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안전공원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을 기리고 대한민국을 안전하고 건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논의돼 왔던 416안전공원 설립은 일부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416안산추모사업협의회는 1년 동안 설립안을 놓고 논의했지만, 6월 30일 최종 회의에서 안전공원 부지 결정을 유보했습니다.

반대 측 주민들은 화랑유원지에 416안전공원을 설립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6월 2일 열린 416안전공원 심포지엄 때는 행사장에 난입해 진행을 방해했습니다. 당시 심포지엄에서는 전문가들이 △416안전공원의 경제적 가치 △416안전공원의 디자인 방향 △416안전공원과 도시 연계 재생 방안 등을 주제로 발표할 계획이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반대 측 주민들 방해로 미처 발표하지 못한 발제문을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공간을 통해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시간 속 인간의 유한성을 깨달은 인류가 시간을 넘어 미래에 메시지를 전하는 오래되고 보편적인 방법일 것이다.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 또한 많은 역사적 사건을 관통해야 하며 그 안에서 시대의 아픔과 안타까운 희생, 곤경을 극복한 인간의 헌신과 숭고를 기억해야 한다. 이는 역사 속 인간의 의무이자 책임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렇게 역사의 아픔과 희생을 기록해 온 추모공원의 몇 가지 사례와 그 추진 과정을 살펴보려 한다. 그리하여 416안전공원이 담아야 할 공간적 의미와 환기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오클라호마 국립박물관·추모공원. 사진 제공 안산의제21

아픈 사건 속 인간 조명
테러 참상을 세계와 공감하는
오클라호마 국립박물관·추모공원

오클라호마 국립박물관 및 추모공원은 1995년 4월 19일 일어난 미국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청사 폭탄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장소다. 박물관은 테러 공격 이후 며칠 동안의 혼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대화형 미술관이다. 야외 추모 공간은 조용한 반성의 장소로 조성되었으며, 테러로 무너진 뮤러(Murrah)빌딩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계획안은 국제 공모를 통해 가족, 생존자, 구조대원, 시민 리더 및 디자인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선정했다.

이 추모공원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날 한순간으로 운명이 바뀐 이들 모두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물 폭발로 사망한 168명은 건물이 무너진 그 자리에 놓인 빈 의자로 남았다. '생존자의 장벽'은 이 테러 공격에서 살아남은 600여 명 이름이 조각되어 새겨져 있다. '연못'은 상처를 진정시키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잔잔한 수면은 기념관을 방문한 사람 모습을 비춘다. '어린이 지역'에는 전 세계 어린이들이 그려 보낸 격려와 사랑이 칠판 벽으로 표현돼 있으며, 땅에 그려진 칠판과 분필 그림들은 놀이터이자 아이들이 감정을 교류할 장소를 제공한다. 이는 치유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울타리는 원래 무너진 건물 부지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지만, 사람들이 울타리에 사랑과 희망의 토큰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 현재도 많은 사람이 200피트 길이의 울타리에 기억과 희망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폭발 시 생존한 느릅나무와 구조대원들,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도 과수원으로 남아 공원에 기록되어 보존되어 있다. 기념비적인 형태의 '쌍둥이 문'은 테러가 있기 직전의 평화로웠던 4월 19일 오전 9시 1분과 운명의 시간인 9시 3분을 상징하면서 우리의 평화가 얼마나 찰나적인 경계 위에서 많은 이의 노력에 의해 지켜지는 것인지 깨닫게 한다.

바람을 담아 8년간 쌓은
4만 5,000장 벽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한 기자의 글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집'으로 알려진 이 박물관은, 매주 수요일 주한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의 공간적 연장선상에서 건립되었다. 이곳의 순탄치 않았던 긴 건립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4년 사료관 건립준비위원회가 발족된 이후, 1999년 서대문 인근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알리는 작은 교육관이 건립되었다. 이후 박물관 건립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다가 2004년 위안부 할머니 17명이 모은 정부 생활 지원금을 초석으로 건립위원회가 발족되었다. 2009년 3월 건립 예정 부지로 기공식을 마쳤던 서대문 독립공원 예정 부지는 뜻밖의 암초를 만나게 되는데,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 반대 이유였다. 위안부 역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

이후 2011년 성미산 부지를 매입하였고 '1만 원 기부 릴레이 캠페인' 등의 시민 기부와 모금 활동을 통해 꼬박 8년이 지나 완공되었다. 이곳은 주택가 좁은 골목 끝에 일상처럼 자리한 작은 박물관이지만 공간 전체를 통해 위안부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문제 해결의 의지를 담아 전쟁과 여성 폭력이 없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간절한 바람을 안고 8년간 쌓은 4만 5,000장의 벽돌에는 위안부 할머니들 사진과 이름이 기록되었고 언제나 추모의 꽃이 꽂혀 있다. 입구를 지나 쇄석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소녀를 그린 그림과 할머니들의 현재를 표현한 부조상이 양쪽 벽에 대조되어 설치돼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가해진 전쟁의 광기와 폭력의 역사를 목도할 수 있다. 이어지는 지하 전시관을 거쳐 전 벽돌에 새겨진 생존 할머니들의 증언을 보다 보면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적 비극의 현재를 마주하게 된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사진 제공 안산의제21

