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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의 한국교회는…

[인터뷰] 이정배 교수 독서 여정②

강동석 기자   기사승인 2017.07.21  12: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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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부활의 계절 4월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세월호 이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는 개신교의 죽음과 부활을 논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했다. 올해 초, 한국교회에 대한 어느 신학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오늘의 교회는 영적 치매 상태다. 예수가 어떤 분인지 다 잊어버렸다. 영적 자폐다. 자기들 속에만 갇혀 버렸다. 영적 방종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할 짓 못할 짓 다 하고 있다. 한마디로라면 영적 파산이다. 과장일지 모르지만 기독교가 백해무익한 시대가 됐다."

영화 '사일런스' 대담 자리에서 한 말이었다. '세월호'로 명명되는 시대적·신앙적 현실 앞에 서 있는 한국교회 모습에 대한 이정배 교수(감신대 은퇴)의 진단이었다. '세월호 이후의 신학'을 이야기해 온 그는 7월 11일 인터뷰 자리에서 말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그랬던 것처럼, 세월호 이후 개신교는 또 한 번 죽음을 맞았다고. '세월호 이후' 그는 개신교권 집회 현장에서 기도와 설교를 하며 자리를 지켜 왔다.

서울 부암동 현장아카데미 앞에서 만난 이정배 교수에게 근황을 묻자, 종교개혁 500주년 '이후(以後) 교회' 담론을 책으로 묶어 낼 예정이라고 했다. 치열하게 연구하고 토론하며 대안을 모색한 결과물이다. 이 교수는 박득훈·방인성 목사와 함께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로서 '탈성직·탈성별·탈성장'을 외치며 작은 교회 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정배 교수가 한국교회 개혁의 키워드로 꼽은 단어는 고독·저항·상상이었다.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눈, 의심의 눈, 자기 발견의 눈을 통해 성서를 읽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지난 인터뷰 기사에 이어, 글쓰기와 설교, 종교개혁 500주년과 세월호에 대한 이정배 교수의 이야기를 싣는다.

이정배 교수를 만나 2시간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저서들이나 평소 쓰는 글을 보면 특유의 문체가 보인다. 본인의 글쓰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지금도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수가 되고 3~4년이 지났을 초년 시절, 익명의 학생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편지에는 "선생님 그게 글입니까? 이 글 좀 보시고, 이렇게 쓰십시오"라는 메시지와 함께 복사된 인쇄물 2개가 놓여 있었다.(웃음) 이현주 목사와 민영진 박사의 글이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충격이었다.

아직까지도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고맙게 생각한다. 유학하면서 독일어로 6~7년 사고하다 한국에 오니까 글이 독일어식으로 길게 늘어졌고, 우리말을 써도 독일어식 문장이 됐다. 그런 글을 쓰니까 한 학생이 익명으로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이다.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지려 애를 썼지만, 금방 변하지는 않았다.(웃음)

그리고 갈수록 글을 쉽게 쓰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다. 나름대로 문장을 조금 더 간결하게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습관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내 글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 겨자씨교회에서 10년 넘게 설교목사로 섬기고 있다. 개신교권 세월호 집회에서 열정적인 설교로 호응을 받기도 했다. 평소 설교 준비는 어떻게 하나.

설교는 20분의 예술이라 생각하고 있다. 20분 동안 설교를 듣는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설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나는 본문 설교보다는 주제 설교를 많이 하는 편이다. 성서학자가 보면 비판할 수도 있겠다. 성서를 읽다가 설교 단상이 떠오른 경우도 많으나 그 반대의 경우도 제법 많았다. 책을 계속 읽고, 현장 이곳저곳으로 곧잘 발걸음 하는 과정에서 설교 주제가 떠오른다. 그때 얻은 생각을 성서 본문과 연결해 설교를 생각한다.

부연하자면, 주제가 떠오르면 한참을 머릿속에서 심화시킨다. 주제를 담아낼 성경 구절이 어디 있는지 생각해 보고 못 찾겠으면 성경 여러 곳을 다시 읽는다. 무엇이 먼저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경 본문과 아이디어를 놓고 설교를 고민한다. 나에게는 제목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다. 제목을 잘 잡아야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제목을 잡아 놓고 며칠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굴리며 생각을 불린다. 우리말 성경에서 안 풀어지면 영어 성경, 독일어 성경, 가끔은 희랍어 성경도 들추어 본다. 번역 차이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험도 많았다. 주석에는 많이 의존하지 않는 편이다. 삶의 현장을 경험한 후의 설교는 분명히 다르게 전달된다고 확신한다.

