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로교회에는 '위임목사' 제도가 있다. 장로교회에서 목사는 노회 소속이기 때문에, 위임목사는 개교회의 청빙으로 노회로부터 위임을 받은 목사라는 의미다. 교단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담임목사라고 부르는 대부분 목사의 정식 명칭은 위임목사다.

위임목사가 되면 70세 정년까지 시무할 수 있도록 임기를 보장받는다. 교회가 위임목사를 청빙하는 것은 기업이 CEO를 데려오는 것과 다르다. 위임목사와 교회를 결혼 관계에 빗대는 경우가 많다. 서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인들이 위임목사를 해임할 수 있는 방법은 교단법상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반대로 위임목사의 경우 교회를 떠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담임목사 선출과 관련된 청빙 제도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폐쇄적 문화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위임받은 목사도 다른 교회로 청빙 제의를 받을 수 있다. 청빙 제의를 받은 목사와 청빙한 교회는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청빙 과정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교인들은 배제된다.

<뉴스앤조이>는 변화하는 시대, 한국교회가 생각해 보아야 할 청빙 제도와 위임목사 제도를 살핀다. 현재 시행되는 청빙 제도와 위임목사 제도의 맹점과 변해야 할 점은 없는지 짚어 볼 것이다. 먼저, 한국교회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새문안교회로 최근 청빙된 이상학 목사의 경우를 자세하게 살펴본다. - 기자 주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을 따라 떠납니다."

[뉴스앤조이-유영 기자] 5년 반 만에 갑자기 떠나는 담임목사 설교에 몇몇 교인은 눈물을 흘렸다. 설교 중간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교인도 눈에 띄었다. 기자 뒤에 앉은 한 교인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고 혼잣말로 탄식했다. 포항제일교회 7월 9일 주일예배는 충격과 아쉬움, 섭섭함과 배신감이 뒤섞여 있었다. 설교자는 7월 2일 새문안교회 7대 담임목사로 청빙이 결정된 포항제일교회 담임 이상학 목사였다.

7월 2일 주일예배에서 설교하는 이상학 목사. 홈페이지에는 7월 9일 설교 영상 대신 2년 전 설교 영상이 올라왔다. 포항제일교회 설교 영상 갈무리

이상학 목사의 청빙 결정은 7월 2일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교계 언론은 물론, 대형 통신사와 일간지도 이 목사의 청빙 소식을 전했다. 하나같이 "130년 전통의 한국교회 어머니 교회인 새문안교회의 이상학 목사 청빙 결정" 등 전통 있는 교회에 새 담임목사가 청빙되었다는 식의 보도였다.

언론 보도로 담임목사 청빙 소식을 들은 포항제일교회 교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상학 목사가 다른 교회로 떠난다는 소식은커녕 사임 이야기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교인은 7월 4일 <뉴스앤조이>로 전화를 걸어 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한참을 토로했다. 그는 "이상학 목사는 평소 보수적인 포항 분위기에서 소신껏 설교하던 사람이었다. 물량주의·성공주의를 비판하던 그가 교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 큰 교회로 간다는 데서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사명' 따라 떠난다는 목사
하나님 마음 잘 해석하고
'사자의 심장' 얻었지만
교인들은 철저히 배제

기자가 포항제일교회에서 만난 교인들은 대부분 7월 9일 예배 때 소식을 접했다고 말했다. 주보에도 이상학 목사 사임 소식은 올라오지 않았다. 이 목사의 사임은 설교를 통해 전해졌다.

포항제일교회는 다음 주 설교를 미리 주보에 알린다. 그런데 7월 9일 설교는 지난주 주보에 나간 설교와 달랐다. 그날 주보에 게재된 본문도 달랐다. 예고된 설교 본문은 요한복음이지만, 실제 설교는 사도행전 20장 21-24절로 진행했다. 이 목사는 설교를 통해 '나의 달려갈 길'에 대해 말했다. 이 목사의 설교를 요약해 보았다.

