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뉴스앤조이>는 목사 아내를 가리켜 '사모'라고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사모라는 단어가 단지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목사의 부인'이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라, 특정한 역할을 포함하고 있고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안에서는 사모라는 말은 물론 '사모감이다', '사모스럽다'라는 말도 자주 사용된다. 짐작할 수 있듯이, 사모감이라는 말은 '참한' 스타일을 뜻한다. "사모는 아무나 될 수 없다"는 말처럼, 목회자와 같이 사모도 어떤 사명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통적으로 사모가 되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목회하는 남편을 전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다. 목사 아내에게 어떤 역할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뉴스앤조이>는 7월 4일 서울 합정에서, 일주일 뒤면 목회자 아내가 될 전도사 서민지 씨(26)를 만났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목사 아내가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뉴스앤조이>에 연락해 왔다.

카페에 들어선 민지 씨는 한마디로 '참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는 패셔너블했다. 유니크한 디자인의 귀걸이가 먼저 눈에 띄었다. 머리를 높게 묶은 민지 씨는, 주황색 볼 터치를 정성스럽게 했다. 말하는 것도 시원시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모감이라는 단어가 왜 잘못된 것인지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다음주면 목회자 아내가 될 서민지 씨. 신학생인 그녀 역시 주말이면 교회 사역에 뛰어든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사모 선택한 거 아냐
남편이 목회자일 뿐

"사모라고 불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떤 기준에 갇히는 건 싫어요. 교회 안에서 관습처럼 내려오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요. 지금 신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남자 신학생들은 너무 쉽게 '좋은 사모감을 만나고 싶다'고 말해요. 일단 '사모감'이라고 말하는 것도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사모감이 도대체 어디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인터뷰 초반, 민지 씨는 사모감이라는 말에 불편을 드러냈다. 그가 지금까지 교회와 신학교에서 보고 들은 사모감의 특징은 이렇다. 겉모습이 단정하다. 성격은 조신하고 조용하다. 순종적이다. 좀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자기주장이 없는 사람이다. 남편 될 목사를 뒷바라지하고 그를 전적으로 내조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민지 씨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모감에 애초부터 부합하지 않았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사회생활했던 그는 소명을 따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 뒤늦게 입학했다. 개성을 살려 독특한 옷을 입고 가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옷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었다. 외모뿐만 아니었다. 교회에서 자신이 맡은 사역에 최선을 다했고 꾸준히 하고 싶었다. 내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 안수를 앞둔 전도사다. 목사 아내가 될 것을 떠올리니, 갑갑한 게 많았다. 외모는 물론, 교인들이 목사 아내에게 바라는 기대도 불편했다. 그 기준이 오히려 목사보다 높게 느껴졌다. 주변에서 목사 아내들 경험담이 자주 들렸다. 새벽 기도 때 졸아서 욕먹고, 기쁘지 않거나 화가 나도 웃어야 했다. 자기주장이 세면 '사모가 왜 저러느냐. 사모면 가만히 있어라'는 말도 듣는다고 했다. 이런 소문 때문인지 민지 씨 주변 여성들은 목회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사역하는 교회에서 '결혼하면 남편 교회에서 사역할 거냐'고 질문했어요. 의아했지만 그게 관례고 현실이니까요. 옮긴 교회에서 목사 아내들이 하는 일은 목사의 빈 부분을 채우는 거예요. 여성 교인을 상담할 때 목사와 함께 가거나, 예배 시간에 교인들 아이를 돌보고 목사를 케어해요. 사례비를 받지 않지만, 교회 안에서 대체 인력이 필요한 부분은 당연히 목사 아내가 메우죠. 이런 현실을 보면, 목사 아내가 한 인격체가 아닌 목사의 부속품 같아요."

가부장적인 한국교회
사모는 목사보다 못한가

민지 씨는 똑같이 신학교를 나와도 사모가 되면 남편 목사보다 못한 존재로 보이는 게 싫다. 목사 아내 중에는 신학 공부를 한 사람도 많고 영성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교인들은 목사 아내를 목사의 부수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목사와 동등하게 교회에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자유롭지 않다.

"한국교회가 가부장적이고 기업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교회는 사랑과 연합이 먼저인데, 실제로는 위계질서, 권위를 우위에 두죠. 교회가 많이 망가졌다고 생각해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봐요. 성경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위치에 있잖아요. 교회나 가정에서나 각자의 역할에 맞게 움직이는 거지, 목사 아내가 목사 아래 있다거나 남성 사역자가 여성 사역자를 낮게 보는 건 옳지 않아요. 잘못된 것은 정확하게 말해야 해요."

그는 사역자와 결혼하면 사모라고 불릴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기대에 부합하는 사모는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결혼을 앞둔 민지 씨는 결혼 후에도 '사모'라는 테두리에 갇히고 싶지 않다. 자신이 겪는 불편을 결혼 후에도 분명하게 말할 생각이다. 쉽지만은 않다. 민지 씨는 남성 목회자들이 이런 부분에 적극 목소리를 내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약자가 직접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 나를 포함해 뜻이 있는 여성들이 요구하겠지만 남성들이 직접 설득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목회자가 직접 교인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목회자부터 생각이 변해야 한다. 목회자가 아내를 낮게 여기지 않고, 함께 사역하는 동등한 존재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그는 누군가의 아내이고 사모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 '사역자'로 남고 싶다고 했다. 목회자와 결혼하면 사모라고 불릴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요구하는 사모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저는 저대로 살 거예요. 남편이 사역하는 교회에 목사 아내가 같이 와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면 논의는 해 보겠지만, 무조건 맞춰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누구의 아내라고 불리고 싶지 않고, 그냥 저였으면 좋겠어요. 성경에 나오는 아내의 도리는 다하겠지만, 사모 역할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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