설교와 관련하여 유영모·함석헌·김흥호와 같은 분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누에의 철학'이다. 누에는 무수하게 많은 뽕잎을 먹지만, 결국 자기 꽁무니에서 비단실을 뽑아낸다. 이는 성경 말씀을 많이 읽어도 결국 그 말이 제소리로 나와야 함을 뜻한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경 말씀을 아무리 많이 외우고 주워섬겨도 그것은 여전히 남의 말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제소리로 표현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 제소리가 바로 설교여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제소리를 내지 못 한다. 성경 구절을 읊조리거나 정체 모를 인용문으로 내용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남의 소리만 하는 셈이다. 설교를 위해 성서를 비롯하여 여러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뽕잎을 많이 먹어야 비단실이 나오듯 말이다. 책도 많이 읽고 현장도 많이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한다. 성경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긴 시간 주제를 자기 입으로 묻고 불려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물음을 불려서 그 뜻을 풀어내는 것이 제소리로서 설교다.

이정배 교수는 남의 소리가 아닌 제소리를 낼 수 있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4월 12일 세월호 2주기 감신·장신·총신·한신 신학생 기도회가 열렸을 당시 서울시청 대한문 사진. 신학생들이 이 교수 설교를 듣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경향신문> '내 인생의 책' 코너에 쓴 칼럼에서 <노예냐, 자유냐>(늘봄)를 텍스트로 다뤘다. 이 책은 언제 읽었나.

<노예냐 자유냐>는 장인어른 故 이신 박사가 번역한, 유고다. 이신 박사가 1979년 번역했다. 결혼 후 이 책을 알게 되었으나 공들여 읽은 시점은 상당히 지나서다. 유학 후 감신대에서 <노예냐 자유냐> 저자 니콜라이 베르다이에프(Nikolai Aleksandrovich Berdyaev, 1874~1948)에 대해 가르치게 되면서 다시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베르다이에프는 소련의 옛 이름인 러시아 태생이다. 자신의 조국이 마르크스주의를 이념으로 삼아 전체주의화되자 그는 조국을 등지고 서유럽으로 망명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류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럽으로 망명한 후 서구 자본주의와 대면했는데, 자본주의 역시도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 같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도 서구 자본주의도 인류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절망'이었던 것이다.

1930년 한창 양대 이데올로기가 싸울 때 베르다이에프는 두 이념을 함께 비판하면서 "인간은 물질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최소한의 물질로 살려고 할 때 그 최소한의 물질은 물질이 아닌 정신이다. 인간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바로 이 말의 본뜻이다"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도 했다. "내가 먹은 빵은 아무리 잘 먹어도 서너시간 지나면 나를 또 배고프게 만드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내가 남에게 준 빵은 영원히 기억되는 정신으로 남는다."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가 한창 대결할 때 베르다이에프는 '최소한의 물질'을 이야기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나 마르크스주의 사회 속에서도 상전인 척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상전인 척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거기 빌붙어 종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 역시 많아진다. 이들은 한마디로 노예다. 상전도 종도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처럼 자유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자유로우려면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베르다이에프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는 것을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로 이해했다. 인간은 창조적 상상력(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길을 갈 수 있는 존재인 탓이다. 상상력이 없을뿐더러, 있는 상상력마저 부패한 시대를 살고 있다. 상상력의 부패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부패다. 지금 우리 의식은 둔화됐고, 부패해 있다. 돈 많이 버는 것이 꿈인 시대를 살고 있는 까닭이다.

