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브렌든선교연구소 블로그에 실린 구균하 신부의 글(바로 가기)입니다. 허락을 받고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1. 하느님은 선교를 원하신다. 따라서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과 결합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이는 성서가 말하는 큰 주제 중 하나이다.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하느님의 구원 계획-는 창조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창세 12:3, 요한 3:17, 묵시 21:1-4). 구원은 창조의 완성, 곧 종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선취(미리 맛봄)하고 다가올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창조의 완성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하느님께 선교는 언제나 중요하다. 성부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선교하자'고 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은 분이시기에 언제나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교로 피조물인 우리를 초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선교를 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선교하지 않은 때는 없다.

그러므로 선교는 하느님에게 가장 우선적인 활동이다. 그렇기에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역시 선교를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선교는 하느님을 위한 우리의 활동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삼위일체의 친교로 모든 피조물을 초대하는 사랑의 행위이다. 따라서 선교는 우선순위를 가릴 사안이 아니며 결코 미루어져서도 안 된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은 선교에 참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말한다.

2. 하느님은 삶 안에서 공동체로 행하는 선교를 원하신다.

우리가 선교에 참여할 때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함께하신 것처럼 공동체를 이루어 선교를 한다. 부연하자면 선교는 지금 내가 속한 교회를 부흥시키거나 발전시키는 것을 넘어선다. 선교는 개교회 중심의 사고를 넘어 모든 교회가 각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기억하면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을 증거하도록 지상에 남겨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모든 활동이다. 예수께서는 성부와 늘 통교하셨고(요한 8:28), 성령을 따름으로(루가 4:1) 성자 홀로가 아니라 성삼위가 함께 구원을 이루셨다. 또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매일의 삶 안에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선교활동을 했다. 예수님은 당신의 선교 사역을 시작하시고 첫 번째 기적을 보여 주신 가나의 혼인 잔치에 제자들과 함께 참석하셨다(요한 2:2).

예수께서는 몸소 제자들에게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예수께서는 둘씩 짝지어(공동체로) 그들을 마을과 동네로, 평범한 일상적인 삶으로 파견하셨다.

초대교회들은 가정집이었다. 교회는 사람들을 이어 주는 네트워크와 사역의 중심이었다. 초대교회 공동체들은 매일의 일상 안에서 예수를 증언했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은 이 같은 초대교회의 선례를 따른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은 일상 안에서 선교하는 공동체를 드러냄으로써 초대교회가 보여 준 신앙의 모범을 현대화하여 계승·발전시킨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가득 채울 때'를 기억하는 이들이다.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께서 지상에 남겨진 당신의 몸인 그 교회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세상에 전할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완수할 능력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다(에페 1:23). 구원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완성하신 선물이기에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공동체에 참여하게 된다.

3. 새로운 표현은 예수와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는 은사를 준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에 참여토록 초대한 사람들에게 기존 교회로 초대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편하며 안전한 방법일 수 있다. 교회가 역사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든 시대, 모든 교회가 그 역할을 온전히 수행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교회는 그 자신의 사명, 즉 교회를 통해 사람들을 하느님의 구원에 참여케 함으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와 맥락에 따라 어떤 이들에게는 기존의 교회가 보여 주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표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다른 방식을 통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시공간 안에서 접근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교회를 만나고 체험하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기존의 교회와 다른 모습은 의혹과 불편함을 전해 줄 수 있다. 이런 경우 성령께서 새로운 모습의 교회에 베푸시는 은사는 새로운 공동체가 예수와 함께 하고 있음을 드러내게 한다. 처한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교회의 새로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분은 성령이시다.

동시에 새로운 표현은 성체성사를 드러낸다. 새로운 표현으로 드러난 교회는 성체처럼 쪼개져 새로운 공동체가 된다. 그 모양은 제각각일지 몰라도 모두가 한 빵에서 나누인 조각이기에 모두가 고유한 모양을 가지면서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이다. 새로운 표현은 지금 이 시대와 문화 안에서 다양성을 가진 일치를 드러내는 표상이 된다.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Real Presence)은 새로운 표현이 다양한 모습을 가짐에도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한다.

4. 새로운 표현은 선교의 발전된 형태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다른 이를 사랑하라는 계명과 복음을 전하고 세상 곳곳으로 나아가 예수를 따르는 제자를 만들라는 사명을 함께 받았다. 예수님은 사랑하라는 계명과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계명을 결합시켰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복음 말씀에 따라 가난한 이를 돌봄으로써 이를 실천했다.

새로운 표현도 이 모두를 아우른다. 새로운 표현을 하는 많은 이들이 노숙인들과 함께 일하고 기술을 전수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사랑의 봉사를 시작한다. 초대교회가 했던 것과 같이 이들은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그들을 예수의 제자로 삼는 일을 한다.

교회는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 그들의 기쁨과 행복과 평화를 누리려는 목적으로 모이지 않는다. 성체성사에서 보여 준 자신의 몸과 피를 음식으로 내어 주는 예수의 사랑을 본받아 세상에 나아가 예수처럼 사람들에게 자신을 음식으로 내어 주는 삶을 사는 이들이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봉사받는 이들, 종교적인 서비스를 받는 이들, 혹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이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이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자신을 내어 주는 섬김을 통해 구성원 개개인은 비로소 예수를 알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이 변화시킨 개인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웃과 연결된 네트워크를 보게 될 것이다.

5. 새로운 표현은 유효하다. – 수치가 말해 준다!

영국에서는 교단을 막론하고 3,500여 개의 새로운 표현이 조사되었다. 2014년에 영국 성공회의 13.5%가 이러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새로운 표현을 이끄는 리더들은 현재 구성원의 3/4이 교회 바깥에서 온 이들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표현은 교회의 선교 사명을 강화함으로써 교회의 성장을 돕는다.

구균하 / 신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브렌든선교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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