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교회는 목회자가 성범죄를 저지르면 대부분 은폐·축소 수순을 밟았다. 목사가 사회 법으로 처벌받아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목회에 복귀하는 경우도 많다. 교단 차원에서 명확하게 목회자 성범죄를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범죄를 저지른 목회자 편을 드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교단, 동료 목사, 교회가 성적 비행을 일삼는 목회자를 눈감아 주는 동안 교회는 성범죄 단속 사각지대로 전락했다.

목회자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처벌 수위를 교단 헌법에 명시한 경우는 거의 없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명구 감독회장)만 '교리와장정' 제7편 재판법 제3조에서 성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할 뿐이다. 13항에는 "부적절한 결혼 또는 부적절한 성관계(동성 간의 성관계와 결혼을 포함)를 하거나 간음하였을 때" 교역자를 견책·근신·정직·면직·출교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감리회 내 여성 단체 모임 '감리교여성연대'는 목회자 성범죄를 사전에 막고,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를 처벌할 더 명확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목회자 성 윤리 강령과 성폭력 특별법'을 장정개정위원회(장개위)에 제안할 예정이다. 장개위는 장로교의 총회에 해당하는 입법총회에서 다룰 헌의안을 심의하는 곳이다. 만약 '목회자 성 윤리 강령과 성폭력 특별법'이 장개위를 통과하게 되면 총회에 모인 총대들이 이 안을 '교리와장정'에 넣을지 논의한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가해자 상당수는 목회자다. 장개위에 올라가는 '목회자 성 윤리 강령과 성폭력 특별법'이 '목회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 피해자가 교회를 떠나게 하고 교회 공동체가 서로 신뢰를 잃게 만드는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감리교여성연대가 작성한 '성폭력 특별법' 초안에는 교회 성폭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명시하고 있다. 성범죄, 성적 일탈,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성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용어 정의부터 시작한다. 이어 △성폭력 발생 시 조사 기관 설치 및 재판 절차 규정 △피해자 비밀 보장과 돌봄, 치유에 관한 규정 △목회자 진급 시 성폭력 예방 교육 의무화 규정 등을 차례로 설명한다. 가해자와 징계와 회복, 피해를 입은 교회 공동체 회복을 위한 규정도 함께 명시하고 있다. 감리교여성연대는 '성폭력 특별법'을 더 다듬어 7월 20일 이전에 제출할 예정이다.

논의에 참가하고 있는 홍보연 목사(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는 <뉴스앤조이>와 통화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 양성평등 교육, 부부 목회 금지 조항 폐지 등 7~8개 안건을 준비 중인데 '목회자 성 윤리 강령과 성폭력 특별법'도 그중 하나다. 장개위가 이 안을 통과시킬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만약 통과되지 못한다면 (총회) 현장에서 발의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목사 말처럼 '목회자 성 윤리 강령과 성폭력 특별법'이 '교리와장정'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여성에 불합리한 교회 시스템을 보완·개선하는 여러 제도가 장개위를 통과해도 총대들이 입법총회에서 동의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입법총회를 통과해 '교리와장정'에 정식 규칙으로 명시된다면, 교단 헌법 수준에서 채택하는 첫 목회자 성 윤리 강령이 될 예정이다.

감리교여성연대는 '목회자 성 윤리 강령과 성폭력 특별법'을 장정개정위원회에 제안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그동안 목회자가 성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제지 없이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처벌 조항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주요 교단 헌법 권징조례안을 살펴보면 목회자 성범죄와 관련한 처벌 조항이 없다. 지난해 한국교회 파장을 일으킨 라이즈업코리아 이동현 전 대표가 면직된 근거 조항도 56조 '시벌의 규례' 중 △교리상으로나 도덕상으로 교인을 크게 실족하게 한 경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훼손하게 한 중죄를 범한 경우였다.

한국에서 교세가 가장 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김선규 총회장)은 지난 6년간 목회자 윤리 강령 제정에 실패했다. 교단 헌법도 아니고 구속력이 없는 강령 수준에 불과했지만 예장합동 총대들은 이를 거부했다. 교단 신학부에서 연구 및 공청회를 마친 뒤에도 총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예장합동이 마련한 '목회자 윤리 강령'에는 성범죄, 교회 재정 횡령, 설교 표절 등을 중단하고 목회자의 거룩성을 회복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01회 총회에서 기각된 사유는 "성경보다 더한 윤리 강령이 없다"였다.

그나마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성희 총회장)은 2015년 100회 총회에서 '목회자 윤리 강령'을 통과시켰다. 예장통합이 마련한 '목회자 윤리 강령'은 꼭 성 윤리에 국한돼 있지는 않다. 설교 표절, 불필요한 금전 거래, 학력 위조, 인종 차별, 세습 금지 등 생활·목회 윤리도 함께 명시돼 있다. 성 윤리 부분은 △성적 타락을 막기 위한 교단 교육 적극 참여 △사람을 성적인 대상으로 대하지 않을 것 △교인에 성적 감정을 갖고 있을 경우 바르게 대처함 등을 담았다.

해외 주요 교단은 목회자 성범죄와 관련해 별도 매뉴얼을 구축한 경우가 많다. 별도 매뉴얼이라고 해서 구속력이 없거나 헌법보다 낮은 단계가 아니다. 목회자 성범죄는 진짜 '범죄'로 다룬다. 필요하면 수사기관에 의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 같은 경우 아예 별도 사이트를 구축해 교회 내 성범죄를 제보받고 있다. 비밀이 보장되는 이 사이트에는 목회자가 성적 비행을 저질렀을 경우 교회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도 함께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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