베르다이에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상상력을 가지고 사는 제3의 길을 알려 줬다. 지금 러시아정교회는 베르다이에프 사상을 바탕으로 교회를 개혁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가 말한 상상력에 기반한 최소한의 물질 운동, 심플리시티(simplicity)라는 가치를 통해서 말이다. 오늘날 환경론자들이 21세기 화두로 심플리시티, 단순성을 들고 있다. 베르다이에프는 100년 전에 이미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 <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동연)에 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개신교에 대한 처방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고독·저항·상상을 개신교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키에르케고르(Soe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의 핵심 개념이 고독이고,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핵심 개념이 저항이고, 베르다이에프의 핵심 개념이 상상이다. 이신 박사가 고독과 저항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와 본회퍼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그것을 발전시켜서 고독과 저항과 상상이라고 확대한 것이다. '고독하라, 저항하라, 상상하라'는 말을 쓰면서, 베르다이에프와 이신 박사의 삶을 함께 고려했다. 이 세 개념이야말로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3개의 '오직'(Only)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자 인문학적 지평 확대라 생각한다.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누구나 자기 길을 가기에 사람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자기보다 더 낫거나 좋아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자기 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아무리 객관적으로 더 낫고 좋아 보여도 자기 길에 떳떳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고독한 사람이다. 자기 길에 자신이 없을 때 자기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움츠러들고 왜소해지고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고독은 '열려진 감정'이고, 외로움은 '닫혀진 감정'이라 한다. 우리 시대 종교인들은 외롭지, 고독하지 않다. 오늘의 교회는 사람들에게 고독을 가르치지 않는다. 사람들을 떼거리 문화에 집어넣어 버리고 만다. 오직 믿음은 고독과 유관하다.

저항은 본회퍼의 핵심 개념이다. 이는 자기 길을 옳게 갈 때, 즉 고독하게 될 때 가능하다. 저항은 고독의 외적 표현이다. 떼거리 집단, 끼리끼리 문화 안에 있으면 저항하지 못한다. 저항은 곧 하나님나라와 연결된다. 하나님나라는 '체제 밖의 사유'인 탓이다. 체제 안에서는 도무지 꿈꿀 수 없는 이야기, 그것이 하나님나라 사유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그래서 체제 안에서는 저항적인 운동일 수밖에 없다.

고독하면 저항하게 된다. 저항할 때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환상이 필요하고 그 환상이 저항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고독, 저항, 상상은 함께 엮여져 있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를 고독, 저항, 상상이라는 말로 바꿔도 무방하다.

열려 있는 고독, 이것은 오직 믿음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이다. 우리들에게 이 세계는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있지 않은가.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은총이다. 자신들이 만들지 않았으나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은총이다. 그래서 오직 은총이라는 말은 저항으로 이어진다.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의에 사로잡히면 이 세상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상상은 성서와 연결된다. 성서야말로 '상상력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이는 문자주의, 근본주의로부터 벗어날 때 가능할 수 있다.

3개의 '오직'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의 기독교 교리가 오늘 우리에게는 달리 해석되면 좋겠다 싶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로 돌아가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루터의 신학을 아시아적 시각에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성서를 옳게 해석하는 일과 이 고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실 종교개혁 500주년이지만 개신교는 달라질 기미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다수는 아니지만 올해를 기해 여기저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하는 절박한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종교개혁도 루터 이전의 1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수많은 좌절된 경험 속에서 일어났다. 가나안 교인 200만 시대가 됐고, 대형 교회는 앞으로 더 많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더 큰 도전, 좌절이 필연적이다. 한번 크게 무너져 내려야만 한다. 죽어야 사는 것이 기독교 아니던가.

교회가 지금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한다. 지금은 알갱이를 가려 낼 수 없을 만큼 쭉정이가 혼재해 있다. 더 많은 교회가 주저앉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것은 아니다'라는 흐름이 아래에서부터 절박하게 올라와야만 한다. 10년 내의 일일 수도 있겠고 20년 걸릴 수도 있겠으나, 이런 과정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지금도 500주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 때문인지, '이것은 아니다'는 의식들이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개혁 운동이 확산될 여지가 생겨나는 중이다.

이 교수는 더 많은 교회가 주저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성서를 '상상력의 보고'라고 말했다. 성서를 어떤 책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지론은 성서를 보려면 세 개의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 내가 성서를 읽는 게 아니라 성서가 내 삶을 읽는다는 고백이다. 내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 같지만 안식일이 내 삶을 지켜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성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의 눈, 신앙의 눈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성서는 문학책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우선적으로 믿음의 책이다. 내 삶을 읽어 주는 책이다. 그래서 영적인 책이고, 본회퍼 말로 하면 '동시성의 책'이다. 성서와 내 삶의 동시성,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영성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성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의심의 눈'을 요구한다. 의심의 눈이 없으면 성서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끊임없이 의심의 눈으로 성서를 읽어야 한다. 의심의 눈이 없으면 성서는 우리에게 떡이 아닌 돌덩이를 던질 수 있다. 성서 어느 한 구절에 무슨 말이 있다고, 그 구절로 우리 시대의 모든 문제를 재단하려 하면 안 된다. 성서 역시 시대의 산물이고 시대적 한계를 지녔다. 그렇기에 성서 역시도 이데올로기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비평법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부정하는 교회는 이데올로기의 온상이겠다.