"6월 초 청빙 제의가 왔다. 새문안교회의 방향성과 내 목회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문안교회 청빙위원회가 청빙 목적을 설명하겠다고 전화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영적 전환기를 맞은 새문안교회가 찾은 가장 적합한 인물이 이상학 목사라고 여기고 제의했다고 말했다. 전통적 교회를 벗어나 변화해야 하는 때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120년 전통 포항제일교회에 처음 왔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새문안교회 담임목사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살폈다. 두려움이 생겼다. 내가 연락하며 지내는 미국의 한 영성 지도자에게 상담을 청했다. 그는 '하나님 마음을 확인하기 좋은 자세'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무엇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며, 나의 구원을 이루는 길인가 생각했다. 인간의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는 열정을 따라야 한다는 대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마음이다.

모든 경우의 장점을 떠올렸다. 포항제일교회에서는 앞으로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다. 전통 교회에서 역동성 있는 교회로 방향을 전환하던 5년 반의 노력이 열매 맺는 일만 남았다. 안정을 택한다면 이동할 필요가 없다. 새문안교회로 가면, '큰물에서 설교할 수 있고 교회 역량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죄송하지만, 교인들 생각은 안 했다. 그저 마지막 날에 이 상황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무어라 말하고, 하나님은 어떤 말을 할까 생각했다.

그러다 신학교 다닐 때 기도하던 내용이 생각났다. 한국교회가 무너져 내릴 때 벽돌 한 장이라도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후로 편안한 목회는 거부해 왔다. 새문안교회로 가면 몇 백 억 원에 달하는 건축 빚도 담임목사 몫이다. 전통적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만들고 영적 방향을 전환하려면 어려움이 클 것이다.

분별을 마치고 새문안교회 청빙이 결정되니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말씀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했다. 빚이 몇 백 억 원 있다는데 겁이 안 난다. 내 호주머니 먼저 생각하고 저금통장 먼저 생각하면 하나님 일은 할 수 없다. 하나님의 호주머니를 생각해야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결정한 사실을 미국의 영성 지도자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하나님 마음을 잘 해석했고 사자의 심장을 득했다'고 말해 주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어디에도 여러분처럼 순전하고 목사 생각해 주는 교인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한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면 떠나는 것이 목회자의 길이다. 아무것도 보증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가야 한다. 포항제일교회에 제 빈자리는 사람의 자리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소명이라는 단어로 교인들 입을 틀어막으려는 것 아니다. 인간은 배반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기를 바란다."

7월 9일 배포된 포항제일교회 소식지 <제일 물댄 동산>에 이상학 목사가 쓴 목회 칼럼. 7월 9일 설교와 비슷한 논조다. 포항제일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당회원도 몰랐던 청빙 제의
은퇴장로들 시위 계획하기도
"이런 방법밖에 없었나"

이상학 목사 설교에 '아멘'으로 답하는 교인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교인들은 대부분 이 목사 설교에 수긍했다. 예배 후 한 권사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떠나겠다는 목사를 어떻게 잡겠는가. 이렇게 떠나 너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교회 로비에서 교인들과 인사하는 이상학 목사 앞에는 아쉬운 인사를 전하는 교인들이 길게 늘어섰다. 한 부부는 "임신한 소식을 전하려고 했는데, 떠나신다니 슬프다"고 말했다.

