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맞는 비 vs 현대판 마녀사냥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돌베개, 244쪽

'함께 맞는 비'라는 말이 있다.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이셨던 故 신영복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때에 동정하는 시혜적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공감과 연대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고통받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먼저 그가 어떤 고통으로 힘들어하는지 살피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그 과정에서 함께 비를 맞는 정신과 태도로 동행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최근에 황당한 소식을 하나 접했다. '함께 맞는 비'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살며 알려 주는 목회자 가운데 한 명인 임보라 목사가 '이단 시비'라는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실제로는 아직 멀고 멀었어도, 새 시대의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고 '성평등 정책'을 제시하며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오늘날. 성평등 정책은커녕 여성 목회자 안수마저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대표적 보수 개신교회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에서 적극적으로 시비를 걸고 나섰다. 자신들 안에 있는 성범죄자 남성 목회자들에게는 온갖 이유로 면죄부를 발행하는 이들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행보인지도 모르겠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이며 섬돌향린교회와 동행 중인 임보라 목사는 교회 안팎에서 상대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그중에서도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이나 성평등과 정의를 위한 활동은 물론, 사회적인 여러 갈등 현장에서 다양한 평화운동에 분명한 신학적 입장과 신앙고백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니 그런 임보라 목사의 활동과 입장이 드러나는 만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교회를 운영해 온 본인들의 '종교 사업'이 비교될 터이니 불편한 사람들이 있었을 테다. 마땅히 징계하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를 일으킨 힘과 돈이 있는 자들의 온갖 죄는 어떻게든 덮어 주고, 사랑으로 부둥켜안고 함께 해야 할 상대적 약자들의 아픔은 더 후비어 파온 본인들의 악행이 더욱 더 선명해질 테니 두려웠을 게 분명하다.

처음에는 예장합동에 속한 '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연구위원회'(이대위)가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더니 곧이어, '한국교회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회'에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고신·합신·대신(구 백석)이란 5개 장로교단과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이대위가 공조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지난 글에도 언급했듯이 사회에서는 의학적이고 사회학적으로 이미 끝난 논쟁에 가까운 문제를 가지고 이단 시비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종교적인 영역, 그중에서도 천주교회를 포함한 기독교 그룹 안에서나 논쟁이 되고 있는 성소수자 이슈를 가지고 '공동의 적'을 만들어 '마녀사냥'을 해 보겠다는 꼼수로 읽힌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가졌다." (루가의 복음서 23:34, 공동번역개정판)

주로 보수 기독교 세력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고통받고 있는 성소수자 길벗들과 함께 비를 맞고 있는 목회자가 내가 알고 있는 임보라 목사다. 일반적으로 목회적 돌봄이나 배려라고 말하는 '목회적 동행'이 뭔지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한 사람을 찍어서 의도적인 마녀사냥을 하겠다는 그들의 광기를 보니, 기가 막힐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마녀사냥의 의미나 파장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교회 안팎에서 자신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성소수자 길벗들과 동행하는 일이 이단 시비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명확한 신학적 근거를 말하지 못한다. 그저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은 임보라 목사가 일반 신자가 아닌 목회자라서 문제라는 것이다. "목사가 동성애 지지 운동을 하고, <퀴어 성경 주석>을 번역하는 건 교리적·성경적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목사든 신자든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그 누구라도 개인의 성적 지향(性的 指向, Sexual orientation)은 찬반을 논하거나 지지 또는 반대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의학적이고 개념적인 무지(無知)를 드러내는 건 자주 목격하는 일이니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자신들이 속한 교단이 지지하는 성서 해석이나 교리적 입장에 반하면 이단성을 의심해서 이단 시비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은 난감하다 못해서 황당함을 감출 길이 없다.

임보라 목사 마녀사냥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예장합동의 경우, '여성 안수 금지'를 올바른 성서 해석과 교회 전통이라 굳게 믿으며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들과 가까운 예장고신 등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여성 안수 금지는 성서적이고 교리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한번 물어보자. 그들과 공조하고 있는 8개 이대위가 속한 교단 가운데, 오늘날 여성을 안수하는 게 성서와 교회 전통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라고 주장하며 가르치는 예장통합은 그들에게 '이단'인가.