아시아에서 신학하는 우리는 이 두 가지 눈만으로도 부족하다. 성서가 상상력의 보고가 되려면 '자기 발견의 눈'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 세계관의 한계로 성서에 없는 이야기를 다른 종교 경전에서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눈을 지녔던 대표적인 사람이 간디다. 간디는 힌두교에 절망했던 사람이다. 그는 영국에 유학을 가서 성서 속 산상수훈을 알게 된 뒤 기독교에 심취하게 된다. 간디는 이후 그 생각으로 자신의 경전을 다시 들여다봤고 거기서 비폭력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웃 종교를 통해 자기 종교를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이다. 그것을 자기 발견의 눈이라고 한다. "자기 종교만 알면, 자기 종교도 모른다"는 종교학적 공리가 있다. 자기 종교의 세계관적 한계를 벗기 위해서라도 자기 발견의 눈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관의 핵심 자연 풍토에 따라서 인간의 자기 이해가 달라진다. 인간 이해 방식 차이에서 각기 다른 종교적 표상이 나온다.

기독교도 특정 세계관에서 태동했기에 기독교인은 자신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길을 배워야 한다. 다른 세계관에서 생겨난 종교를 통해 기독교 자체가 풍요롭게 되기 때문에 성서를 '상상력의 보고'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감신대의 토착화 신학 전통은 이 점을 중시해 왔다.

신앙인에게는 믿음의 눈만 있어도 되지만, 믿음의 눈을 옳게 가르쳐야 하는 신학자와 목사에게는 의심의 눈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서양의 목사가 아니라 한국의 목사이기에 자기 발견의 눈 역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상상력의 보고로서 성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 눈을 요구한다.

- '길 위의 신학자'라고도 불린다. 그간 행보를 보면, 세월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듯하다.

세월호가 내 신학과 삶에 큰 변화를 줬다. 비교적 일찍 교수가 됐기 때문에 후학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같이 근무했던 송순재 교수와 오래전부터 "정년 다 채우지 말고 은퇴하자"고 말하고는 했었다. 그래야 어렵게 공부하는 후배들 중 몇 명이라도 교수로 들어올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다. 우리 학생들 역시 졸업과 함께 대개 1,500~2,000만 원 빚을 지고 있는 것도 어느 순간 고민이 되었다. '학생들 빚을 가지고 교수 봉급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교수 생활하는 것이 좌불안석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마침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이때 사직의 기미를 알아챈 총학생회가 전교생 800명 중 650명의 서명을 받아 나의 퇴직을 막고자 했다. "지금 학교를 떠나면 세월호 선장과 똑같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다른 것들은 다 뿌리치고 이겨 냈는데, 제자들로부터 이런 말은 들을 수 없다 여겼다. 마음을 접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얼마 후 감신대 학생들이 세월호 관련 현수막을 들고 세종대왕상에 올라가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건이 터졌다.

어떤 예술가들은 이 사건을 그 해 가장 멋진 퍼포먼스로 뽑았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일파만파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세종대왕상에 올라간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교회에서 "빨갱이 자식 키웠다", "목회는 할 수 있겠나" 하는 말이 나왔다. 목회하고 있는, 이들 부모에게까지 어려움이 발생했다. 세종대왕상에 오른 학생들 중 다수가 목회를 그만두려 했다. 공무원 시험이나 부동산 시험을 준비했던 아이도 있었다. 학교에 있겠다고 다시 마음을 모으면서 저들을 지켜 주는 선생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행위가 감신대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종대왕상에 올라가 퍼포먼스를 벌인 감신대 학생들 사진이 한쪽 창문에 붙어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어느 날 세월호 가족 박은희 전도사가 있는 안산화정교회 박인환 목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도무지 설교 못 하겠으니, 와서 설교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 이은선 교수와 함께 설교하러 갔다. 아내는 1부, 나는 2부 설교자로 강단에 섰다. 설교를 끝내고 박은희 전도사 부부를 만났는데, 그들의 말을 직접 듣는 순간 거꾸러지는 것을 경험했다. 사실 설교에서는 의례적인 말이 많았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 더 느꼈을 뿐이지, 세월호 참사를 온전히 몰랐다. 그런데 직접 면전에서 세월호 가족에게 세월호 소식을 달리 접하며 피가 역류하는 고통을 느꼈다.

