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문화 축제를 전후로 보수 개신교는 동성애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보수 개신교는 '동성애', '성소수자'를 향한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그들의 주장으로 그려 보면, 동성애자는 이성애를 '선택'할 수 있는데도 동성과의 성 중독에 빠진 문란한 사람들입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은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실일까요. 보수 개신교인들이 아무리 반대한다 해도, 우리 주위에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습니다.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직접 만난 뒤 인식이 바뀐 신앙인도 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2017 퀴어 문화 축제 전후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신앙인들 인터뷰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지금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의 진솔한 신앙담부터, 퀴어 문화 축제를 찾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고민, 또 그들 곁에 있는 목회자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이번 기획은 신학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논의하자는 취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상상 속의 성소수자가 아닌 현재 우리 옆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마지막 기사는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열린문공동체교회 크레이그 바틀릿 목사 인터뷰입니다. - 편집자 주

 

"예수님과 사진 찍고 가세요. 무지개빛 최후의만찬입니다. 사진 찍어 드립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습하고 더운 날씨임에도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붉은색 긴 가발을 쓰고, 온몸을 덮는 하얀 가운을 입은 키 큰 백인 남성. 예수로 변장한 크레이그 바틀릿(Craig Bartlett) 목사는 품으로 달려드는 사람들과 쉼 없이 사진을 찍었다. 8만 5,000명이 방문한(주최 측 추산) 2017 퀴어 문화 축제에서 그는 스타였다.

바틀릿 목사를 처음 본 것은 2015년 퀴어 문화 축제에서다. 열린문공동체교회(ODMCC) 부스 한쪽에 서 있던 그를 기억한다. 관련 행사에서 종종 마주치던 그가 목사라는 사실을 안 것은 2016년 육우당 추모 기도회에서였다. 바틀릿 목사는 성소수자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을 기도문으로 작성해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2016년, 2017년 퀴어 문화 축제에서도 그는 교회 부스를 지켰다.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 다음 날, 서울 광화문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해마다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는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목사가 어쩌다 성소수자들과 함께하게 됐을까. 한국교회와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아 보였다.

바틀릿 목사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크레이그 바틀릿 목사는 2017 퀴어 문화 축제 내내 부스를 지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올해 퀴어 문화 축제 어떻게 보냈나.

재미있었다. 우리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특히 '무지개빛 최후의만찬'은 처음 시도한 것인데, 반응도 좋고 찍히는 나도 즐거웠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성소수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개신교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미 20년 전 로뎀나무그늘교회가 시작됐다. 섬돌향린교회, 길찾는교회, ODMCC 같은 교회 공동체가 존재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한국교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훨씬 크게 들리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재정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훨씬 잘 조직돼 있다. 우리 존재를 알리는 건 여전히 힘겨운 싸움이라 생각한다.

- 언제부터 목회에 관심이 있었나.

캐나다 토론토 빅토리아대학교 이매뉴얼컬리지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고 목회학을 전공했다.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UCC)에서 자랐기 때문에 장로교 전통과 진보적 개신교 전통을 둘 다 알고 있다. 나는 9~11살 정도에 완전히 개신교 믿음을 갖게 됐다. 담당 목사가 사제 스타일로 예배를 인도했는데, 초교파적이었다. 그는 개신교인에게 사회참여가 중요하다고 설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부분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UCC는 1960년대 후반 주일학교에 새로운 커리큘럼을 도입했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커리큘럼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에 더해 신학계 새로운 흐름을 교재에 소개했다. 당시 UCC는 그런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교단 내에서도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힘들어 한 측면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신학적으로 옳은 길을 갔다고 생각한다.

- 그럼 이미 신학교에서 퀴어신학, 성소수자 같은 개념을 배웠던 건가.

그건 아니다. '성소수자'는 그때에도 새로운 개념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UCC는 성소수자 논쟁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논의 끝에 성소수자 교인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목사 안수를 허락하는 안건을 1988년 총회에서 통과시켰다. 벌써 30년 전이다. 물론 그 문제 때문에 교단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 교인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교회 밖 성소수자들의 지지자(앨라이)가 돼 주는 것은 옳은 일이다. 북미 주요 교단은 기껏해야 10년 전부터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PCUSA(미국장로교회), UMC(미국연합감리교회)를 보라. 보수적인 복음주의권에서도 LGBT(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브라이언 맥클라렌, 랍 벨, 매튜 바인스, 토니 캠폴로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이 이슈에 대해 입장을 바꿨다. 이런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당신도 입장을 바꾼 쪽에 속하는가.

그건 아니다. 나는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신학을 배웠다. 내가 이 문제를 고민할 때쯤에는 내가 속한 교단에서 이 이슈는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나한테는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 UCC 출신인데 어떻게 '성소수자를 위한 교단' MCC(Metropolitan Community Churches)로 옮겨 가게 된 것인가.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으려고 했는데 그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할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주변 친구들이 아시아에 가서 영어 선생님을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적성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한번 시작해 보겠다고 해서 한국에 온 게 1997년이다. 한국에서 7년, 중국에서 6년, 다시 한국에서 1년 반, 홍콩에서 2년을 보내고 지금 한국에 정착한 지 5년째다.

