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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독 법률가도 개혁이 필요한 이유

[인터뷰] 기독법률가회 이병주 변호사

최승현 기자   기사승인 2017.07.23  12: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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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복음주의 단체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연합 기도회를 열고 있다. 7월 31일 7시 30분 서울영동교회에서 열리는 기도회 주제는 '법과 사회정의'다. 법조계에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이 기도회는 기독법률가회(CLF)가 주관한다.

이병주 변호사는 이번 기도회 설교자 중 한 명이다. <호모욕쿠스>·<평신도의 발견>(아포리아), <박근혜 사태와 기독교의 문제>(대장간)를 쓴 이 변호사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1983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해 곧바로 운동권에 투신했다. 전두환 정권과 싸우던 그는 1986년부터 1987년까지 10개월 동안 수감 생활도 했다.

출소 후에도 1991년까지 노동운동을 하던 그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사법시험을 패스한 후 인권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에 들어갔다.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떤지 알아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로펌에서는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버드 로스쿨에 연수를 보내 줬다. 외관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거기서 '자가 면역성 수포 증후군'이라는 병을 얻었다. 아무런 외부 균이 침투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항체를 만들어 피부가 벗겨지는 질병이다. 30년 전에는 치사율 50%였다는 의학책을 보면서, 급격한 무력감과 인생의 절망을 느꼈다. 투병 중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다.

처음에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5년간 '위장 전입' 신세로 교회를 다녔는데, 투병 중 신비 체험을 겪고 "내가 너를 움직이고(move), 인도하겠다(guide)"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출퇴근과 자투리 시간을 다 채워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찬송을 듣는 '시간의 십일조'를 할 만큼 독실해졌다.

기복적·개인주의적 신앙에 매몰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이 변호사는 '공적 신앙'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공적 신앙이란, 세상과 인생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신앙을 실천하고 공익을 실현할 수 있는 신앙생활이다. 기독교 신앙과 정신을 생활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 진학해 신학 석사(MAT) 과정을 마쳤다.

이병주 변호사는 사회에서도 신앙생활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기도회를 앞두고 독특한 이력의 이병주 변호사를 먼저 만나 봤다. 7월 20일 서초동 CLF 비전센터에서 이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 신앙인이 된 이후의 삶은 이전과 다를 것 같다. 사익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일이 신앙적으로도 가치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처음에는 변호사 하면 세상 싸움을 거들고 개평이나 받는, 거룩과 거리가 멀고 예수 믿는 직업으로는 전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호사 일을 하면서 내 일이 사회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의사가 육체적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처럼 변호사는 법률적, 영적 위기에 처한 사람을 살리거나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2년간 상근 임원으로 일했는데, 마침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던 때였다. 변호사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신규 변호사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던 상황이지만, 신앙적으로 다른 적극적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개인 입장에서는 괴롭고 힘들지만, 그만큼 더 많은 크리스천 법률가가 세상의 더 낮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더 넓고 더 낮게 세상의 어렵고 힘든 사람들 곁으로 퍼져 나간다는 측면에서 이익이지 않나.

그래서 하나님의 이익과 사람의 이익은 다르다는 점, 사람에게는 손해가 생기는 일도 하나님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서도 신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고 추구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교회 밖 신앙생활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예수 믿고 난 후, 직장에서 신앙생활 정말 열심히 했다. 로펌은 믿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아프고 난 후, 목사님 말씀대로 '시간의 십일조'를 했다. 아침 저녁으로 설교를 듣고, 자기 전에 성경을 읽고, 사무실에서는 찬송가를 틀었다. 4년 동안 찬송가만 듣고 유행가는 재미가 없어서 아예 듣지 않을 정도였다. 회사에서 뜻 맞는 신자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점심에 모이는 성경 공부 모임을 만들어 운영했다.

교회에서의 신앙생활과 회사에서의 신앙생활을 병행하게 되었다. 교회의 신앙생활도 재미있고 열심히 했지만, 회사에서의 신앙생활은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보다 더 주체적이고 진실되게 느껴진 면이 있다. 회사의 신앙생활에서는 서로 매일 만나고 삶을 나누고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로가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얘기할 수도 있다. 그에 비해 교회의 신앙생활에서는 자기의 신앙적인 의견을 정립하거나 평신도 입장에서 신앙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실천해 나가는 데 다소 어려움이나 조심스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교회에서의 신앙생활과 교회 밖에서의 신앙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다는 점이 참 좋았다. 로펌의 신앙 모임이나 기독법률가회 활동을 통해서는 나의 신앙적 주관과 의욕을 주체적으로 풀어 나가는 신앙의 씨름을 했다. 교회에서는 예배와 찬송과 기도와 주일학교 등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지속하면서 신앙적인 위로를 받고 신앙적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었다. 교회 밖의 신앙생활을 함께하니까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에 과도한 기대도 하지 않고 지나친 실망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만일 교회 밖, 생활 속에서 신앙생활을 함께 병행할 수 없었다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데 다소의 지루함이나 답답함을 느끼고, 가나안 성도처럼 교회를 떠나 방황하는 입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평신도 동료들에게 교회에서의 신앙생활과 함께 세상과 직장 속에서의 신앙생활을 함께 병행하라고 강하게 권유하고 싶다.

