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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개신교는 왜 성조기를 흔들게 됐을까

배덕만 교수 "한국교회 역사에는 늘 미국이 있었다"

최유리   기사승인 2017.07.19  15: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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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2017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 날, 서울시청 건너편에는 반동성애를 외치는 개신교인들이 모여 예배하고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보수 개신교인들은 행진을 마치며, 무지개색 현수막이 붙어 있는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미국과 우리는 혈맹 관계이다', '120년 전 미국 선교사로부터 처음 복음을 받았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참가자들은 "미국은 동성애를 부추기지 말아 달라"며 무지개색 현수막을 떼어 달라고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기도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지난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보수 단체들은 집회할 때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들었다. 그리고 친박 집회에는 개신교인이 많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7월 18일 새물결아카데미에서 '기독교 우파의 역사'를 주제로 강의한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는 미국 선교사로부터 시작한 한국 기독교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보수 개신교인 집회 현장에는 종종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등장한다. 사진은 올해 열린 동성애 퀴어 축제 반대 국민대회 현장. 뉴스앤조이 최유리

조선에 찾아온 미국 선교사
복음 전파 60년 만에 개신교 대통령
미국 배경으로 자라난 한국교회

배덕만 교수는 조선에 서양인 선교사가 들어왔을 때, 캐나다·호주인도 있었지만 미국 선교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설명했다. 19세기 말 선교에 헌신했던 사람들은 미국 개신교 중에서도 보수적인 부류로, 당시 미국에서 성행한 금주법 운동에도 깊이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했고,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으로 큰 성과를 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서북청년단이 해방 후 한국으로 내려오면서 한국교회의 기반을 만들기도 했다.

배덕만 교수는 한국교회에 만연한 '정치 참여 불가령'도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1901년 일본이 조선을 통치할 때, 조선예수교장로교공의회가 '교회의 정부 사이에 교제할 몇 가지 조건'이라는 결의안을 냈다. 교회는 나랏일을 하는 곳이 아니니, 정부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때부터 교회가 정치 문제에 선을 긋게 됐다.

나라가 멸망해 가도 교회는 오히려 부흥을 맛보았다. 의병을 조직하거나 저항의 의미로 자결을 택하는 기독교인도 있었지만, 한국교회 지도자층은 조직적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이들은 원산 기도 모임, 평양 대부흥 운동, 100만 인 구령 운동 등 철저히 교회 테두리 안에만 머물렀다.

미국 개신교는 한국교회에 삶의 방식을 정해 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전쟁 중에 한국을 보호해 주고, 물자를 공급해 주고, 막강한 힘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결과 1945년 해방된 후 기독교인들이 사회 핵심 인사로 들어오게 된다. 미국이 뒤를 봐 주면서 선교사들 유입량도 늘었고, 그중에서는 미군정 안에 들어가 한국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선교사도 있었다.

게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감리교인 이승만이 첫 대통령이 되자, 한국교회는 미국과 더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게 됐다. 배덕만 교수는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지 60년 만에 기독교 신자가 대통령이 됐고, 부통령은 목사가 됐다. 신사참배하던 굴욕적인 시기를 지나 제1공화국이 만들어질 때까지, 한국 기독교는 인구의 5%도 되지 않았지만 정치인, 학자 등 오피니언리더에 대거 포진해 있었다. 장관급 40%가 기독교인이었다. 미국이 원조 물자를 보내면 교회가 배급자 역할을 맡았다. 한국에서 교회는 사회적·정치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졌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교회는 그 특권을 누리게 됐다. 그때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되기도 했다. 기독교가 국교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 때도 유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기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자기 정권을 유지했다. 한국은 1970년대 초반 유신 정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까지 사회적 암흑기였다. 사회 분위기와 달리, 교회는 정부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 갔다. 몇 사람만 모여도 잡아가던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와서 한국 전도 대회를 열었고 100만 명이 모였다. 예배 때 경찰 군악대가 와서 연주했다. 당시 통행 금지령이 있었지만 대회 참가자들에게는 통행 금지령이 해제됐다. CCC 설립자 고 김준곤 목사가 준비한 '엑스플로74'에서도 10일간 100만 명가량이 모였다.

