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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페미니즘 책방'이 생긴다면

[인터뷰] '달리, 봄' 책방지기 류소연·주승리 씨

최유리   기사승인 2017.07.11  15: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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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8월 7일 '페미니즘 동네 책방'이 생긴다. 책방 이름은 '달리, 봄'. 이름에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과 '지금과는 다른, 봄을 꿈꾼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다양한 페미니즘 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책방지기는 20대 후반 커플이다.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전파할 목적으로 동네 책방을 준비하고 있다. 7월 10일, 양천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책방지기 류소연 씨(29)와 주승리 씨(27)를 만났다. 두 사람이 페미니즘 전문 책방 '달리 봄'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책방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등을 들을 수 있었다.

8월 7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페미니즘 동네 책방이 생긴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페미니즘 동네 책방 '달리, 봄' 사무실에는 페미니즘, 구술사를 설명한 책이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시작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두 사람은 엘리트 남성 중심으로 서술된 기존 역사에서 여성들의 소리가 꾸준히 배제돼 왔다는 맹점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하면 역사 속에 묻힌 여성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1년 전 'Herstory'라는 회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중년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서전을 만드는 등 '그녀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류소연 / 지금까지 중년 여성 여섯 명을 만났다. 자녀가 의뢰하면 우리가 어머니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서전을 만드는 식이었다. 작업하면서 중년 여성의 삶 속에 가부장제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딸 대신 응당 아들을 낳아야 하고, 재산은 딸이 아닌 장남이나 차남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계시더라.

우리가 만난 여성 중 한 분은 북한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신 분이었다. 85세인 할머니는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이 하는 가장 역할을 했다. 남편과 사업을 시작해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사업을 남편보다 잘하니 오히려 남편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다. 동시에 집안을 돌보는 여성 역할도 해야 했다. 할머니 표현에 따르면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 하루종일 일하고 와도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을 하셨다고 한다. 이분은 자기 삶을 회상하며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편과 결혼했고,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여자라서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이기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했지만, 그 역시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는 못했다. 재산을 분배할 때 재산의 상당량을 장남에게만 물려주었다. 할머니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호자로도 계셨던 것이다.

이들은 중년 여성들의 자서전을 엮으며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몸소 경험했다. 특히 여성인 류소연 씨는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던 불평등한 일들을 되돌아보게 됐다. 대학에서 겪은 외모 품평이라든지, 사회에서 여성이기에 겪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인터넷에 올라오는 여성들의 경험담을 읽으며,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하면 더 확장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페미니즘 이론을 함께 나누고 사업 아이템이였던 여성의 개인사를 한데 모으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성인 주승리 씨는 어떨까. 그는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들을 설득하기 위해 책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지만, 꼭 여성만을 위한 이론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눌려 있던 남성 역시 자유롭게 한다. 이 사실을 알기 전에는 주 씨 역시 페미니즘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 공백을 채워 줬던 건 시중에 나온 이론서와 페미니즘 책들이었다. 주 씨는 <이갈리아의 딸들>(황금가지), <82년생 김지영>(민음사),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은행나무)를 읽으며 페미니즘을 좀 더 쉽게 이해하게 됐다.

책방지기 주승리 씨는 '달리, 봄'이 남성들에게 새로운 시야로 사회를 볼 수 있도록 도왔으면 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주승리 / 남성은 여성이 경험하는 일을 직접 겪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남성 문화 속에서 음담패설은 보편적인 일이다.<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남성들이 동성 간의 유대감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음담패설을 한다고 설명한다. 경험상, 군대 문화에서 음담패설은 곧 자신이 잘난 남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지만 남성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남성들을 설득하고 싶다. 서점이 그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책방지기는 동네 책방 '달리, 봄'이 페미니즘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방에는 페미니즘 이론서부터 여성의 경험을 담은 도서, 여성주의 시각에서 쓰인 문학 작품 등을 들일 예정이다. 여기에 성소수자, 성 노동자 등 인권을 주제로 한 연구 서적도 함께 다루려고 한다. 책방이라고 해서 책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페미니즘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강의와 워크숍도 계획 중이다.

류소연 / '달리, 봄'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활발하게 하고 싶다. 여성들이 자기 몸과 관련한 경험담을 자연스럽게 풀어 놓으면 어떨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는 외모 품평, 성적 대상화 등 몸과 많이 연결돼 있는 것 같다. 8월부터 한국에서도 생리컵이 출시된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만 봐도 그렇다. 월경하는 여성을 더럽고 냄새 나는 사람으로 표현했더라.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여성들은 수치심을 내면화하게 된다. 여성의 몸을 혐오하는 사회 문화는 깨야 한다. 연령대가 다양한 여성들이 오셔서 이 주제를 놓고 대화하면 좋겠다.

주승리 / 조용한 주택가에 있다 보니, 동네에 중년 여성이나 중년 남성 등 어른들이 많을 것 같다. 페미니즘에 예민한 20~30대와 달리 페미니즘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분들도 많을 거다. 그런 분들이 편하게 들어와 "이곳이 뭐하는 곳이냐"고 물어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기회가 되면 커피 한 잔 마시며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어느 분이나 환영하지만 특히 남성이 많이 오시면 좋겠다. 혼자 오셔서 워크숍하기 부담스러우실 수 있으니, 연인과 함께 참여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배워 갔으면 한다.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소개하고 설득하는 게 쉽지 않지만, '달리, 봄'에서 책과 워크숍을 통해 여성 혐오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남자 지원군을 만나고 싶다.

류소연 씨는 동네 책방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책방 오픈을 한 달 앞두고, 두 사람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펀딩 모금액은 300만 원으로, 책 수급에 사용할 예정이다. 책방지기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펀딩을 하는 것도 있지만, 책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달리, 봄'이 공감을 살 수 있을지 알아보고자 펀딩을 진행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오전에 목표 금액 70%에 육박하던 모금액은 인터뷰가 끝나자 80%를 넘었다.

주승리 / 책방을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달리, 봄'의 방향성을 알리고, 우리 책방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살 수 있을까 궁금해 펀딩을 시도했다. '달리, 봄' 페이스북 페이지에 정식으로 홍보하기도 전에 한 분이 후원하며 우리 펀딩을 자기 소셜미디어에 공유하셨다. "우리 동네에도 드디어 동네 책방이 생긴다. 너무 기쁘다"라고 적으셨는데, 그걸 보고 우리 둘 다 감동받았다. 얼마를 후원하시든지, 페미니즘 동네 책방을 준비하는 우리 입장으로서는 반응 하나하나가 다 응원 같다.

류소연 / 페미니즘 열풍이 사그라들어도 이 담론을 꾸준히 이야기하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페미니즘이 낯선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생존의 도구이자 위로의 사상일 수 있다. 우리처럼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후원금이 얼마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얼마나 이 책방에 공감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페미니즘이 그래 왔던 것처럼 우리도 페미니즘이 꾸준한 운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달리, 봄'이 페미니즘을 친숙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8월 5일까지 진행된다. 관심 있는 사람은 펀딩 홈페이지에서 참여할 수 있다. '달리, 봄'과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들은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달리,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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