교회에서 노방전도를 가면 사람들이 다 외면하고 문도 안 열어 준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은 언제든 문 두드리면 열어 주고 신앙적인 이야기도 잘 들어 줬다. 억지로 모르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보다 내 직장 사람들, 내가 만나는 의뢰인들과 접촉하는 일이 기독교인으로서의 가치를 진지하게 공유하기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자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직장 생활, 사회 속에서의 신앙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본래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직장생활이지만, 직장에서 의미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니까, 내가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돈을 버는 일보다 신앙 모임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직장은 아무리 좋아 봐야 그냥 직장이고, 직업은 아무리 좋아 봐야 그냥 직업이다. 직장과 직업 자체에서 우리가 인생의 만족은 완벽하게 얻고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장과 직업 생활은 근본적으로 고통스럽고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내가 다니는 직장과 내가 하는 직업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면, 내가 있는 직장의 의미도 달라지고 직업의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

- 반대로 많은 신앙인이 교회 밖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인가. 저서 <박근혜 사태와 기독교의 문제>에서 '신앙의 개인주의화'가 교회의 타락을 불러왔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교회 다닌 지 오래된 이른바 '경력직' 평신도들은, 비유하자면 도장에서 무술 수련을 웬만큼 배운 사람이다. '하산'해서 세상에서 그것을 써먹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계속 교회(도장)에만 앉아서 학생 노릇을 한다. 그게 참을 수 없이 지겨워지면 가나안 성도가 되기도 한다.

2014년 세월호 사건부터 2017년 탄핵 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는 세상의 희생자들에 대해서 무정했고,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무관심 이상이었다. 사회·정치적 책임은 감당하려 하지 않고 기독교인의 이웃 사랑과 자기 부인과 긍휼심은 껍데기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공적 책임감이 전혀 없었다.

이제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정의롭고 세상은 악하다'는 기독교인들의 선입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자라는 사람들이, 80%의 압도적인 지지로 미국 역사상 가장 비윤리적이고 인종주의적이며 이기적인 욕망을 설교하는 트럼프를 대통령 만든 것만 봐도 알지 않나.

기독법률가회 회원들이 7월 18일 모여, 기도회 준비 모임을 열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어떤 사람들은 법률가를 권력 지향적으로, 불의한 집단으로 보기도 한다. 국정 농단 사태에서 권력에 부역한 이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 법률가들이었다. 7월 '법과 사회정의'라는 제목으로 기도회를 인도하는데, 이와 관련된 메시지가 있는가.

장로나 목회자라고 사적 욕망이 없는 게 아니다. 신앙인들도 사적인 욕망이 있다. 겉으로는 독실하고 착하고 점잖아 보이고 성경을 끼고 사는 게 기독교인들이다. 그런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는 점잖은 악당과 착한 간신 노릇을 해 왔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믿고 서로 가르치고 배워 온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개인주의적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교회에서만 믿고 사회에서는 믿지 않는, 공간적으로 제한되고 본질적으로 왜곡된 신앙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왜 독실한 법률가들이 하나님의 정의, 사회적 정의를 소신껏 추구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이번 기도회에서는 한국 사회의 불의에 앞장선 크리스천 법조인과 크리스천 평신도들의 잘못이, 한국교회가 잘못 가르쳐 온 비사회적이고 반사회적인 신앙 때문에 나타난 것임을 함께 반성하고 회개하려고 한다.

우리 기독 법률가들을 포함한 세상의 평신도들이 더 이상 신앙의 구경꾼으로 남아 있지 않고 신앙의 주체로 일어서기를 함께 기도한다. 그동안 평신도를 깨워서 교회 일을 시키는 신앙에서 이제는 평신도 스스로 일어나서 자기 신앙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에서 신앙의 일을 하는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삶과 직업과 직장,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신앙의 실천을 보이는 길을 본격적으로 찾아내면, 그 노력으로 교회가 되살아나리라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자 믿음이다. 한 사람이 혼자서 하면 조금 하다가는 지치고 낙담하고 포기하고 실패하고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이 일을 함께해 나간다면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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