그뿐 아니다. 임보라 목사 마녀사냥에 공조하고 있는 8개 이대위가 속한 교단들 가운데에는 캐나다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anada·UCC), 미연합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U.S.A·PCUSA), 미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UMC) 등과 직간접적인 교류 관계를 맺고 있는 교단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동성 결혼을 인정하거나 동성 결혼을 축복하며, 심지어 성소수자 목회자들이 있는 북미권의 주류 개신교단이다.

혹시라도 8개 교단 이대위가 자기 교단도 아닌 기장 소속 목회자인 임보라 목사를 이단으로 확정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교회 안팎에 있는 성소수자 길벗들과 동행하는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입장에 '이단성이 있다고 확정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들은 자신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 해외의 주류 개신교단들을 향해 "당신들은 이단이오"라고 선언하겠다는 의미인지 궁금하다.

자신들처럼 성소수자를 향한 무지몽매한 전환 치료에 동조하거나 앞장서기는커녕, 동성 결혼이나 그들의 다양한 동행을 존중하며 축복하고 공식적인 성소수자 목회자들이 있는 해외 주류 개신교 교단들을 모두 이단으로 여기겠다는 뜻인가. 그 모든 이들에게 성전을 선포하고 이단성을 심사하며 계속된 이단 시비를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건가.

거룩함은 단순 명료한 분리가 아니다

<Radical Love: An Introduction to Queer Theology> 앞뒤 표지. '퀴어 신학 입문서'로 유명한 이 책은 이번에 이슈가 된 <퀴어 성서 주석>(Queer Bible Commentary·QBC) 출간을 전후해서 국내에서도 발간될 수 있다. 저자는 성공회 사제이자 신학자인 패트릭 쳉(Patrick S. Cheng)이다. 그는 현재 시카고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거룩함은 단순히 부정하거나 불결한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 교회에서 제대로 된 살핌과 반성 없이 '부정하거나 불결한 취급을 받는 존재들'을 깊이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취급을 받는 존재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키거나, 시혜적 관점을 갖고 주변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오히려 깊이 끌어안는다.

그 과정에서 그 존재들이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걸 폭로하고, 그 안에 담겨진 '근원적 선', 즉 우리와 동등하며 독특한 신의 숨결이 숨 쉬고 있음을 밝히 드러낸다. 사실은 그들이 왜곡되고 삐뚤어진 사회구조는 물론, 다양한 미시적 권력들에 의해 '낙인찍힌 사람들'이란 점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끄는 거룩함은, 이 시대나 사회 또는 교회가 쉽게 부정하고 불결한 취급을 하는 존재들을 깊이 살펴보며 반성하라고 요구한다. 그들을 깊이 끌어안고 시대나 사회의 통념 때문에 그들이 겪는 고통과 신음, 그 죽음의 짙은 냄새를 함께 맡으며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죽음 한가운데로 나아가라고 요청한다. 그 과정에서 신학적이고 사회적인 폭로와 투쟁을 계속하라고 응원한다.

이 시대나 사회 또는 교회의 통념으로 부정하고 불결한 취급을 받는 존재들이, 실은 우리와 동등하며 독특한 신의 숨결로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밝히 드러내라고 한다. 그렇게 밝히 드러내어, 마땅히 축복받아야 할 은총의 존재이자, 우리와 동행해야 할 순례자로 초대해 함께하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끄는 거룩함은 단순 명료하게 분리하는 게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관성을 따라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좀 더 깊은 성찰과 폭 넓은 식별'을 요청한다. 그런 성찰과 식별이야말로 '성령의 임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체험하라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진 사람들과 신앙 공동체야말로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임을 잊지 말라고 한다.

"베드로가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 저는 일찍이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입에 대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하는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중략)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그것은 만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켜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입니다 (중략) 신자가 된 유다인으로 베드로와 함께 왔던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내리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도 10:14-15, 35-36, 45, 공동번역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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