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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기 위한 우리 시대의 조건

[서평] 미로슬라브 볼프 <인간의 번영>(IVP)

이원석   기사승인 2017.07.19  17: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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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외부에서 요구하는 종교 관용

독일의 계몽주의자 고트홀트 에프레임 레싱(Gotthold E. Lessing, 1729~1781)이 <현자 나탄>(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세 반지 우화를 통해 서구가 조우하던 세 종교(헤브라이즘 종교) 간의 관용을 촉구한다. 제3차 십자군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나탄과 이슬람의 살라딘, 그리고 기독교의 기사의 대화 가운데 등장한 이야기로, 참된 종교에 대한 살라딘의 질문에 나탄이 답변으로 제시한 것이다. 세 형제가 각기 물려받은 반지 가운데 무엇이 신과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반지인지 알 수가 없어서 재판관에게 찾아간다. 그러자 재판관은 선한 삶을 통해 신과 이웃에게 사랑을 받는 것으로 자신의 반지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임을 증명하라고 판결한다. 그러니까 어느 종교가 참된 진리인지 보여 주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신도의 삶인 셈이다.

레싱이 종교 연대와 이를 통한 인류 평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 1779년인데, 아직 그 모색의 결실이 미비하다. 그동안 각 종교인들은 마치 자기들의 반지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처신했다. 기독교는 유대교를 박해했고, 유대교는 이슬람을 박해하고, 이슬람은 서구 전체에 복수하고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다시 이슬람을 타자화, 괴물화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 1947~)가 <신의 반지>(돋을새김)를 통해서 이를 새롭게 반복하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레싱의 <현자 나탄>과 마찬가지로 종교 외부적 시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종교인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온다(애초에 번역이 어색해서 잘 읽히지 않는다). 이는 물론 이른바 세계종교의 자기중심적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인간의 번영 - 지구화 시대, 진정한 번영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묻다> /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 양혜원 옮김 / IVP 펴냄 / 340쪽 / 1만 7,000원. 사진 제공 IVP

종교 내부에서 출발하는 종교 대화

반면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 1928~)의 <세계 윤리 구상>(분도출판사)은 종교 내부적 시각에서 출발한다. 종교 대화가 없다면 종교 평화가 없고, 종교 평화가 없다면 세계 평화도 없다는 그의 명제는 오늘날의 정치적, 종교적 맥락에서 매우 유효한 접근이다. 그런 전제하에서 기초 연구가 없다면 종교 대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구의 3대 종교에 대한 연구에 뛰어들었고, 그 결실은 <그리스도교>(분도출판사), <유대교>·<이슬람>(시와진실)으로 구성된 '우리 시대의 종교 상황' 3부작으로 종합되었다(<그리스도교>가 1,070쪽, <유대교>가 1,056쪽, <이슬람>이 1,264쪽으로 도합 3,390쪽에 달한다). 또한 중국 종교(실은 동아시아 종교)도 연구하여 줄리아 칭(Julia Ching, 1934~)과의 공저로 <중국 종교와 그리스도교>(분도출판사)를 출간한 바 있다.

한스 큉이 종교 간 대화에 나서는 가톨릭 신학자를 대표한다면, 개신교 신학자 가운데에서는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1956~)를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오순절 신앙으로 양육받고 미국 복음주의권(풀러신학교)을 거쳐 진보적 신학자[튀빙겐대학교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의 지도로 학위를 마쳤기에 기독교 안에서도 폭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이미 <배제와 포용>(IVP)을 통해서 기독교의 공공성(公共性)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볼프는 <광장에 선 기독교>(IVP)를 통해 공적 신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행동하는 기독교>(IVP)에서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또한 <알라>(IVP)를 통해 민감한 주제에 대한 도발적 주장을 통해서 종교 간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의 번영>(IVP)을 통해서 종교 간 대화와 연대를 위한 매뉴얼을 제공한다.

참된 번영이란 무엇인가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아이폰 하나를 만드는 데는 전문화된 산업의 복합적인 지구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가 필요하다." (60~61쪽)

<인간의 번영>이 보여 주는 바, 미로슬라브 볼프가 종교 대화에 임하는 현실적 맥락은 세계화(지구화)이다.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 1911~1980)이 1964년에 <미디어의 이해>(민음사)를 통해서 세계가 하나의 촌락(global village)으로 묶이게 된 상황을 주목한 이래로 50여 년이 지났다. 이제 세계화는 마치 중력처럼 우리의 운명이 되었다. 따라서 세계화의 도저(到底)한 기세를 중단시킬 수는 없고, 그 물줄기의 방향에 개입할 수 있을 뿐이다. 볼프가 그리는 방향은 인류의 풍요로움(flourishing)이다. 우리의 사고 체계 안에서 풍요나 번영이라는 어휘가 작동하는 영역은 주로 물질적 차원이지만[가령 <인간의 번영>이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우리의 뇌리에는 번영 신학(Prosperity Theology)이 떠오르기 십상이다], 볼프가 추구하는 풍요로움은 초월적 영역을 아우르는 넓은 개념이다.