민주주의가 가장 어두웠던 시절, 개신교는 5%에서 20%로 성장했고 한국의 메인 종교로 급부상했다. 배덕만 교수는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인재들이 미국 유학을 갔다 왔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 사회 주류 목소리는 한국교회 주류 목소리와 유사하다. 미국처럼 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추종한다. 어느샌가부터 한국 보수 개신교는 성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미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고 했다.

배덕만 교수는 새물결아카데미에서 '기독교 우파'에 대해 강의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한기총으로 결집한 보수 개신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반발

이야기는 한국 보수 개신교의 정치 활동으로 넘어갔다. 보수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건,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전신 한국기독교총연맹으로 결집하면서부터다. 이들이 생기기 1년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가 의미 있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선언'에서 한국의 분단 현실에는 한국교회 책임도 있었고, 이제 기독교가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힘을 쓰자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전쟁 후 반공 사상을 가지게 된 월남 개신교인과 남한의 보수 개신교인이 반발하면서 한국기독교총연맹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보수 개신교인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사상과 반대되는 정책을 펼 때 거침없이 행동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이들은 본격적으로 힘을 행사했다. 두 정권이 북한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때마다 각종 시국 대회와 기도회를 열었다. 특히 사립학교의 80%가 기독교 학교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학법을 고치려고 하자,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던 목사들이 머리를 삭발하고 광장으로 모였다. 합리적 보수를 주창하던 이들은 뉴라이트 운동에도 앞장섰다. 정교분리를 외치던 보수 개신교가 직접 기독 정당을 만들어 후보를 내고, 장로 대통령을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미국 소 광우병·4대강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든 단체가 이명박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기총 만이 이명박을 지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도 태극기를 들던 사람 중 대다수가 교회 장로·권사·집사였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가 유지되면 정권과 가깝게 지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정치적으로 행동한다"고 평가했다.

배덕만 교수는 미국 보수 개신교의 특징도 설명했다. 이들은 진화론을 가르치는 교육을 거부한다. 공립학교에서 기독교인들이 기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다. 공공장소에는 십계명판을 게시해 달라고 요구한다. 친자본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다. 낙태와 피임, 포르노, 동성애를 반대하고 혼전 순결을 강조한다. 한국 개신교와 유사한 점이 많다.

배덕만 교수는 미국 보수 개신교와 닮아 있는 한국 보수 개신교가 '개독'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그간 한국교회가 미국의 지지를 얻어 가장 강력한 종교가 되었지만, 권력 획득이 한국교회에 정말 좋은 일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물론 한국교회가 반공 사상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점, 친미·친자본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이해하지만, 이제는 그 올무에서 벗어나는 게 한국 개신교의 과제라고 했다.

배덕만 교수는 한국교회 역사에 끼친 미국 개신교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이야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보수 개신교가 보는 성경과
우리가 보는 성경이 다른가

배덕만 교수의 강의 후 참석자들은 보수 개신교에 대해 질문했다. 한 참가자는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구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보수 개신교는 성경을 근거로 '친자본주의'를 수호할 텐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배덕만 교수는 "성경에는 자본주의나 사유재산을 옹호할 만한 구절이 있다. 이는 평화와 전쟁, 노예 문제를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가 평화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전쟁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해진 답은 없다. 스스로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기독교 우파를 생각해 보면, 성경이 그렇게 말했다기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텍스트를 갖고 온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성경을 비평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을 보면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이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이제 한국 개신교의 상황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물었다. 배덕만 교수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조지 부시 때, 보수 개신교들이 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부시가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이라크를 침공했고 사람들은 여기에 환멸을 느꼈다. 그 다음 선거에서 오바마로 갈아탔다. 우리도 유사하다. 지금까지 보수를 믿고 지지했는데 그 결과 국정 농단이 벌어졌고, 이번 선거에서 사상적 전향을 한 사람이 많았다. 이제 맹목적으로 수구 세력의 입장을 들어주는 일은 많지 않을 거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념 문제에서 발생하는 갈등보다 세대 갈등이 더 깊다. 다행인 것은 젊은 세대 중에서는 맹목적으로 수구를 지지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 점에서 낙관적이다. 우려되는 점은 한국 사회는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교회가 뒤쫓아 가지 않으면 뒤쳐지고 멸종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계속 사유하고 변화해 간다면 흥미롭고 멋있는 교회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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