다행히 집과 광화문이 가까워서, 세월호 광장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곳에 들러서 글을 쓰는 것하고 들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 정말 많이 다름을 느꼈다. 광화문광장에 들르지 않고 글을 쓰면 글이 거짓이 되는 느낌이었다. 오며 가며 매번 들르고, 신학자끼리 모여 성명서를 만들어 보고 세월호 관련 책도 엮었다. 거리, 광장에서 세월호 설교를 하는 등 꾸준히 마음을 보탰다.

독일에 아우슈비츠가 있다면, 한국에 세월호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우슈비츠 당시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유대인은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말을 인용해 유대인을 학살했다. 유대인 학살에 기독교가 크게 공헌하고 동조한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기독교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기독론 명제 10개가 발표됐는데, 그 첫 번째 명제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학살했으나 정작 죽은 것은 기독교다"이다. 기독교 죽음 이후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1940),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1949~),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 류의 유대적 사유가 신학의 새로운 근거이자 토대로 많이 언급됐다.

정부는 세월호를 잊으라 했고, 교회는 아이들 천국 갔으니까 됐다고 했다. 세월호 가족 중 교인들은 이 과정에서 다 교회로부터 밀려났고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개신교 교회들의 태도를 보며 개신교가 완전히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형 교회들을 보며 더 이상 개신교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수많은 작은 교회가 이들의 곁이 되었고, 의지처를 만들어 주었다. 작은 교회가 희망인 이유를 확실하게 발견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그 주간에 부활주일(4월 20일)이 있었다. 나도 세월호를 주제로 설교했다. 학생들에게 부활절 설교에 세월호를 다뤘던 교회를 찾아보라고 했다. 1,500교회를 조사했는데, 세월호를 언급하며 부활절 예배를 했던 교회가 20교회도 안 나오더라. 모두 통상적인 부활절 설교를 했다. 세월호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나왔다. 아이들이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7시간 동안 지켜봤으면서 어떻게 통상적인 부활절 설교만 전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세월호 이후' 신학자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주 심각하게 질문하게 됐고, 더 이상 이렇게 자기 세계에 갇힌 언어로 글만 쓰고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이 당시 학교 문제와 연관돼 더욱 급진적으로 표현되었다. 학교를 파행으로 이끄는 이사진을 향해 마지막 수단으로 다시 퇴직 카드를 내걸고 싸워야만 했다. 퇴직을 접고 다시 대학으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정년까지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어긴 것이다.

세월호 문제를 기점으로 학교에 돌아왔으나 다시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말에 힘이 있으려면 말에 거짓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대학을 떠나면서 나는 "이제 세상이 나에게 교회가 됐다"고 말했다. 학교 밖이 진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결국 학교를 떠날 수 있도록 나를 추동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종교개혁 500주년과 관련해 책을 쓰면서 발터 벤야민의 생각을 많이 빌려 왔다. 그를 단순하게 인용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시아적으로 재의미화하는 작업이다. 세월호 때문에 '기억'이라는 말이 중요해졌던 것이다. 벤야민은 '기억' 문제를 많이 다뤘다. 벤야민은 애도적인 기억을 '회억(Eingedenken)'이라고 말했다.

서구 역사는 자꾸 미래로만 나아가려 한다. 진보에 대한 신앙 탓이다. 하지만 벤야민은 실패한 과거를 구원하지 않는 한 미래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실패한 과거를 구원하는 것이 벤야민의 신학과 철학의 목표였다. 우리 과거에 얼마나 실패하고 좌절한 역사가 많나. 과거를 구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말에 마음을 빼앗겼다. 벤야민은 결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철저하게 단절하려 한 것이다.