"이 책의 핵심 논제는 예수가 사탄의 첫 유혹을 물리치면서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다. (중략) 모든 종교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인) 초월적 영역이 (빵이라고 하는) 범속의 영역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하며, 우리가 초월적 영역의 우선성을 알아보고 그 영역을 우리 삶의 구조에 통합시킬 때만 범속의 영역에서 진정으로 번영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4쪽)

빵으로만 살지 말라는 것이 볼프가 생각하는 세계종교의 일관된 명령이다. 많건 적건, 빵은 인간에게 의미와 방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 종교별로 부여하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세계종교는 빵과 말씀의 결합을 주장한다. 세속적 차원의 쾌락("일상적 삶에 속한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주는 즐거움", 124쪽)과 초월적 차원의 의미를 결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의미와 쾌락을 연합시키시고 이러한 연합은 기쁨이라는 경험을 가져다준다."(246쪽) 종교가 제공해 준 의미라는 렌즈(거대 서사로서의 세계관)로 일상을 새롭게 살게 해 준다는 뜻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 세상을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즐기도록 해준다."(247쪽) 세상과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향유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미로슬라브 볼프는 "잘 사는 인생, 잘 풀리는 인생, 기분 좋은 인생"(17쪽)이라고 하는 삼중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한다(데이비드 브룩스와의 대담에서는 로마서 14장 17절에 등장하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요약한다). 이는 세계종교가 약속하는 좋은 삶의 핵심이다. "잘 사는 인생"을 뒤에서는 "잘 이끄는 인생"(108쪽)으로 옮겼는데, 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이끌리는 삶'(life being led well),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삶이다. 혹자는 이런 순종하는 삶을 첫 단계로 설정하고 전체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계로 볼 수도 있다. 즉 예수 신경(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과 같은 위대한 핵심 교훈을 잘 따르면, 건강이나 재정 등 여러 면으로 두루두루 복을 받고, 결국 그로 인해 기쁘고 행복하게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볼프는 이 세 항목을 순차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가치상 우선순위로 파악한다.

"세계종교에서는 인생을 잘 이끄는 것이 잘 풀리는 인생과 기분 좋은 인생보다 우선한다. 인생을 잘 이끄는 것이 잘 풀리는 인생과 기분 좋은 인생을 규정하고 유지하며, 갈등이 있을 경우 잘 이끄는 인생이 잘 풀리는 인생과 기분 좋은 인생보다 우선한다." (109쪽)

세계화 시대의 종교 대화를 위한 초대장

이러한 인용은 번영(풍요)의 의미를 빵의(물질적) 차원에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 종교 전통의 위대한 가르침은 신자유주의가 조장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시장 주도 세계화)에 대한 비판이다. 실제로 세계화(지구화)를 주도하는 시장의 영은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그게 세계종교마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종교의 현실은 그 심오한 가르침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 그러나 공존을 위해서는 세계화와 세계종교가 서로 도와야 한다. 한 면으로 "지구화는 세계종교가 '정치적 종교'로 변하고자 하는 유혹을 거부하게 도와준다."(124쪽) 다른 한 면으로 세계종교는 지금의 세계화가 추구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 즉 "잘 풀리는 인생에 대한 추구를 번영의 삶이라는 더 넓은 틀에 자리매김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85쪽) 이런 맥락에서 볼프는 종교와 풍요로운 삶을 중첩시킨다.

"번영의 삶이란 잘 풀리는 인생이나 기분 좋은 인생보다 잘 사는 인생이 우선하는 삶이다. 종교는 건강한 만족, 심지어 기쁨을 느끼게 해 주고 지구적 연대에 헌신하도록 하며, 그럼으로써 더 나은 지구적 정의를 실천하게 해 줄 수 있다." (86쪽)

이러한 맥락하에서 지구적으로 연대하고, 지구적으로 정의를 실천하고자 볼프는 종교 간 대화를 제안한다. 도발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제안 자체는 소박하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지구화는 세계종교가 줄 수 있는 번영의 비전을 필요로 하고, 지구화와 종교, 그리고 종교들끼리도 서로 격렬하게 충돌할 필요가 없으며, 건설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서로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지니고 있다."(251쪽) 그렇기에 어떤 독자들은 그의 전개 방식과 그 내용에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의 기반에는 볼프가 나고 자란 발칸반도에서의 인종청소라 불리는 대학살이 자리한다. 종교적 공공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렇듯 학자로서의 관념적 흥미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고민에 기인한다. 특히 4장("종교적 배타주의와 정치적 다원주의")의 주장은 그런 고민을 암시하고 있다.

"이번 장에서 내가 주장하고자 한 것은 종교적 배타주의자들이 반드시 정치적 배타주의자일 필요가 없으며, 정치적 다원주의자가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다원주의자인 종교적 배타주의자들은 사실상 지구화된 세계에 유익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번 장을 마무리하려 한다." (200쪽)

개인적 동기로든, 거시적 맥락으로든 <인간의 번영>은 세계종교 간의 대화와 연대를 위한 진지한 초대장이다. 동시에 그 토대를 닦기 위한 연구의 개요이기도 하다. "이 주장과 이 주장이 지지하는 좋은 인생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내 미래 작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 중요한 탐구에 다른 사람들도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개요를 담은 이 책을 내어놓는다."(251쪽) 하지만 이를 위해 그가 본문과 71쪽에 달하는 미주를 통해 전개하는 방대한 논의는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가 간명하게 압축해 놓은 지식과 이를 기초로 한 논의들은 지구화 시대에 폭증하는 정치적, 종교적 갈등과 경제적 불평등의 미로를 뚫고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대화하고, 나아가 연대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인간의 번영>의 진지한 독서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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