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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이 참된 영성을 만나다

[서평] 파커 파머·아서 자이언스 <대학의 영혼>(마음친구)

이원석   기사승인 2017.07.05  11: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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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영성적 차원

예전에 파커 파머(Parker J. Palmer) 책으로 서평을 쓸 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은 정치를 다루지만, 실제로는 영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그 문장의 형식과 초점은 여기에서도 유효하다. <대학의 영혼>(마음친구) 또한 고등교육, 즉 대학 교육을 말하지만(원제가 The Heart of Higher Education이다), 사실은 영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대학의 영혼>이 다루는 주제는 파커 파머의 전문 분야에 해당한다. 그는 미국 교육학계의 구루(영적 지도자)로서, 이른바 '교사들의 교사'로 불린다. 애초에 파커 파머는 교육가인 동시에 영성가이다. 토머스 머튼을 사숙(私淑)하고, 헨리 나우웬을 멘토로 모셨다[<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To Know As We Are Known>(IVP)은 그러한 배움의 영향을 잘 보여 준다].

파커 파머의 대표작인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과 그 후속작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The Courage to Teach>(한문화) 또한 교육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영성을 피력한다. 그의 첫 작품인 <역설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The Promise of Paradox>(아바서원)(이에 대해 서평을 쓴 바 있다) 후반부('지식의 방향 전환')에서도 (고린도전서에 나온) 십자가 영성에 비추어 교육을 논한다.

<대학의 영혼 - 대학은 어떻게 더 나은 인간을 만드는가> / 파커 파머·아서 자이언스 지음 / 이재석 옮김 / 마음친구 펴냄 / 360쪽 / 2만 원

대학의 인간화

하지만 영성과 교육 자체의 관계와는 달리 영성과 고등교육의 관계를 적절하게 설정하기는 어렵다. 정치(권력)와 영성의 넓은 간극만큼이나 그 거리가 벌어져 있다. 고등교육을 통한 입신양명의 길이야말로 헨리 나우웬이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The Selfless Way of Christ>(IVP)에서 지적했던 위로 향하는 흐름(upward mobility)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니던가.

요즘 시대에는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원래 대학의 본령은 탁월한 학문 연구 이전에 올바른 인간 육성이다. <대학의 영혼>에서의 지향점 역시 '대학의 인간화'다. 농사짓는 환경 운동가 웬델 베리가 말한 것처럼, "대학은 무엇보다 '인간'을 키우는 곳이다. 대학은 온전한 의미의 인간을 키우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17쪽) 전인교육, 통합 교육이 대학의 일차 과업인 것이다.

전인(全人)과 그 통합의 중심은 마음(heart)이다. "여기서 가슴(heart)은 감정을 느끼는 부위로서의 가슴만을 말하지 않는다. 지력, 감각, 상상력, 직관, 의지, 영혼 등 인간의 모든 능력이 한데 모인 장소로서의 가슴이다."(49쪽) 파커 파머는 정치에서건, 교육에서건 일관되게 가슴, 즉 마음을 강조한다. 마음은 사랑과 의미의 중심이며, 학문 연구와 관계 형성의 중심이다.

이러한 마음 강조는 심지어 과학 연구에서도 유효하다. 이는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사례(61~63쪽)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는 옥수수에게 공감하고, 친교를 나눔으로써 통찰을 얻었다. 이와 관련하여 <대학의 영혼>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과학자이자 페미니스트 과학사가인 이블린 폭스 켈러가 쓴) 그녀의 전기, <생명의 느낌>(양문)을 읽어 볼 것을 권하는 바다.

학자와 학문의 관계에 기초하는 이런 인식론은 교사와 학생과 학문 사이의 관계에 입각한 교육학으로 연장된다. "인식론이라는 앎의 방식은 언제나 교육학이라는, 가르침과 배움의 방법론을 통해 실행에 옮겨"(66쪽)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식론과 교육학은 본질적으로 삶의 방식, 즉 윤리학일 수밖에 없다." 마음의 문제는 그러므로 삶의 문제이고, 영성의 문제이다.

대학 교육의 영성

이러한 이유로 하여 대학을 쇄신하려면, 무엇보다도 마음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즉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야 한다. 혹은 지성에서 영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아는 교육의 중심은 지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재에 열광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또한 지금 주목하는) 교육의 중심은 마음이다. 참된 교육을 위해서는 머리(지성)가 가슴(영성)에 통합되어야 한다.

파커 파머가 제시하는 영성에 대한 정의는 가치 평가를 배제한 중립적 정의이다. "영성은 인간이 자신의 자아(ego)보다 더 큰 무엇과 연결되고자 하는 끝없는 갈망이다."(95쪽) 대학 교육의 논의를 위해서는 특정 종교에 편중되지 않는 이런 중립적 정의가 필요하다. 참된 대학 교육은 영성 교육에 다름 아니다(이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이래로 일관된 그의 입장이다).