재난 안전 교육 터전
그러나 미완의 합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2003년 2월 18일 대구 중구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개인에 의한 고의적 방화와는 별개로 대구광역시와 지하철 관련자들이 사고를 축소·은폐하고 현장을 훼손하는 등 부실하게 대응해 피해가 확대된 것으로 밝혀져 우리 사회 안전 의식에 큰 파장을 주었다.

이 참사를 교훈 삼아 2008년 12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개관하였는데, 그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지역 갈등과 합의 과정, 아직 해결되지 못한 현재진행형의 이슈들을 짚어 보는 것이 416추모공원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필요할 것이다. 추모공원은 참사 발생 이후, 대구 중구와 수성구 달성군 화원유원지 등에 건립하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대구시민들의 휴식 공간 화원유원지에 유골 등을 안치하는 추모관이 들어서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가 있었고, 해당 부지에 매장 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결국 새 후보지를 찾게 된다.

그러다 대구시는 2005년 대구 동구 팔공산 동화사 부근 집단 시설 지구에 안전 교육장과 전시관, 주차 시설, 야외 휴식 공간 및 안전을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 등을 갖춘 시민안전테마파크 조성 계획 공개 입찰 공고를 냈다. 하지만 여기서도 동화사 집단 시설 지구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일어났다.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주민들의 사전 동의 없이 추진되고 있는 사업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해당 부지가 원래 레저 및 오락 시설 건립 용도로 지정된 뒤 대구시가 20여 년간 방치해 온 부지이므로 당초 용도대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구시는 이미 해당 부지 내 시유지에 안전테마파크를 조성하기로 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와 합의한 상태였으며, 그 안에 지하철 사고 희생자 추모 조형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대구시와 유가족 측이 안전과 추모를 상징할 수 있는 조형물만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는데도, 주변 상인들은 추모관(납골당)과 위령탑이 들어서지는 않을까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대구시는 유족들이 당초 요구했던 추모관(납골당)과 위령탑을 유족들과 협의를 통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으며, 대신 희생자 묘역을 시립공원 묘지 등에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결정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었다. 조성 이후에 뚜렷한 추모 공간이 없던 유족들은 테마파크를 '추모공원'으로, 조형물을 '위령탑'으로 이름을 바꾸고 추모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시에 요구했으나, 주변 상인들과의 마찰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2009년 '유골 매장' 사실이 폭로되면서 상인과 유족, 시가 얽히고설킨 민형사 소송이 오가기도 했다.

현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꾸준한 콘텐츠 투자를 통해 가족 단위 체험객과 외국인 체험객 증가로 지역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최근 추모공원 조성 문제가 재논의되고 있다. 218안전문화재단이 유족들의 오랜 염원인 추모공원 조성을 위해 테마파크 명칭 변경을 재검토하자 지역 상인들이 다시 반발한 것이다. 재단은 참사 이후 14년이 흘렀으므로 타협을 통해 상생 발전 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상인들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최근 '다크 투어리즘'이 주목받으면서 역사적 아픔을 환기하고 교육하는 형태의 관광이 세계적으로 활발해지고 있으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역시 이런 흐름에 맞춰 국내 및 해외에서도 찾는 안전 교육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는데, 시민 의식의 성숙이 아쉽다.

사례로 본 추모공원
가치와 의미
명소화 방안

위의 사례들을 통한 가장 큰 시사점은 지역사회와의 교감이 추모 공간 조성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점이다. 당장의 큰 그림과 그 완성보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의미를 담아서 조금씩 논의를 진전시키면서 지역사회와 꾸준한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추모 공간을 조성하는 인내심과 노력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희생자 유가족들만이 슬픔을 추모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사회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지역민들의 일상 공간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공원이자 생명 교육의 장소로, 미래를 위한 가치와 의미, 공공성을 담은 공간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생명의 귀중함에 대한 사회 통합의 가치가 구현된 장소로서 안산시와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겠다. 그러한 방안을 통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현재 우리의 문화적 방식을 제시하고, 그 문화적 방식이 주민들의 의지와 참여를 통해 마을과 사회의 형태로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분열된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공통의 과제이자 가치일 것이다.

문정석 / 도시연대 커뮤니티디자인센터 센터장, 소셜디자인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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