사실 한국에 도착해서 여러 교회를 둘러봤는데 내가 알고 있는 교회 모습과 너무 많이 달랐다. 어느 교회를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교회 발길을 끊었다.

- 교회를 아예 떠났었는데, 다시 목회를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교회를 떠나긴 했지만 적어도 성탄절 예배는 꼭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성탄절은 가족·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날이고, 예수를 생각하는 날이기도 했으니까. 우연한 기회에 토론토 메트로폴리탄교회 맬컴 싱클레어 목사의 성탄절 전야 설교를 들었다. 제목은 '예수 없는 개신교'(Christ-less protestant)였다. 싱클레어 목사는 설교에서 예수님 모습을 볼 수 없는 이 시대 개신교인을 '권력자'로 묘사한다. 제국의 힘을 가진 자와 동일시했다. 설교를 듣는데 빛이 번쩍했다. 현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놓친 신학적인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신학서와 논문을 읽었다.

교회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단순히 그냥 교회에 다시 다니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어디서 목회를 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했다. 목회자로 산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여러 교단을 생각해 봤고, 고민해 봤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 ODMCC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와 함께 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교회를 창립한 대니얼 페인 목사가 함께 목회해 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해 와서 맡게 됐다.

- ODMCC는 어떤 교회인가.

우리는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교회다.(웃음) 이 말이 우리를 제일 잘 설명하는 문장 같다. ODMCC는 현재 12명 정도가 꾸준하게 출석한다. 잘 다니던 사람도 한국을 떠나야 하면 교회를 떠나게 되고, 또 새로 오는 사람도 있다. 장기적으로 뭔가 계획을 세우기는 힘들지만 나와 아내, 12명 정도가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퀴어 문화 축제가 끝나면 사람이 조금 늘기도 한다. 동시통역기가 있기는 한데 마땅한 통역사가 없어서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은 힘들 수도 있다.

평일에는 대전에서 영어 선생으로 일하고, 주말에만 올라온다. 매주 이렇게 하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모두 자원봉사로 교회를 유지한다. 지금 교회 공동체를 이어 가기 위해 구성원 각자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같은 믿음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교회 모습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틀릿 목사는 평일에는 대전에서 영어 선생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서울에서 목회하는 '이중직' 목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보수 개신교인들은 '성경은 동성애를 정죄한다'고 말한다.

그 문장에서 두 가지를 봐야 한다. 먼저 '성경'이라는 단어다. 보수 개신교인들은 성경이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성경은 수천 년 동안 구두 혹은 문자로 기록된 여러 문학 작품의 전집이다. 성경에는 어떻게 하나님이 이 세상에 개입하시는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이 기록돼 있다. "성경에서 말하길"(Bible says)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인용 방법이다. 내 모교회에서는 늘 "우리는 성경이 삶에서 유일하고 귀중한 신앙을 '담고' 있음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이는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권위가 담긴 말씀"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완전히 다른 고백이다.

둘째로 '동성애를 정죄한다'는 부분이다. 구약성경 몇몇 구절에서는 동성 간 행위를 정죄한다. 하지만 그 의미를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구약은 전체 맥락으로 보면 세상 관습과 자신을 구별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성전 매춘 같은 게 그 예다. 신약성경에서도 바울이 동성 행위를 정죄한다. 하지만 최근 발행된 논문을 보면, 이것 또한 당시 사회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살았던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남성의 발기된 성기를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다. 권력이 있는 남성이라면 아무나 범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숭배했다고 한다. 바울이 비판한 것은 이런 행위다. 그가 정죄한 것은 사랑 없는 폭행이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소돔과 고모라 서사도 '환대'(hospitality)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언서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인용할 때는 "가진 것이 풍족했는데 주위와 나누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동성 섹스'를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소돔과 고모라를 얘기하실 때 '섹스'를 언급하신 게 아니다.

그래도 조금 진보적인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이라는 렌즈를 통해 성경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렌즈라는 것은 뭘까. 고대 지중해에 살고 유대 민족 예언서에 큰 영향을 받아, 당시 살고 있는 유대 사회에 정의와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알리려고 하는 유대 남성의 시각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 렌즈를 현대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쉽게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부터 시작할 수 있다. 모교회에서는 "예수님이라면 차별하셨을까"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예수님이라면 성소수자, HIV 감염자, 기후변화 피해자, 경제 불평등으로 힘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거다.

- 성소수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회의 존재가 왜 중요할까.

예수님의 복음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의 삶에서 거룩함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관계에서 기쁨을 회복하게 도와주는 것이 복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다고 해 보자. 교회 역할은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하고, 예수님도 함께 걷고 있고, 우리도 당신과 함께 걷겠다"고 알려 주는 거다.

