker Society)를 설립하여 종교개혁에 동참했던 성공회 저자들의 책을 출판하는 데 힘을 쏟는다.

서로 맞서는 이 운동들은 단지 책의 출판, 판매에 대한 관심에서가 아니라, '과거를 어떻게 해석해 낼 것인가'라는 해석의 우위를 놓고 대결을 벌였다. 마크 채프먼은 19세기가 성공회 신학이 자신의 색채와 형태를 완성하는 주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고 19세기와 16~18세기 기간을 교차하여 살피는 방식으로 과거를 재해석하는 움직임을 그린다.

"이 책은 성공회 신학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던, 경쟁하는 여러 생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이 책에서는 1662년 통일령 이전에 활동했던 핵심 사상가들과 그들이 취했던 체계, 그들이 자극했던 생각에 관해 역사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성공회가 하나의 교파로 불리기 시작한 19세기에 등장한 신학 논의들은 그 역사적인 배경과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30쪽)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방식은 성공회 역사 안에 등장하는 굵직한 인물들, 왕과 신학자 그리고 성직자를 중심으로 일별하는 것이다. 혼인 무효 소송으로 로마교회로부터 잉글랜드 교회를 떼어 내려 했던 헨리 8세(Henry Ⅷ, 1491~1547), 대륙의 종교개혁 사상을 잉글랜드 안으로 들여와 기도서라는 핵심 매체에 담아내려 했던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 종교개혁 사상과 전통적 교회의 부딪침을 왕의 권위로 화해하려 했던 엘리자베스 여왕(Elizabeth I, 1533~1603), 로마교회에 대한 잉글랜드 교회의 독립성을 변호하려 했던 존 쥬얼(John Jewel, 1522~ 1571), 성공회 내의 종교개혁 사상과 가톨릭 사상을 대표하며 치열하게 논쟁했던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 1535~1603)와 위트기프트(John Whitgift, 1530~1604), 그리고 극단적인 사상들을 피해 포용적인 신학을 법적 체계에 대입해 구성하려 했던 리차드 후커(Richard Hooker, 1533~1600)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들은 16세기 잉글랜드 성공회의 종교개혁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었고, 그들의 사상은 이후 성공회 신학을 길어 올리는 주요한 원천이 되었다.

"엘리자베스와 스튜어트 왕조 아래 진행된 종교개혁의 과정은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그리는 잉글랜드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논쟁을 거듭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충성스러운 국교회 신자라고 말했지만 교리, 교회 질서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 의견을 달리했으며 심각한 논쟁을 벌였다. 그 결과 누군가는 성공했고 또 누군가는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한 곳에서조차 성공하지 못했다." (26쪽)

독자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은 잉글랜드 교회가 자리한 정치 사회적 맥락이다. 마크 채프먼은 교회사, 역사신학 저서들이 신학의 발전사 정도로 축소되는 함정에 자주 빠진다는 것을 의식하고 잉글랜드 교회의 외부 상황에 대해 매우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론상 이 시기 잉글랜드는 '국교회 제도 국가'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성공회 신학'도 일정한 틀을 갖추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신학적 논쟁은 계속되었으며 정리되기보다는 더 뜨거워졌다. 이 신학 논쟁들이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교회와 국가의 권한, 권위에 관심하는 신학에 관해 살피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147쪽)

잉글랜드 성공회의 종교개혁적 성향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초대교회와의 연속성, 교회의 고대성을 중시하는 성공회-가톨릭주의, 근대적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넓은 의미의 '교회'를 실현하려 했던 자유주의 분파 사상은 대항해시대에 이루어진 잉글랜드의 세력 확장과 발맞추어 세계로 뻗어 나갔다. 각 사상의 역사적 맥락과 초점은 지역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조정되었고, 성공회가 품고 있던 핵심적 질문도 바뀌었다. '(잉글랜드) 성공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내려 두고 이제 '전 세계로 뻗어 나간 성공회 교회는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기 시작한 것이다.

"1888년경 성공회는 잉글랜드 성공회로 환원될 수 없었다. 성공회는 공통의 역사를 공유한다 할지라도,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교회들이 느슨한 연대를 이루는 집단으로 변화했다." (357쪽)

"19세기와 20세기 여러 교회가 자신의 권위를 갖는 자치 관구가 됨에 따라 성공회는 잉글랜드 교회 색깔을 훨씬 덜 띠게 되었다. 이례적인 현상이 되는 대신, 또는 독특한 세계 브랜드가 되는 대신 엄청나게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성공회 교회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좀 더 정확하게는 지역 시장에서 팔기 위해 지역 공장에서 설계한 상품에 가깝다." (385쪽)

성공회 신학이 형성, 발전되는 과정은 결코 깔끔하거나 분명하지 않다. 심지어 아름답지도 않다. 성공회가 걸어온 길은 빛과 그늘, 논쟁과 타협, 대화와 상호 몰이해가 겹겹이 쌓인 두터운 길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모호함이야말로 성공회가 지닌 포용성과 다양성을 설명해 준다.

한국 그리스도교 안에서 지체로 사는 우리에게 성공회의 신학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우리는 초대교회의 원형적인 그리스도교상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지난하게 이어졌던 역사의 시기들은 잊은 채, 그 안에서 벌어진 무수한 다툼과 갈등, 논쟁들을 외면한 채 순수하고 매끈한 그리스도교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ᐧ사회적 맥락과 맞물리며 나아온 교회의 삶을 순전하게 윤색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성공회의 역사와 신학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대답한다. C.S. 루이스의 책 제목을 빌어 말하자면, "그런 순전한 그리스도교는 없다고."

성공회가 신학을 길어 올린 발자취는 우리가 하나 되어 교회를 이룬다는 것의 어려움을 꾸미지 않은 채 보여 준다. 일치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순수하고 원형적인 그리스도교에 대한 희망을 유예하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환영할 수 없고, 작든 크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괴롭히는 우리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 성공회의 역사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던져 준 가장 큰 의미는 역설적이게도, 정치·사회적 맥락 안에서 자신들의 옮음과 정당성을 확고하게 하려 했던 신앙인들의 그늘 진 모습일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아가려 할 때에야 '관용', '중용', '일치'라는 선언의 문구는 살을 입고 우리의 삶 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성공회는 자신을 그리스도교의 최고 형태로 칭송받기 위해 부름받은 교회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부서진 모습을 통해,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사라지게 되는 보편 교회를 가리키도록 보냄받았다." - 마이클 램지(Michael Ramsey, 100대 캔터베리 대주교)

양지우 /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마쳤으며, 성공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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