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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난민으로 세 아이 키우며 살기

이라크 난민 유스라 씨의 한국 생활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7.07.04  18: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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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유스라 씨는 초등학교 교장이었고 남편은 경찰이었다. 부부는 아들 둘, 딸 하나, 부모님과 함께 대가족을 이루며 살던 평범한 이라크 중산층이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남편은 개신교인 친구를 도왔다는 이유로 주변 무슬림들의 탄압을 받았다. 집안으로 총알이 날아드는 위험한 상황이 됐고, 유스라 씨 가족은 박해를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

유스라 씨 가족이 함께 정착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남편은 호주에, 유스라 씨와 자녀들은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유스라 씨와 세 자녀가 한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3년이다. 남편은 지금도 호주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번 돈을 한국에 보내 준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아빠와 남편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유스라 씨가 한국 여성들과 마주 앉아 한국 생활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나눴다.

한국에서는 '난민'이라고 하면 가난한 사람을 먼저 떠올린다. 난민을 만날 기회가 잘 없다 보니,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여성 단체 한국알트루사(박영희 대표)는 매월 한국에 살고 있는 난민을 초청해 이야기 듣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6월 모임은 27일 계동 한국알트루사 본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유스라 씨에게 '앗살라무 알레이쿰'(아랍어권 사람들이 만나면 나누는 인사말)이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모든 것이 낯선 한국 생활

한국 살이 3년, 옷차림에서부터 먹는 것까지 이라크와 다른 점 투성이다. 우선 길거리에 나가면 히잡을 쓴 사람도 없고 여성들 옷차림은 자유로웠다. 집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유스라 씨도 히잡을 벗고 자유로운 상태로 지내지만, 외부에 나갈 때는 꼭 히잡을 착용한다.

유스라 씨는 한국과 이라크가 어떻게 다른지 간략히 설명했다. 지난 5월 알트루사 난민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유스라 씨. 뉴스앤조이 이은혜

유스라 씨가 한국에 도착해서 놀란 또 다른 점은 남녀 구분 없이 자유롭게 접촉하는 문화다. 아랍 문화권에서는 남녀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일이 드물었다.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남녀가 타는 칸을 구분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다.

유스라 씨는 자녀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또 한 번 놀랐다. 이라크는 남녀 학교가 나뉘어 있다. 한국은 아니었다. 초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자녀들은 이미 한국 시스템에 잘 적응해 살고 있지만 유스라 씨는 이런 부분이 여전히 조금 불편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무슬림으로 살면서 밖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참치김밥과 라면. 돼지고기 걱정 없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한국은 할랄 음식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아 외식할 경우 주의해야 한다.

이미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랍 문화를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제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한국 문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모국 이라크 문화를 익히게 하는 것은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유스라 씨는 한국에 도착해서 난민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에 최대한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를 잘 익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만 고국 이라크 문화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는 한국 음식 먹고 한국말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아랍어로 대화했다. 두 문화를 동시에 접할 수 있게 가르쳤다.

평소 아이들에게 이 음식·행위가 종교(이슬람)적으로 금지된 것인지 허용된 것인지 가르친다. 예를 들면 여성들이 쓰는 히잡은 어느 정도 나이가 찼을 때 쓰는 것이 관례다. 유스라 씨처럼 어렸을 때부터 쓸 수도 있다. 본인이 선택 가능한 부분이다. 한국에 있기 때문에 배울 수 없는 아랍 생활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서 난민 여성으로 혼자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호주에 살고 있는 남편이 보내 주는 생활비만으로 네 식구가 생활하기는 빠듯하다. 유스라 씨는 지금도 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어를 잘 못하고 히잡을 쓰고 있는 유스라 씨를 반겨 주는 사업장은 드물었다.

이라크 난민 유스라 씨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국알트루사 계동 본부에 20여명이 모였다. 사진 제공 한국알트루사

모든 것이 낯선 한국 생활

참석자들은 유스라 씨가 떠나 온 이라크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 했다. '이라크' 하면 '걸프전쟁', '이라크전쟁', '사담 후세인', '알카에다'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라크는 고대 바빌론제국이 번성한 곳에 위치한 나라다.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함께 수학·천문학 등 기초 학문이 발달한 나라였다. 유스라 씨는 전쟁 때문에 폐허가 된 이라크 상황을 설명했다.

문명국 이라크였지만 잇따른 전쟁으로 유적지는 파괴됐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유스라 씨가 학생들에게 이라크 역사를 설명해도 학생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오랜 유적지는 미국과 전쟁으로 파괴돼 없어진 지 오래고, IS(무장 테러 단체)는 기독교 유적이 남아 있는 도시 모술(Mosul)을 점령하고 고대 유적의 흔적을 지웠다.

알카에다는 미국 군대와 전면전을 벌였지만 IS는 달랐다. 민간인도 죽였다. 그들이 스스로 '이슬람 국가'라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슬림을 보면 테러리스트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유스라 씨는 말했다.

"사람들은 무슬림 복장을 한 남성, 히잡을 쓴 여성을 보면 테러를 일으켜 사람을 죽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옳지 않은 종교인이 테러를 행하고 있는데,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라고 오해한다. 한국말을 더 열심히 배워서 이런 오해를 풀고 싶다."

난민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 문은희 소장(알트루사 여성상담소)은 IS가 오래 전 십자군처럼 종교를 내세우고 전쟁을 하는 집단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과 테러를 없애기 위해서는 군대의 개입도 좋지만 종교를 더 종교답게, 기본으로 돌아가 제대로 믿는 사람이 많아져야 종교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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