내게는 벤야민의 생각이 세월호 문제와 오버랩됐다. 진실을 밝히지 않는 한, 우리는 미래로 한 치도 나갈 수 없다. 실패한 과거를 구원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를 지나간 것으로만 여겨 왔다. 그래서 과거를 구원한다는 말이 아주 신선했다. 과거를 구원해야 현재도 구원하고, 그래야 미래도 있는 법이다. 그것이 없는 미래는 진짜 미래가 아니라는 것이 벤야민의 생각이다. 실패한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세월호에 대한 진실을 온전히 밝혀야만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억을 하면서 살아간다. 애도적인 기억을 한다는 것은 바위에 조그마한 틈바귀를 만드는 것이다. 그 틈바귀로 메시아적 사건이 개입해 들어온다. 개입해 들어오면서 난공불락의 실체인 그 바위를 부술 수 있다. 세월호 문제를 겪으면서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 사유를 제공했다.

- 교회에 독서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아내와 늘 하는 말이다. 사람은 책만 옳게 제때 읽으면 학교에 안 가도 된다. 책을 읽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잃으면 교회도 무익할 수 있다. 믿음도 책과 함께한다. 책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다. 책값이 비싸다는 말은 내게 당치 않다. 1만 원이나 2만 원을 내고 한 사람이 긴 세월 연구한 결과물을 섭취할 수 있으니 이것만큼 복된 일이 있을까.

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해서 소위 '이후(以後) 교회'를 생각하고 있다. '이후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우선 책을 많이 읽는 교회여야 할 것이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교회다. 지금도 그런 교회가 있다. 통상적으로 교회에서는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질문도 못 하게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예배 이상으로 중요한 시대가 됐다.

과학 분야의 새로운 책, 이웃 종교들에 대한 책, 그리고 역사 분야 책 등 다방면으로 읽어야 한다. 특정 분야 좋은 책을 정하고 프로그램화해서 정기적으로 같이 읽을 수 있게 한다면 교회는 달라질 수 있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소화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될 때 교회 안에 질문이 생긴다. 그러면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목사는 더 노력하게 된다. 질문이 허락되려면 함께 책을 읽어야 하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목사가 더 노력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좋겠다.(끝)

※ 인터뷰에 나온 도서 목록

이정배 교수가 쓴 책

1. <한국적 생명신학> / 이정배 지음 / 감신 펴냄
2. <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신학> / 이정배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3.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근거한 기독교 자연신학> / 이정배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4. <토착화와 세계화: 한국적 신학의 두 과제> / 이정배 지음 / 한들출판사 펴냄
5.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다석신학의 얼과 틀 그리고 쓰임> / 이정배 지음 / 동연 펴냄
6. <생태 영성과 기독교의 재주체화> / 이정배 지음 / 동연 펴냄
7. <빈탕한데 맞혀놀이: 다석으로 세상을 읽다> / 이정배 지음 / 동연 펴냄
8. <이정배의 생명과 종교 이야기> / 이정배 지음 / 모시는사람들 펴냄
9. <이웃 종교인들을 위한 한 신학자의 기독교 이야기> / 이정배 지음 / 동연 펴냄
10. <신학, 타자의 텍스트를 읽다> / 이정배 지음 / 모시는사람들 펴냄
11. <차라리 한 마리 길 잃은 양이 되라> / 이정배 지음 / 동연 펴냄
12. <그래 결국 한 사람이다> / 이정배 지음 / 동연 펴냄
외 다수

이정배 교수가 언급한 책

1. <천국의 열쇠> / 조지프 크로닌 지음 / 이승우 옮김 / 현암사 펴냄
2. <철학적 신앙> / 칼 야스퍼스 지음 / 신옥희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펴냄
3. <시간이 촉박하다> / 카를 바이체커 지음 / 이정배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4. <신과 자연: 기독교와 과학 그 만남의 역사> / 데이비드 린드버그 지음 / 이정배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펴냄
5. <엔트로피> / 제레미 리프킨 지음 /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펴냄
6. <생명권 정치학> / 제레피 리프킨 지음 / 이정배 옮김 / 대화출판사 펴냄
7. <노예냐 자유냐> / 니콜라이 베르다이에프 지음 / 이신 옮김 / 늘봄 펴냄
8.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발터 벤야민 지음 / 최성만 옮김 / 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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