바른 교육은 학생 내면의 중심에 자아가 아니라 자아보다 더 큰 무엇, 즉 특정 문화가 공유하는 신념의 대상이나 가치(전통)을 자리하게 만든다. 그 교육체계가 전제하는 신념 혹은 문화를 내재화한 시민으로 학생을 육성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격적 통합을 지향하고, 사회적으로는 건전한 시민 육성을 추구하는 조화로운 교육을 위해서는 영혼과 영성을 지향해야 한다.

하나 <대학의 영혼>의 절반(3~5장)을 집필한 물리학자 아서 자이언스(Arthur Zajonc)가 학창 시절 경험한 대학은 본질적으로 영혼(soul) 없는 대학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의무로 여기지 않는 대학이다."(104쪽) 바른 대학 교육은 학생들에게 특정한 지식의 전수를 넘어서 위대한 가치나 거대한 서사 혹은 삶의 참된 의미를 제공해야 한다.

아서 자이언스는 에른스트 카츠(와 그를 통해 알게 된 이들)와의 만남을 기점(起點)으로 하여 점차로 삶을 통합하게 된다. "통합된 삶을 살자 나는 그때까지 공부한 과목들의 숨은 의미와 예상치 못한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비로소 과학에 내포된 인간적 차원, 즉 과학의 영적인 의미와 윤리적 측면이 살아나기 시작했다."(106쪽) 실로 교육학적 간증인 셈이다.

"나는 다시 수학과 물리학, 문학과 철학이 펼치는 장대한 드라마와 아름다움에 빨려 들었다. 물론 그 과목들이 가르치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학문의 텍스트와 방정식, 논증을 대할 때 끼고 보는 '렌즈'가 바뀌어 있었다. 렌즈를 바꿔 끼자 지금까지 미처 알아 보지 못한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때까지 죽어 있던 공부에 의미가 부여되었다." (106쪽)

변혁 거점으로서의 소모임

<대학의 영혼>의 저자들은 오늘날 대학이 막중한 책임을 지녔다고 천명하며, 개인과 사회가 가진 자원을 활용하여 정치·경제·사회·환경의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내놓는 제안은 이러한 과업의 규모에 비해 소박하게 보인다. 대학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소모임을 만들라는 것이다.

"이 모임에서 자신의 참된 느낌을 말하고, 창의적 생각을 나눈다. 또 자신의 진실을 상대의 머리와 가슴에 대고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필자들이 교사로 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마음을 열고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때 대학 교육에 필요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대학 교육에 관한 창의성을 함께 나누면 지금과 다른 새로운 가르침과 배움의 방법이 생겨날 수 있다." (42~43쪽)

파커 파머에 따르면, 소모임의 핵심은 "자신의 참된 느낌을 말하고, 창의적 생각을 나"누고, "또 자신의 진실을 상대의 머리와 가슴에 대고 이야기하는" 데에 있다. 파머와 자이언스는 "대학 교육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대화, 특히 일정한 원칙에 기초한 집중적 대화가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음"(38쪽)을 확신한다. 즉 변혁을 위한 핵심은 소모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다.

"물론 대화만으로 대학의 구조가 단기간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이라는 기관이나 제도 차원의 근본적 변화는 언제나 대화의 분위기 속에서 특정한 비전을 세우고 실천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공동체의 씨앗은 좋은 대화에서 자라나며, 좋은 대화는 각 개인의 외적인 지위와 무관하게 일어날 수 있다."(38쪽)

교회 개혁 거점으로서의 소모임

<대학의 영혼>에서 다루는 내용이 포괄적이고, 동시에 이전 저작과 중첩되기 때문에 책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다룰 수가 없다. 그래서 고등 교육의 영성적 차원을 규명하고, 곧바로 이를 복원하기 위한 파커 파머의 해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범위를 한정했다. 그가 주목하는 해법, 즉 열린 소모임(특히 소모임에서의 열린 대화)은 나 역시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대학의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재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대학 문제의 해법은 곧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기업이나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대학 현실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영성으로 변질되고 있는 우리의 영혼을 걱정해야 한다. 대학 쇄신만큼이나 영적 각성 또한 작은 공부 모임에 달려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따라서 대학에 기대된 높은 교육의 이상을 되찾기 위한 파커 파머의 해법이 한국교회에 적용되는 것도 당연하다. 경색(梗塞)된 교회에 대한 슈페너의 대안(교회 안의 작은 교회, ecclesiola in ecclesia) 운동이 절실한 요즘이다. 소그룹으로 모여서 적극적으로 배우고, 개방적으로 마음을 나누는 그런 모임이 널리 확산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대학의 영혼>은 단지 대학 교육의 쇄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교회와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도 유용한 지침서이다. 아무래도 파커 파머는 교육과 대학의 구루를 넘어서 교회와 정치, 사회 전체를 품는 영적 지도자가 되고 있는 듯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의 통찰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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