분노하는 교인도 있었다. 한 안수집사는 기자에게 "교회 일각에서는 '먹튀'라는 평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안수집사는 "그동안 돈보다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를 만들자고 강조해 왔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은퇴장로들은 새문안교회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하겠다며 분개했다. 이상학 목사는 7월 9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응답에 대해 은퇴장로들에게 따로 설명했고, 은퇴장로들이 이해해 주어 시위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이상학 목사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해 왔다. 이 목사 주도로 포항제일교회가 펼친 생명 문화 캠패인 '돈보다 생명입니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교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문안교회 청빙 과정이 비밀리에 진행됐고, 이상학 목사도 대다수 교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청빙에 응했기 때문이다. 포항제일교회 한 권사는 "이런 방법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포항제일교회 당회도 새문안교회 당회가 후보를 결정한 후 이상학 목사 청빙 사실을 알게 됐다. 새문안교회가 이상학 목사에게 청빙을 제의한 것은 6월 첫 주다. 새문안교회 당회가 청빙 후보를 확정한 것은 6월 14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제일교회 이남오 서기장로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6월 21일 새문안교회 청빙위원회에서 연락이 왔다. 청빙과 관련해 6월 22일에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이야기할 수 있도록 당회원을 모아 달라고 했다. 나는 그날 처음 청빙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당회원 모두 당황했다. 새문안교회 장로들에게 막 뭐라고 하는 장로도 있었다. 하지만 포항에서 가장 오랜 포항제일교회를 젊은 교회로 바꾼 이상학 목사가 한국의 어머니 교회인 새문안교회를 바꿔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결정이 한국교회 발전과도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떠나기로 마음먹은 목사를 어떻게 잡겠나. 마음 편히 보내드리기로 했다. 6월 25일 주일예배 후 당회에서, 이상학 목사가 청빙에 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6월 26일에는 항존직을 모아 설명했다."

포항제일교회 당회는 7월 5일 수요일 저녁 임시당회에서 이상학 목사 사임을 결의했다. '환송 예배'는 19일 진행된다.

청빙 결정까지 '1달'
"목회자와 교인 관계보다
담임목사 채우는 게 중요한가"

새문안교회가 이상학 목사에게 청빙을 제의한 시점부터 이 목사 사임까지 걸린 기간은 6주다. 7월 2일 새문안교회 공동의회 결의로 청빙이 결정되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멀쩡히 있던 담임목사가 갑자기 떠나는 기가 막힌 상황을 겪은 포항제일교회 몇몇 교인은 현재 한국교회 청빙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목회자와 교인은 결국 관계가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상학 목사와 새문안교회가 포항제일교회에서의 목회자와 교인 관계를 무시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법에만 부합한 청빙 과정을 거쳤으니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목회자가 교회 경영자와 무에 다른가. 7월 9일 설교도 자기 합리화만 한 것 아닌가.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나 묻고 싶다."

이상학 목사는 미리 교인들에게 밝히지 않은 이유를 "하나님과 독대하는 자리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목사는 기자에게 "영성 공부를 더 하면 알겠지만, 우선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음성을 제대로 듣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몇몇 교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사례비나 여러 상황을 보고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다른 영향은 차단하고 하나님과 독대해야 한다. 그러니까 교인들에게 먼저 상황을 설명하면, 교인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받는다. 그 에너지를 끌어안고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면 영향을 받게 된다. 주님 음성을 듣고, 이후 교인들 이야기를 들을 공간을 열어두어야 한다. 교인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다면 당연히 더 머물러야 한다. 그게 지난 일주일 동안의 과정이다.

사례비나 여러 조건을 보고 떠난다는 지적은 잘못이다. 나는 포항제일교회에 올 때도 조건을 알지 못하고 왔다. 이곳에 처음 설교하러 와서 교회 규모를 알았다. 젊은 시절 김진홍 목사에게 목회를 배울 때, 목회자가 삯을 좇으면 안 된다고 배웠다. 지금 김 목사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이 말은 옳다고 생각한다. 새문안교회에 가 보아야 조건도 알 수 있다. 최저생계비를 따르는 사람이면 돈을 따라 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생활할 사례를 받는다. 그런 이유로 떠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120년 역사의 포항제일교회는 포항 지역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로 꼽힌다. 뉴스앤조이 유영

이상학 목사는 '하나님 뜻에 따라간다'는 자기 주장이 뚜렷했지만, 청빙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고 많은 교인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타까운 점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는 것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작은 교회에서 대형 교회로 청빙된 한 목사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평소 개혁적이라 평가받던 목사가 남기고 간 상처에 교인들은 더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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