LGBT 크리스천은 사실 교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중 더 큰 목소리만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이제 끝이야"라고 말하고 떠나 버리거나 자신을 속이고 이중적인 삶을 산다. 얼마 전, 성소수자 잡지의 한국 특파원과 인터뷰했다. 기자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설명해 주는데 기가 막혔다. 나는 그런 교회에 계속 다니는 성소수자를 이해하기 힘들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런 설교에 익숙하다.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교회를 다닌다. 비성소수자 교인처럼 찬양하고, 기도하고, 고백하고, 그들이 믿는 것을 믿는다고 똑같이 얘기할 때 괜찮을 수도 있다고 치자. 다른 사람들이 진짜 나에 대해 모른다 할지라도 괜찮을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보수 개신교인이 신앙생활하는 것처럼 똑같이 해야만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복음이 아니다. 진짜 복음은 조건 없이 "당신은 받아들여졌다"고 말한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설교 중 하나가 폴 틸리히의 '당신은 받아들여졌습니다'(you are accepted)다. 나에게는 그 설교가 복음의 축소판이다. 무려 1950년대 나온 설교다. 중심 내용은 이렇다.

"우리가 스스로를 증오할 때도, 괴물처럼 느껴질 때도,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도, 삶이 여전히 짙은 어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하나님은 당신을 받아들이신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은혜다."

나는 그 은혜를 믿는다. 아침에 힘들 때 나를 일으키는 건 이런 하나님의 은혜다. 복음이 이야기하는 것 역시 은혜다.

- 한국 보수 교인들도 똑같이 '복음'을 이야기한다.

그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들이 사랑에 사로잡혀서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두려움은 모든 증오의 기본 바탕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다. 특이한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보수 개신교인들, 특히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넘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봤으면 좋겠다. 김조광수 감독에게 했던 것처럼 막 통성기도하면서 언어폭력을 가하는 게 아니라, 앉아서 사람 대 사람으로 진지하게 대화해 보라는 거다. 성소수자와 마주 앉아서 삶이 뭔지, 신앙이 뭔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다. 물론 대화한다고 해서 납득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바틀릿 목사는 "성소수자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복음"이라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교인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도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여전히 지구가 6,000살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거고, 천사가 실존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이단은 불에 태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서 충격받았다. 실질적으로 임 목사를 재판할 권한도 없는 교단이 심판하겠다고 나선 것 아닌가. 임보라 목사 문제는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윤리의 문제다. 윤리적인 문제를 교리적인 문제로 끌어올려서 과장하고 있다. 그들 교단 내부에도 쉬쉬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정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복음에도 맞지 않고, 개혁주의 신앙에도 맞지 않는다. 제발 그만두라고 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성소수자 혹은 진보적인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도, 그들도 인생의 순례자다. 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 계속 여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도 우리처럼 순례의 길 위에 서 있는 것뿐이다. 마음을 열고, 우리 모두가 순례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모든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걸으실 것이다.

- 성소수자를 교인으로 인정하면, 북미·유럽처럼 개신교인 수가 급하락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북미와 유럽에서 개신교 신자가 줄어든 결정적인 이유는 인구문제였다. 한국에서도 그동안 교회가 외쳐 온 것과 실제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떠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가나안 신자' 증가는 이런 이유다. 보수 개신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여전히 전도할 수 있다고 믿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분명히 개신교 인구가 급감하는 때가 온다.

그리스도인이 분명히 소수가 되는 때가 올 텐데, 나는 그게 별로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이 되라고 하셨지 양념통 전체가 되라고 하지 않으셨다. 효모가 되라고 하셨지 빵 덩어리가 되라고 하지 않으셨고, 빛이 되라고 하셨지 전력 시스템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다.

21세기 기독교인의 역할은 사람들을 더 큰 정의, 더 넓은 포용으로 이끄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경제·환경·정치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오히려 영적인 것에 목말라한다. 삶에서 뭔가 새로운 방향을 원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데, 교회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데 실패하고 있다. 여전히 옛날 꽃날 부흥할 때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이야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그 기준에 맞추라고 강요까지 한다. 그러니 '가나안 신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번개 맞을 일도, 어디선가 판단하는 망치가 나타나 길 가는 사람을 갑자기 때릴 일도 없다는 것도 안다. 교인들은 교회를 떠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회는 지금 직면한 새로운 환경에서 뭘 이야기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전통을 이어 가면서 동시에 희망을 말하고, 희망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 세계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을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명확한 입장을 표하는 사람 외에,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앞서도 말한 것처럼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당사자를 만나 보라. 만나서 꼭 이야기를 나눠 봤으면 좋겠다. 그들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삶. 그리고 이미 이런 사람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고 사는 나라를 둘러보면 좋겠다. 캐나다는 이미 15년 전에 '평등한 결혼'을 인정했다. 성소수자가 그 모습 그대로 살아도 사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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